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존재
하루가 멀다 하고 곁을 지키는 아들이 잠시 옷 갈아입는다고 집으로 갔다. 안 하던 간병을 10일째 하고 있다. 일밖에 모르던 사람이 이젠 노모의 곁을 지킨다. 그 사이 다시 아들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지하철역에서 뛰어 집에 도착한 다음 옷을 갈아입고 다시 병원으로 향한다. 늦은 저녁식사도, 씻을 수 있는 몇 분도 없이 돌아선다. 피곤함 보다는 앞선 몸상태가 걱정이다.
아들만 부르는 상황이 아니다. 큰 딸도 보고 싶다. 큰 형부는 왜 얼굴 안 보이냐고 궁금해한다. 사촌형제들 이름을 부르고 본인이 죽기 전에 와서 얼굴 봤으면 좋겠단다.
간병을 혼자 할 수 없는 몸 상태로 밤, 낮 두 명씩 대기하고 있다. 1인만 남으라고 통제하기에 쫓겨날까 초초해한다. 죄지은 사람 같은 모습으로 자식들이 병실을 지킨다.
의사얼굴은 입원한 지 10일째가 돼도 쉽게 볼 수 없다. 재택근무인 건가? 병실에서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면 임종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간다.
그때마다 막힌 속은 더 단단히 통증을 준다. 호전되는 경우는 미비하다. 주로 호흡기를 치료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정상적인 소변, 대변이 어렵다. 10일째 누워 있는 모습도 존경스럽다.
온몸에 퍼진 두드러기는 가려움에서 통증으로 고통을 준다. 가려워도 그저 참아야 한다. 아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항문이 아프다는 호소를 세 번이나 한다. 간호사실로 이야기한다. 예상대로 기다리라는 말 뿐이다.
병실 안으로 들어가니 다시 고통을 호소한다. 잠시 후 간호사가 손장갑을 끼우며 들어온다. 반대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옆으로 누울 수 있게 허리 부분을 잡고 살짝 몸을 돌린다.
간호사는 핀셋으로 돌돌 말린 거즈를 집어낸다. 빠르게 의료용품 휴지통에 버린다. 가족들이 뒤처리하다가 실수로 그대로 방치했다고 말한다.
"이제 괜찮아?"라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가 환자를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임에도 가끔은 그렇지 않다. 큰 증상 외에도 살펴볼 것이 늘 존재한다.
아들 얼굴을 보고는 딸들은 모두 돌아가라고 말한다. 투박한 손에 말을 안 하고 있어도 듬직함이 마음의 편안함을 주는 것이다.
두 딸은 아픈 허리로 복대를 하고, 막내는 항암 부작용으로 힘들어한다. 맘껏 아들을 누리라고 병실을 나오면 속으로 이야기한다. 어쩌면 병원에서가 아닌 집에서 웃으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어떤 것이 삶의 지혜롭게 사는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그 선택을 조금 빨리 해야 가슴 아픈 일을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