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힘으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근본도 모르는 사람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친정 식구들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오기가 생겼다. 스물여덟, 그때 나는 세상을 다 아는 줄 알았다.
"8년 차 고비를 쉽게 넘기기 어렵다"는 주변의 우려도 흘려들었다. 부모님은 안 계셨고, 남동생 하나가 전부인 그 사람. 결혼식 날까지 얼굴조차 볼 수 없던 시동생은 일본에서 일 배우고 있다 했다. 나는 그저, 단 하나뿐인 시동생이라면 잘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의 첫 만남은 서먹했고, 둘 사이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대화를 시도할 때면 남편이 중간에서 말문을 끊었다. 얼굴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동생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연락이 왔다. 걱정이 되어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가, 그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욕설로 거절해 버렸다.
혈육이라곤 둘 뿐인 형제.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마음만 졸였다. 명절이면 늘 일찍 와서 음식을 거들던 시동생. 가난했던 시절, 시골의 추억을 나누며 웃던 시간들. 삶은 그렇게 힘겨움도 추억으로 남기는 법이라 믿었다. 그때마다 등 뒤에 서늘한 시선을 보내던 사람, 내 남편이었다.
이혼한 지 3년. 그 사람의 흔적은 여전히 내가 사는 집 곳곳에 남아 있다. 회사 휴가를 내서 전 남편의 물건을 하나하나 상자에 담았다. 옷, 책, 생활용품... 정리하는 동안 내 마음도 조금씩 정돈되었다.
사실, 그걸 쉽게 버리지 못한 건 친정엄마 때문이었다. "남의 물건 함부로 버리는 거 아니다."
엄마는 늘 그랬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는 나보다 그를 더 아껴주셨다. 막내사위라며, 아들처럼 여기셨다. 언젠가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놓지 못한 건, 엄마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 항암치료의 부작용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퇴원 전에 정리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마침 큰아들이 말년휴가로 집에 왔다. 20년 넘게 쌓인 물건들이 점점 공간을 잠식해가고 있었다. 창고에 있던 상자들을 옮기고, 계절 옷만 해도 여섯 박스. 우편물, 메모지, 공책, 노트... 별별 것들이 다 나왔다.
"엄마, 소장이 이렇게 많아." 아들은 법원에서 온 서류더미를 한 상자 가득 꺼내며 말했다.
그 안에는 로또 영수증도, 소송 서류도, 빚과 거짓말의 흔적도 함께 담겨 있었다. 언젠가는 한 방에 인생이 바뀌리라 믿었던 사람. 아이들에겐 공부하라며 엄격했던 그가 정작 본인의 삶은 운과 기대에 내맡기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 밑에서도 묵묵히 공부했다. 나는 그런 남편을 조금이라도 도우면 가족이 살 길이 열릴 거라 믿었다. 결국 남편은 가정도, 일도, 자신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그가 지켜낸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리하다가, 큰아들이 다시 말했다. "엄마, 이건 내가 제대하고 와서 버릴게." 그 상자 안에는 고3 시절 그의 플래너와 노트가 있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글씨, 빼곡한 계획표, 노력의 흔적들. 그런 아들을 보며 생각했다. 삶이란 결국, 기다림과 정리와 놓아 보냄의 반복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우리는 또 한 페이지를 정리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