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 <행복한 왕자>

그때는 몰랐다, 다들 리허설 없이 버티고 있었단 걸

by 검도하는 해달
<행복한 왕자> 1888년 초판본 삽화, 월터 크레인(Walter Crane)


#1

The eyes of the Happy Prince were filled with tears, and tears were running down his golden cheeks. His face was so beautiful in the moonlight that the little Swallow was filled with pity.

“Who are you?” he said.

“I am the Happy Prince.”

“Why are you weeping then?” asked the Swallow; “you have quite drenched me.”

“When I was alive and had a human heart,” answered the statue, “I did not know what tears were, for I lived in the Palace of Sans-Souci, where sorrow is not allowed to enter. In the daytime I played with my companions in the garden, and in the evening I led the dance in the Great Hall. Round the garden ran a very lofty wall, but I never cared to ask what lay beyond it, everything about me was so beautiful. My courtiers called me the Happy Prince, and happy indeed I was, if pleasure be happiness. So I lived, and so I died. And now that I am dead they have set me up here so high that I can see all the ugliness and all the misery of my city, and though my heart is made of lead yet I cannot choose but weep.


행복한 왕자의 두 눈에 가득 차오른 눈물이 그의 금빛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달빛 아래서 아름답게 빛나는 모습을 보며 작은 제비는 그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나는 ‘행복한 왕자’야.”

“그런데 왜 울고 있나요?” 제비가 물었다. “당신이 흘린 눈물로 온 몸이 젖었어요.”

“살아서 인간의 심장을 지녔을 때,” 동상이 답했다. “나는 눈물이 뭔지 몰랐어. 평화로운 궁전에는 슬픔이 들어올 수 없었거든. 낮에는 정원에서 벗들과 뛰놀고 저녁에는 큰 연회장에서 춤을 추었지. 정원은 아주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는 알려고 하지도 않았어. 이 세상 모두 내겐 아름답기만 했으니까. 궁중 사람들은 나를 ‘행복한 왕자’라 불렀고, 쾌락이 곧 행복이라면 난 정말로 행복했어. 그렇게 살다 죽었지. 하지만 내가 죽고 사람들이 이 높은 곳에 나를 세운 지금에서야 도시에 숨겨진 추함과 불행이 모두 보여. 그러니 내 심장이 납으로 만들어졌어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2

“Dear little Swallow,” said the Prince, “you tell me of marvellous things, but more marvellous than anything is the suffering of men and of women. There is no Mystery so great as Misery. Fly over my city, little Swallow, and tell me what you see there.”

So the Swallow flew over the great city, and saw the rich making merry in their beautiful houses, while the beggars were sitting at the gates. He flew into dark lanes, and saw the white faces of starving children looking out listlessly at the black streets. Under the archway of a bridge two little boys were lying in one another’s arms to try and keep themselves warm. “How hungry we are!” they said. “You must not lie here,” shouted the Watchman, and they wandered out into the rain.


“작은 제비야,” 행복한 왕자가 말했다. “너는 늘 내게 신기한 이야기를 해 주지만, 그 어떤 이야기보다 더 신기한 건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란다. 불행만큼 기묘한 것도 없지. 작은 제비야, 도시 위로 날아올라 네가 보는 걸 내게 이야기 해 주련?”

그렇게 제비는 큰 도시 위로 날아올라, 부자들이 아름다운 집에서 즐겁게 지내는 동안 거지들이 문 앞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어둠이 드리운 골목길을 날며 안색이 창백한 아이들이 굶주린 채 컴컴한 거리를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도 보았다. 교각 아래에서는 자그마한 소년 둘이 서로를 팔로 감싸안고 몸에서 온기를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파!” 소년들이 말했다. “여기서 자면 안 돼!” 야경꾼이 소리치자 두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빗속을 헤맸다.



#3

“What a strange thing!” said the overseer of the workmen at the foundry. “This broken lead heart will not melt in the furnace. We must throw it away.” So they threw it on a dust-heap where the dead Swallow was also lying.

Bring me the two most precious things in the city,” said God to one of His Angels; and the Angel brought Him the leaden heart and the dead bird.

“You have rightly chosen,” said God, “for in my garden of Paradise this little bird shall sing for evermore, and in my city of gold the Happy Prince shall praise me.”


“거 참 희한하네!“ 주물 공장에서 일꾼들을 감독하는 관리자가 말했다. “이 부서진 납 심장이 아궁이에서 녹질 않아. 아무래도 내다 버려야겠어.“ 그들은 숨을 거둔 제비도 놓여 있던 쓰레기 더미 위에 행복한 왕자의 심장을 던졌다.

“내게 도시에서 가장 귀한 두 가지를 가져오너라.” 신이 한 천사에게 명했다. 천사는 신에게 납으로 만들어진 심장과 죽은 제비를 데려왔다.

“잘 선택했구나,” 신이 말했다. “내 정원에서는 이 작은 새가 영원히 노래하고 금으로 만든 도시에서는 행복한 왕자가 나를 칭송하리라.“






한 줄 질문

1. 주변에서 숨겨진 슬픔을 본 순간은 언제였나요?

2. 여러분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열여덟 살, 교복을 입었을 땐 미처 알지 못했다.

삶에 리허설은 없단 걸,

다들 리허설 없이 버티고 있었단 걸.


20여 년 동안 기억이 많이 깎여나갔지만 그 장면은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고등학교 2학년, 새 학기 첫날.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게 학교에 도착해 언덕길을 걸어 올라 교실에 다다랐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한 학년 올라갔단 것과 교실이 한 층 아래로 내려갔단 것. 다른 반에서 애들이 깔깔 웃으며 수다 떠는 소리가 들렸다. 작년처럼 교실이 시끌벅적할 거라 생각하고 뒷문으로 창 너머 교실 안을 봤다. 그런데……


다른 반과 달리 아이들이 이미 자리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자습하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손목시계를 다시 봤다. 지각 아닌데? 당황해서 눈이 빠르게 굴러갔다. 교실 가운데에는 담임인 듯한 남자 선생님께서 검은 정장을 입고 서 계셨다. 뭐야……? 무거운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 뒷문을 열고 말없이 교실로 들어갔다.


그날부터였다. 선생님께서는 학기 초에 분위기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자습부터 거의 모든 일정을 강행군으로 밀고 나가셨다. 첫날부터 야자 시간에 상담 차 다들 교무실로 불려 갔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년과는 교실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적응하지 쉽지 않았고 선생님은 냉정해 보이기까지 했다.


“작년 모의고사 성적 보니까, 수학 점수가 많이 낮네.“

“……”

내신도 그렇고, 모의고사도 이 정소 성적으론 인서울도 힘들어. 내일부터 아침마다 수학 문제집 풀고 나한테 갖고 와서 검사받아.”

“……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통학 버스 안에서 눈물이 나왔다. 마중 나와 있던 엄마가 버스에서 울면서 내리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셨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매일 아침, 학교에 가면 우리 반이 있는 복도 쪽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교실에 있는 창문도 마찬가지였다. 주번이 있었지만 창문은 좀처럼 열릴 줄 몰랐다. 그 잠깐이 뭐 그렇게 아깝다고 이것들이 진짜…… 그때마다 조용히 창문을 하나씩 열었다. 닫힌 창문을 보면 숨이 막혔다. 하루, 하루, 나는 말없이 죽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있을 때 엄마께서 다른 학부모님과 통화하는 걸 듣게 됐다.


“애가 많이 힘든가 봐요. 자세한 건 얘길 안 하는데, 얼마 전부터 학교가 답답하다고 그러네요. (중략) 아, 그래요? 담임 선생님이? 군기 잡으려고 그러시나 보다……”




벚꽃이 한창이던 4월, 중간고사를 앞뒀을 때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책가방을 메고 교실문을 열었다. 그런데 애들이 울고 있었다. 울음은 오열에 가까웠다. 직감으로 알았다, 뭔가 터졌단 걸.


“어제까지만 해도 여기서 같이 웃으면서 얘기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어떡해…… 으허어어어어어어……”

“어흐어어어어어어, 말도 안 돼…….”

“야, 너!!!!!! 왜 그랬어!!!!!! 왜, 왜, 왜!!!!!!!!!!”


슬픔과 좌절과 충격과 공포가 뒤섞인 공기는 처음이었다. 그날, 수업은 모두 취소됐고 우리 반은 교복을 입고 병원 내 장례식장으로 향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왜 그랬을까. 친하진 않았지만 애들 앞에서 항상 웃던 앤데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담임 선생님께서 얼마 전 그 친구한테 성적으로 모질게 말해서 울었더란 얘기가 몇몇 아이들에게서 간간이 흘러나왔다. 이유는 걔만 알겠지. 다만, 그 친구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들었을 땐 귀를 막고 싶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영정 사진이 우리를 맞이했다. 액자 속에서 친구는 교복을 입고 웃고 있었다. 그제사 실감이 났는지 여기저기서 울음이 다시 터져 나왔다. 조문 차 절하고 일어서다 주저앉는 친구, 울부짖다 쓰러지는 친구도 있었다. 그 자리에는 학부모님들도 근처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아이고…… 이 꽃다운 나이에 교복 입고 장례식장에 오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못 할 짓인데……”

“애들도 이런데 담임 선생님은 오죽하시겠어……”


조문을 마친 뒤 자리를 빠져나와 아이들의 울음소리, 어른들의 낮은 말소리를 뒤로 하고 고개를 돌려 천천히 주변을 바라봤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검은 등이 들썩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나는 봤다, 담임 선생님께서 우시는 걸. 처음이었다. 학교에 있을 때 선생님은 차갑게만 보였다. 하지만 그때만은 그 차가움이 온데간데 없었다.




그 날의 장례식장, 흰 국화, 영정 사진, 울부짖던 아이들, 몸을 숙이고 구석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던 선생님. 모든 장면이 낯설었다. 같은 반 친구와 작별할 줄은 전혀 몰랐다. 이런 작별을 같은 해 여름에 또 한 번 겪을 거라곤 더욱더. 리허설 없이 훅 치고 들어온 그 해 두 작별은 더 강렬하고 아팠다. 학교에서는 마냥 웃기만 했던 아이들이 아무도 모르게 그 어두운 그림자를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도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렇다, 다들 말하지 않을 뿐 리허설 없는 삶을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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