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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두 Apr 27. 2023

삶의 민낯

1

에세이 책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응원과 격려, 혹은 괜찮다는 토닥임. 사람들은 무언가에 기대어 싶어 하고, 공감받고 싶어 한다. 본능적인 욕구다. 하지만 나의 글은 삶을 예찬하지 않는다. 따듯한 위로의 말을 건네지도,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에 대한 비관을 내포하는 것은 아니다. 염세적인듯 비추어 보일 수는 있어도 딱히 비관주의자는 아니다. 이유 없는 희망에 기대지 않듯, 실체 없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을 뿐이다.




2

젊은 시절의 기억은 오랜 시간 잔향을 남긴다. 낯선 것을 경험할 때의 뇌는 최대한 모든 감각을 기억하려 애쓰기 때문이다. 어릴 적엔 내 돈으론 사 먹지 못하는 햄버거가 가장 맛있게 느껴졌다. 반면, 지금은 사 먹을 수 있어도 사 먹지 않는다. 그 맛이 그 맛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새로움이 없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곧 내일이다. 행복과 불행, 부와 가난, 삶과 죽음, 외로움, 우울.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부질없음. 누군가는 지겹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난 삶의 이런 담백한 부분이 마음에 든다. 아직 덜 살아봐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삶'은 상대적이다.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이면의 모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에는 어둡고 우울한 구석이 있다. 반면, '삶의 민낯'에는 여백이 존재한다. 삶의 화려한 치장들을 지우고 나면, 남는 것은 생(生)이다. 단순하게 말해, 존재다. 삶의 민낯은 꽤나 담백하다.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고, 잠을 잔다. 그것이 전부다. 인간은 결국에 모두 같다. 하지만 관념으로써의 인간은 그 진실을 부정하려 애쓴다. 편을 가르고, 계급을 나눈다. 있는 힘껏 저항한다. 삶이다.




3

나의 머릿속은 항상 어떤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어떤 날에는 생각이 너무 많아 두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혹자는 머리를 비우라고 조언하지만, 뇌는 부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코끼리를 떠올리지 마'라고 하면 곧바로 코끼리를 떠올리게 되는 법이다. 머리를 비운다 하더라도, 곧 다른 생각들이 그 공백을 메운다. 생각이란, 찰나의 공백마저 가만두지 않는다. 이렇듯 생각이 많은 날에는 일부로 행동거지 하나하나 천천히 들여다보곤 한다. 행위 자체에는 감정이 없다. 선도 악도 없다. 이를테면 밥을 먹을 때, 그저 밥을 먹는 것이다. 수저를 드는 손의 움직임과 코로 들어오는 음식의 냄새. 음식이 부딪히는 소리와 혀의 감촉에 몰입한다. 삶의 민낯을 본다. 삶의 민낯은 무미건조하다. 고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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