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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아이 Nov 06. 2023

그놈의 미세먼지 때문에

깜박깜박 ADHD엄마라서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불어닥치기 시작한 중국발 발암 먼지.

미세먼지라는 귀여운 이름이 전혀 안 어울리는 눈살 찌푸리게 하는 불청객.

(도대체 이름 왜 안 바꾸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미니먼지' 아니면 '작고 소중한 먼지'라고 하지 그래?!)

다들 미세먼지 때문에 걱정도 불편도 많았겠지만 나는 진심으로 이민까지 가려고 마음먹었었다.

무려 '1급 발암 물질'이라는데,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얼마나 안 좋을지 모르는데

앞으로 어쩌면 100년 가까이 더 살날이 남은 핏덩어리들에게 온종일 이 무시무시한 걸 집어넣는다고?

그것만은 정말 도. 저. 히. 못하겠다고!!


그때부터 나의 미세먼지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여름 빼고 다른 계절에는 수시로 미세먼지로 하늘이 뿌옇게 덮이기 시작했던 그때부터.

미세먼지 수치가 나쁠 때는 밖에 나가지 않고 유치원이나 집 이렇게 실내만 있었고, 실내에서도 공기청정기가 틀어져 있는지, 창문은 닫아 두었는지 늘 신경이 곤두섰다.

어쩔 수없이 밖에 나갈 때는 마스크 사이로 미세먼지가 들어올까 봐 마스크 끈을 귀 뒤로 꼭 쪼아서 쓰게 하였다. 당연히 아이들은 귀도 아프고, 숨도 답답해했지만 그래서 안쓰럽고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마스크 쪼아 쓰고, 공기청정기를 방방마다 틀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중국에서 바람이 우리나라 쪽으로 불어올 때면 어김없이 몇 날 며칠이고 공기가 안 좋은데 계속 밖에 못 나가니 그 또한 아이들에게 너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문도 제대로 열지 못하는데 실내 공기라고 좋을 리 없었다. 환기를 잘 못 시키는 실내에서 나오는 유해물질과 먼지 산소도 별로 없는 답답한 공기를 마시며 하루종일 있으면 머리가 나도 무거워졌다.

저 바깥에서 살아가는 나무처럼 동물들처럼 아이들도 잘 자라려면 햇빛과 바람이 필요할 텐데.. 집안 화분에서 키우는 식물들도 햇빛과 바람 없이는 힘없이 시들시들거리는데.. 싶었다. 한창 뛰어놀 나이에 딱딱하고 네모난 건물 안에서만 하루 종일 갇혀 있다시피 하는 아이들이 너무 가엽게 느껴졌다.


이런 곳에서 계속 아이들을 키우는 게 과연 맞는 걸까? 회의가 들었다. 다른 이유보다도 정말 그냥 '바깥에서 자유롭게 뛰어놀기' 위해서 미세먼지 없는 공기 좋은 나라로 가고 싶었다.

굳이 다른 나라까지 가서 아이를 기르고 싶다는 건 엄마로서 엄청난 결심이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단점 또한 엄청나게 많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해외로 나가서 산다면 해외 경험이나 영어를 배우는 기회는 생길지 몰라도 우리나라를 떠나면 아이들이 자기가 나고 자란 동네에서 부모뿐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도 받고, 친척들과도 만나고 , 같은 말 같은 정서를 가진 친구들과 놀면서 자라는 경험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환경을 떠나는 게 과연 맞을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세먼지가 아이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느꼈고 그래서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결정은 나 혼자 한 것이라 남편과는 뜻이 맞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의 결혼 생활에 두 번째로 찾아온 큰 문제였다. 나는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어서 남편을 설득하고, 애원하고, 협박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았고 남편은 나에게 달달 볶이다가 못 살 것 같으니까 못 이기는 척 고민해 보긴 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렵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이렇게 억지로 간다면 가게 되더라도 누군가 불행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 아이들의 건강이 위협받는 이곳에서 그대로 있다가는 내가 불행해질 것 같은데?

정답은 없고 두 가지 오답만 있는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결국 우리가 떠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돈이었다. (왜 나는 항상 계획을 세울 때 이 생각을 자꾸 못하는 걸까?) 외국에서 그 많은 생활비를 감당하기가  지금 우리의 상황으로 어려웠던 것이다.

남편은 자기가 한국 떠나면 자격증 없이 어떻게 돈 벌 거냐고 자기는 디스크 환자라서 막노동도 못하는데 어쩔 거냐 했다.(희한하게도 남편의 허리는 이럴 때는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다가 또 자기가 좋아하는 거 할 때는 씻은 듯 나아지곤 한다. 물론 우연의 일치겠지만~그렇겠지?? ) 

나 또한 어마어마한 우리 집 생활비를 해외에 가서 갑자기 그림을 팔거나 미술을 가르치거나 해서 벌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경제적인 안정 없이는 우리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 특히나 다른 나라에서는 더 그럴 것 같았다. 우리 부부가 둘 다 일을 해야 하면 애들은 누가 챙겨줄 것이며, 만약 우리가 사는 곳도 번화가가 아니라 외진 곳이라면 거기서 자기들끼리 있다가 아프거나 길을 잃거나 범죄에 노출된다면? 육체적 정신적 건강도 중요하지만 당장의 '안전'보다 우선시되는 것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리하여 꼬물이와 말랑이는 어. 절. 수. 없. 이.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는 마스크 꽉 쪼아 쓰고 실내에 숨어 있다가 공기 좋은 날이면 못 놀았던 시간까지 종일 몰아서 햇빛도 쬐고 바람도 쐬며 자라게 되었다. 

현실에 적응해야지 뭐 어쩌겠어, 쯧쯧.. 안쓰러운 녀석들ㅠㅠ


에휴...우리나라 아이들 모두 걱정 없이 마스크도 없이 깨끗한 공기 마시면서 마음껏 뛰어노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미세먼지들아…너네는 정말 꼴도 보기 싫으니까 좀 저리 가줄래? 언제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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