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조화와 부조화를 마주할 때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5부 지혜는 내면의 절제에서 나온다.


내면

168. 정신 기형과 부조화를 특히 부끄러워하라.


어리석은 괴물이 되지 말라. 이런 괴물은 허영심 가득하고 우쭐거리며, 고집불통에 변덕스럽고, 자기애가 강하며, 터무니없고, 자주 우스운 표정일 짓고, 우스꽝스러우며, 꾸며낸 이야기를 좋아하며, 모순적이며, 편집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온갖 부류의 신중한지 못한 사람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중 어떤 이는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또 어떤 이는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오래도록 사람을 관찰하고, 나를 돌아보는 일을 해보니 한 가지 확실하게 느끼는 것이 있다. ‘조화로운 사람’과 ‘부조화 속에 사는 사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대한다는 것이다.

그 차이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부터 행동의 습관, 감정의 흐름, 관계를 맺는 방식에까지 스며 있다.

정신적 부조화를 가진 사람은 흔히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소란을 통제하지 못한다. 허영심과 자기애는 쉽게 과장되고, 감정은 조절되지 않아 작은 일에도 폭발하거나 침잠한다. 고집을 부리고 변덕을 부리며, 꾸며낸 이야기를 사실처럼 말하거나, 모순된 행동을 하고도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때로는 편집적인 의심으로 주변을 괴롭히기도 한다. 겉으로 보면 그저 ‘성격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깊은 곳에서는 이미 내면의 균형이 무너진 채로 흔들리는 존재다.

그러나 이런 사람을 멀리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부조화를 나 스스로 경계하라는 의미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느 순간에는 흔들리고, 자신도 모르게 과장하거나 변덕을 부리거나 고집을 세우며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 문제는 그런 순간이 반복되고 고착될 때이다. 타인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가장 위험해지는 것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먼저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감정으로 하루를 지나왔으며, 어떤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전해졌는지, 그리고 무엇이 나를 흔들었는지. 병과 싸우는 시간, 가족을 돌보는 순간, 삶이 예기치 않게 무너지는 장면을 지나오면서 나는 더욱 이런 질문 앞에 솔직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려움은 사람을 드러낸다. 두려움과 분노, 슬픔과 갈등 속에서 사람의 민낯은 부끄러울 만큼 투명해진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조화로운 사람으로 살기 위해 끊임없이 ‘점검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투병 중에도 글을 쓰며 감정을 정리했고, 관계 속에서 흔들릴 때면 침묵을 통해 내 내면을 바라보려 했다. 세상이 요구하는 모습이 아니라, ‘내가 지키고 싶은 나 자신’이 무엇인지 잃지 않기 위한 노력. 그런 과정들이 나를 부조화의 늪으로 빠지지 않게 잡아 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주변에 있는 부조화된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울 때,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먼저 상처를 준다.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고, 억울함을 다른 사람에게 쏟아내며, 상대의 경계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종종 나에게도 상처가 된다. 특히 나는 이미 많은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사람이라, 이런 소란한 감정에 쉽게 지치곤 했다.


그래서 나는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첫 번째는 경계 세우기다. 이는 냉정함이 아니라, 건강한 자기 보호다. 상대의 독한 말, 불규칙한 행동, 억지 주장 앞에서 “그건 당신의 감정이지 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마음속에서 정리하는 것. 말로 드러나지 않아도, 내면의 경계는 분명해야 했다. 이 경계가 없으면 나는 금세 휘말리고, 결국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두 번째는 적정 거리 유지다. 가까이 있을수록 감정은 쉽게 전염된다. 조화롭지 못한 사람의 불안정성은 빠르게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균열을 일으킨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한 발 뒤로 물러서는 용기를 내야 한다.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위치를 재조정하는 것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거리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객관성이 생기고, 상대를 이해할 여유도 생긴다.

세 번째는 판단 대신 관찰하기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는 판단은 감정적으로 나를 지치게 한다. 대신 “저 사람은 지금 불안하구나. 흔들리고 있구나.”라고 관찰하면 마음의 소모가 줄어든다. 상대의 행동을 내 잘못이나 내 책임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관찰은 나를 중립으로 되돌려 놓는다.

네 번째는 바꾸려 하지 않기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도움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려’ 한다. 그러나 부조화에 빠진 사람일수록 타인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의 내면은 이미 혼란으로 가득 차 있고, 변화는 그들 스스로 열어야 할 문이다. 나는 그 문을 대신 열어줄 수 없다. 책임감과 죄책감 사이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라도 “그 사람의 변화는 그 사람의 몫”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나의 삶을 조화롭게 만드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 조화는 완벽함이 아니라 균형을 향한 지속적인 노력이다.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아프고, 불안하고, 때로는 두려움에 잠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나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만은 계속되고 있다. 이 노력이 쌓여 조용한 중심을 만들어 주고, 그 중심이 다시 나를 살아가게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균형을 잃고 흔들리는 사람, 자기 감정을 감당하지 못해 남에게 쏟아내는 사람, 허영과 고집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마주한다고 해서 내가 흔들릴 필요는 없다. 나는 내 안의 조화를 지키며 살아가면 된다. 다른 사람의 소란에 끌려가지 않는 힘, 나를 지키는 중심, 내가 바라보는 방향. 그것이 결국 나를 더 좋은 삶으로 이끌어 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정신의 부조화를 부끄러워하라. 그러나 흔들리는 순간을 두려워하지는 마라. 중요한 것은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는 노력이다. 그 노력을 기억하는 한, 나는 결코 ‘어리석은 괴물’이 되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의 조화는 나의 책임이고, 나의 평온은 나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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