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깜박 ADHD엄마라서
사실 나는 잘하는 거 빼고 다 못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특히 남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 것을 잘 못한다.
내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누가 질문하면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설명해야 하는 지루한 시간이 떠올라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또 상대가 한 번에 못 알아듣기라도 하면 한 번 더 그 지루한 시간을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져서 짜증이 올라오곤 한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나의 스트레스 관리와 애들의 정서 보호 차원에서 진작에 엄마 역할 수행 중 내가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할 것 3가지를 크게 써서 냉장고에 붙여 놓았다.
첫 번째, 요리하지 말기- 있지도 않은 솜씨를 부려 봤자 스트레스만 엄청 받고 어차피 맛 하나도 없음.
두 번째, 쇼핑하지 말기- 가뜩이나 청소랑 정리를 못하는데 물건까지 많아지면 답 없음.
세 번째, 교육하지 말기- 원래 자기 아이 가르치는 건 힘든 건데 괜히 시도하다가 관계만 안 좋아질 것이 뻔함.
그런데 유일하게 내가 집에서 엄마표로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미술이었다.
내가 미술을 전공하고 또 그림 그리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그건 절대 아니다.
미술은 '가르쳐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미술은 ‘학습’하는 과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까지 30년 가까이 그림을 배우고 그려오며 알게 된 확실한 한 가지는 미술을 학습시키는 것이 도리어 아이들이 미술을 찐-으로 배우는 데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미술학원을 다녔고 미대 준비를 하면서 입시 미술학원,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를 준비하면서 일러스트 학원을 다녔고 얼마 전에는 민화를 배워 보고 싶어서 민화실을 몇 달 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조금 커서 입시나 특정 목적을 위해서 기술을 배워야 할 때는 몰라도 꼬꼬마 시절에 미술 학원에 다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득 보다 실이 많다.( 보통일반적인 경우)
미술학원을 운영하려면 학부모에게 결과물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돈을 주고 학원을 보내는 부모 입장에서는 그럴듯한 결과물을 보고 싶어 하는 게 또 당연하다. 마음대로 낙서나 할 거면 집에서 하지 왜 비싼 돈 들이고 시간 들여서 굳이 학원에 보내겠냐고. 대회에 나가서 상도 좀 받아오고, 친구들에게 자랑도 좀 하고, 사람도 졸라맨처럼 그리지 않고 실제 사럼처럼 보이게 사실적으로 그리는 기술을 배워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예술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고 의미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잘' 그려야 하는 압박이 생긴다면 어떨까? 그림을 수학 문제 푸는 것처럼, 숙제하는 것처럼, 시험을 치는 것처럼 느낀다면??
미술학원에 다닌다고 무조건 그렇게 될 거라는 말은 아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겪어왔고 지금도 날마다 느끼고 있는 부분이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한 번 생기기 시작하면 그 전의 '날 것' 상태로 마구잡이로 자유롭게 즐기는 상태로 다시 돌아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어렵기 때문이다.
당장은 아이가 미술학원에서 배운 그리기 실력으로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돋보일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어떻게 집에서 미술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딱 다섯 가지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재료- 여러 가지 칠하고, 뿌리고, 그리고, 자르고, 붙일 수 있는 것들. 크레파스, 색연필, 물감, 색종이, 가위, 풀, 빈 종이, 잘라도 되는 박스, 버려도 되는 물건 아무거나.
둘째로 여가 시간- 아이를 미술학원 같은 곳에 덜 보내면 자연스럽게 집에서 꼼지락거리고 놀 시간이 생긴다.
셋째로 엄마의 체력과 정신력- 이게 제일 중요하고 어렵기도 한 부분이다. 집에서 손장난 후 한 트럭 만들어지는 온갖 찌꺼기들을 치울만한 체력과 이까짓것 정도야~하는 여유로운 마음이 있어야 한다.
넷째로 책 보기- 책 보는 건 언제나 어디에나 도움이 되는 건 우리집 강아지도 다 아는 사실.
다섯째로 놀기- 밖에 나가서도 미술을 배울 수 있다. 특별히 무엇을 할 필요는 없고 밖에 나가서 그냥 놀면 된다. 자연도 보고, 사람들도 만나고, 한 번씩 좋은 전시도 가면서 말이다. 세상 구경, 사람 구경, 예술 구경을 하면서 실~~~ 컷 놀기.
미술학원 안 다녀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진짜로? 진짜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