타격대 앞에서 (글감 : 성실한 방황)
* 글감 ’성실한 방황‘을 주제로 12월 2일에 쓴 글을 퇴고했습니다.
어제도 간식을 챙겨 먹고 검도관에 갔다. 매주 월요일에는 호구를 쓰지 않고 타격대로 기본기를 연습한다. 한 2주 전부터 연습 방식이 바뀌어서 한 번을 치더라도 한 동작, 한 동작 끊어서 제대로 치도록 지도받고 있다. 내 앞에 상대가 정말로 있다고 생각하고 죽도를 들어 넘겼다가 왼쪽 손목을 밀어서 힘껏 치라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치기는 친정 검도관에서 배웠던 방식이다. 그때도 관장님께서는 늘 말씀하셨다. 대충 여러 번 치지 말고,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치라고. 그래야 실력이 는다고. 평소에 대충 치는 게 버릇이 되면 나중에 심사 준비할 때도 고치기 정말 힘들고 실력도 늘지 않는다고. 그 말을 믿고 혼자서든, 관장님과 다른 관원과 함께든 매일 거울 앞에서 죽도를 잡고 머리, 손목, 허리 치기를 연습했다.
그러다 이사 와서 지금 다니는 검도관으로 옮기면서 문화 충격을 받았다. 뭐랄까,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다들 싸움닭인 줄 알았다. 운동하러 갈 때마다 대련을 해야 했다. 5~6월은 한창 여기저기서 시합이 열리는 시기라 시합에 참가하는 학생, 어른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매번 나갔는지 대련을 선수급으로 하는 애들도 있었다. 친정 검도관과 180도 다른 분위기, 연습 방식과 강도에 갔다 올 때마다 한 군데는 다치거나 다칠 뻔하기도 했다.
그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건 나만 여기서 중력 없이 떠도는 외계인인 것 같단 생각이었다. 친정 검도관 관장님께서는 너무 어렸을 때부터 애들을 시합에 내보내기 위해 발달 단계에 맞지 않게 강도 높은 연습을 시키는 걸 반대하신다. 그러다 나중에 번아웃 때문에 어른이 돼서 검도에서 등을 돌리는 경우를 많이 봤다면서. 그래서 시합이 있어도 일정을 안내하고 한 번 나가보라고 하시지만 그 이상 강요는 하지 않으셨다. 반면 지금 다니는 검도관에서는 시합이 있으면 초등학생에게도 ‘너 나가’ 하는 분위기다.
그러다 보니 쉬이 적응하지 못했고 1주일에 2, 3번 도장에 가서 운동하면서도 예전과 달리 자신감과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이 몸을 빠르게 움직이며 타격대 앞에서 어려운 퇴격 동작도 한 번에 해내는 걸 볼 때마다 자괴감이 밀려왔다. 전체적인 타격 자세는 어른이 더 나을 때도 있지만 아무래도 스피드와 힘, 발재간은 확실히 어린 친구들이 좋다. 그 스피드와 힘, 발재간이 부러웠고 거기서 벽을 느꼈다. 여기에 피드백을 받으면 그동안 배운 게 틀렸다고 하는 것 같아 급기야 먼지가 되기 직전이었다. 얼마 전에 대련하다 또 허리를 부딪쳐 승단심사를 또 미룬 10월에는 그동안 쌓인 게 정점을 찍고 말았다.
그동안 내가 농땡이를 친 것도 아닌데 느는 것 같지도 않은 게 아무래도 이 운동은 여기까진가 보다. 그만둘까.
하지만 내가 왜 죽도를 잡게 됐는지를 생각하면 나 자신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고민 끝에 목표치를 확 낮췄다. 1주일에 몇 번이든 출첵만 해도 성공이라고. 운동하다 허리만 안 다치면 성공이라고.
어제도 타격대로 큰 동작을 연습하다가 칼을 들었다 내려치는 속도를 빠르게 해 보라는 말을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치라는 거야, 땀이 뻘뻘 나는 와중에 현타가 왔다. 하지만 이럴 때는 답이 없다. 그냥 이렇게도 쳐 보고, 저렇게도 치는 거다. 그러다 보면 어쩌다 한 번은 제대로 된 타격이 나온다. 그때까지 몇 번을 쳐야 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머리 치기를 최소 1000번, 3000번은 연습해야 시합에서 상대의 정수리를 정확하게 치는 그 동작이 나온다고 한다. 그 많은 삽질과 방황 끝에 바로 그 머리 치기가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