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다른 암 환자들처럼 휴약기에 있어야 하는 날, 나는 항암을 맞기 위해 병원을 향했다. 호중구 수치를 높이는 주사도 맞았다. 혈관을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케모포트 수술을 받을 병원까지 안내받았다. 일정대로 그 병원에 가서 수술을 마쳤다. 이제 항암을 맞기에 필요한 몸은 준비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날, 정연이도 병원을 향하고 있었다. 정연이는 삼중음성유방암 4기 환자다. 팔 개월 동안 항암제를 바꾸어가며 버텨왔다. 최근에는 전원 치료를 시작해 몸이 조금씩 적응하는 듯했다. 이날은 지난 3주간 맞은 항암제의 효과를 확인하는 날이었다. 전날, 우리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지금의 불안한 마음이 같음을 확인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다짐했다. 편안히 자고, 내일 병원에서 결과를 보고 걱정하자며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뒤척이다 늦은 밤 잠이 들었고, 첫차를 타기 위해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병원에 가야 한다는 부담감과 검사를 받아야 하는 공포가 온몸을 감쌌다.
채혈은 두 시간 전에 끝났다. 결과는 병원 앱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진료 예약은 오전 9시 20분, 정연이는 10시 40분이었다. 진료 후 서로 연락하자고 약속했지만, 마음은 조급했다. 가슴 엑스레이 촬영을 마치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추울까 봐 여러 겹 껴입은 것을 후회하며 병원 가운으로 상의를 바꿨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안내에 따라 참았다. 검사가 끝나고 다시 옷을 입으러 가는 길, 혹시나 채혈 결과가 나왔을까 앱을 확인했다. 일부는 나왔지만, 중요한 호중구 수치는 아직이었다.
오전 7시에 채혈했는데, 8시 40분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자 이상하게 느껴졌다. 문제가 있을까 불안했지만, 오늘 항암은 맞을 수 있겠지, 주사까지 맞았으니 별일 없을 거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9시가 되어 다시 앱을 열었을 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지난번에는 0.67이었는데, 이번에는 0.27이었다. 눈을 의심했다. 이렇게 낮을 수 있을까? 주사는 왜 맞은 걸까? 교수님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진료실에서 교수님은 말했다. 항암을 바로 시작할 수 없다고. 호중구 수치를 올리는 주사를 다시 맞고, 처음부터 항암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약 용량을 조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항암 주기는 한 달이나 미뤄졌다. 마음은 씁쓸했다. 내 마음이 정상이라고 믿었던 건, 그저 바람일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을 단단히 붙잡으며 한 걸음씩 걸었다. 집 근처에 다다르자 머리를 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흰머리카락이 옷에 붙어 있는 걸 떼며, 친정엄마 머리가 많이 빠졌나 하고 여러 번 살펴보았다. 탈모가 이미 시작된 것을 무심히 지나쳤던 자신을 발견했다.
11시가 넘었지만 정연이에게서 소식이 없었다. 좋은 생각만 하자고 다짐했다. 그간 친구에게 맞는 항암제는 없었다. 씩씩하게 걷고 외출도 자주 하며 건강해 보였기에, 나보다 나은 상태라고 생각했었다.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하고 말을 건넸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 울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 친구는 “잠시만, 잠시만”이라고 말하고 더 이상 이어가지 못했다.
더 궁금했지만, 친구가 말을 이어갈 때까지 기다렸다. 의사 선생님은 더 진행되었다고 말했다. 음식은 괜찮냐고, 앞으로 더 힘들어질 수 있다고 했다. 약을 바꿔 시도해보자고 했지만, 이 약도 듣지 않으면 방법이 희박하다고 했다. 혼자 그 말을 듣고 있을 친구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까. 혼란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붙잡겠는가. 죽음이 점점 가까워진다고 말하는 의사 선생님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울지 마, 울지 마”라는 말조차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다음 항암제는 오백만 원이나 한다는 말에 마음이 두 번 찢어졌다. 조직검사도 다시 해야 하는데, 그 비용 부담까지 함께 들려왔다.
아픈 것도 억울한데, 치료비 걱정까지 하다 보니 우울감이 깊어졌다. 어떤 위로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답답했다. 친구와 나는 이날 원하는 결과도, 의견도 듣지 못했다. 다음에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까.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도, 옆에서 토닥여 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예정대로 집 근처에서 머리를 삭발했다. 그 소식을 친구에게 전하자, 친구는 “우리 윤기 나는 머릿결을 위해 잘 살아보자”라고 답했다.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