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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 May 05. 2023

이유 모를 상실감

1

습관적으로 바다를 찾는다. 그렇다고 물속을 헤엄치거나 하진 않는다. 그저 하염없이 응시할 뿐이다. 바다를 바라보다 보면, 문득 이유 모를 상실감 앞에 마주하게 된다. 시선의 걸림 없이 펼쳐진 망망대해, 모래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 바다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향수와 경이로움. 인간은 일찍이 물에서 왔다. 생명은 태초의 바다로부터, 인간은 어머니의 양수로부터 온다. 이유 모를 상실감은, 이젠 더 이상 돌아가지 못할, 고향에 대한 상실감이다.




2

살다 보면 누구나, 언젠가 상실감을 겪게 된다지만, 그 모습은 또 제각기다. 좌절, 열등감, 공허함, 그리움. 모두 상실의 다른 이름이다. 대부분의 경우, 누군가를 곁에서 떠나보냈을 때 상실감을 경험한다. 상실감은 존재의 부재로부터 온다. 화재로 세상을 떠난 동창, 애정을 주지 않았던 반려의 죽음, 스스로 몸을 투신한 친구 등. 다양한 죽음의 모습을 목격했다. 슬픔과 연민은 상실로부터 느껴지는 당연한 감정일 테지만, 나에게 그것은 세상에 대한 기시감으로 다가왔다. 삶이라는 것이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낯선 것들로 가득 채워진 기분. 한 때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그것이 무의미한 일임을 깨닫고선 놓아 버렸다. 삶은 논리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3

상실감은 이내 불안으로 바뀌어 간다. 실존에 대한 불안. 마치 악몽을 꾸듯, 모든 논리들이 희미해진다. 발 끝부터 스멀스멀 올라와 점차 머리끝까지 잠식해 간다. 털 옷을 입은 채, 진흙이 가득 담긴 욕조 속을 잠수하는 듯한 끈적함. 상실감은 현실로부터 눈 돌리게 만든다. 밥을 먹든, 일을 하든, 그 어떤 행위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그러나 상실에 대한 불안은, 꿈을 악몽으로 만듦과 동시에 그곳에서 깨어나게 만든다.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정신이 번쩍 드는 것과 같은 원리다. 꿈에서 깨어나고 나서야 자신이 악몽을 꾸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다시 현실을 본다.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다. 빈틈없이 완벽한 세상이다.


이따금, 먼저 떠난 이들이 부러워질 때가 있다. 오해하지 마시길. 죽음에 대한 갈망이 아니다. 한 걸음 일찍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인 이들에 대한, 나의 이기적인 호기심이다. 상실을 겪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표하는 경의다.


“잘 잤어?”
“아니, 꿈자리가 사나웠어요”
“꿈이란 게 항상 끔찍하지, 꿈에서조차 해결책을 찾게 되니까”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장 뤽 고다르, 1980.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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