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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 May 02. 2023

삶은 양말과 같다

1

인간을 시간과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산다는 것은 정확히, 시간 속을 사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시간 위에 놓인다. 시계를 본다. 째깍거리며 움직이는 초침을 본다. 1분 1초, 시간의 흘러감을 느낀다. 시간이 더디게 간다. 시간을 의식하는 순간, 삶은 슬로우 모션으로 찍는 것처럼 느슨하게 흐른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시계를 보고 있으면, 실제로 시간이 느리게 가는 줄만 알았다. 반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적에는, 그리고 글을 쓸 때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분간이 서지 않는다. 몰입할 때, 시간의 개념이 무너진다. 인간은 삶을 의식하며 살아가기 위해 애쓴다. 의미 있는 일에 몰두하려 애쓴다. 우리의 기억 속, 추억이라 부를만한 것들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의식 속의 기억은, 삶이라는 것은 결국 견고한 무의식 위에 지어진 성이다.




2

"양말이란 게 우리의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데 필요한 불안정한 장치 같은 겁니다. 그러한 것들은 제가 항상 가장 흥미롭게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버텨내기 위해 선택하고 만들고 행하는 것들이요. 그곳에서 저는 어떤 연계성을 찾습니다. 어떠한 것들을 구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고 관찰하며 시선을 두고선, 그 연계성을 알아보는 일이 좋습니다."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 2001년 인터뷰에서


집 밖을 나서기 전, 겹겹이 쌓인 양말 더미에서 양말 하나를 꺼내 신는다.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인 행동이다. 오늘은 어떤 외투를 걸칠지, 바지와 어울리는 상의는 무엇일지 고민하면서도, 양말은 그저 대충, 아무거나 하나 집어 신는 것이다. 심지어는 하루종일 양말을 신고 있음에도, 그것을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서야 양말을 벗는다. 그러나 삶이란, 이런 무의식적인 것들 위에 정립된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수업을 들으며 하품을 하는 일.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에 어떠한 에너지를 투자하지도,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저 행할 뿐이다. 하지만 역으로 우리가 의미를 지니고 하는 행위들은 대부분 에너지를 소모로 한다. 의식을 집중한다. 스트레스를 받고, 피로해지기 마련이다. 이것들의 바깥에는 언제나 무의식적이고 무의미한 행동들이 존재해 왔음을 눈치채야 한다.


무의식적인 것들을 눈치챈다. 창 밖의 소리와, 들숨과 날숨의 호흡을 인식한다. 나의 시선에 걸리는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 세상을 한 발자국 뒤에서 관조할 때면, 나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는 듯하다. 그동안 자신이 세상에 몰입하고 있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 순간, 시간이 느슨하게 흐른다. 바쁘고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인의 시간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 삶의 민낯을 본다. 그것이 바로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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