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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법률상 미혼 여성이 기증받은 정자로 시험관 시술을 받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보조 생식술' 윤리지침에 따르면 ‘비배우자 간 인공수정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국내에서는 정자 기증이 합법이지만, 정자를 사고파는 것은 불법이다.
이제 내 나이는 만 34세, 한국 나이로 35세다. 2023년 6월에 드디어 한국 나이가 폐지되었음에도 여전히 어른들은 한국 나이를 묻는다. 가끔 나이를 물어보면 나조차 헷갈리곤 한다. 왜냐하면 난 그 이름하여 '빠른'이라 불리며, 족보 브레이커이자 애매한 나이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있으면 나도 모르게 한 살 더 먹은 나이로 지내다가도, 다시 물어보면 나이를 정정해 주는 일이 잦다. 이렇게 내 나이를 구구절절 설명하고 법률을 언급하는 이유는, 요즘 들어 이 나이가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 노산은 만 31세부터이다. 이제 나는 빼도 박도 못하는 노산이다.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나 싶지만, 어느새 이 지점까지 와 있다. 그래서 작년부터 냉동 난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비용부터 과정까지 전부 알아보았는데, 인공수정과 동일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결혼한 언니는 미리미리 해 두면 좋다고 조언했다. 호르몬 변화로 인해 몸에 안 좋을 수도 있으니, 가능하다면 미리 여러 개의 난자를 보관해 두라는 말도 덧붙였다. 여러 가지를 알아보던 중 방송인 사유리 씨가 일본에서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얻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득 ‘한국에서 남편 없이 냉동한 난자를 정말 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생각해 보면 나는 연애조차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결혼을 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결혼에 큰 뜻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나는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커서 지금까지 일과 공부에 온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런 욕심과 욕망 덩어리인 나여서 남친이라는 작자 또는 남편이라는 작자에게 시간과 애정을 쓸 생각이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아이를 가지는 이상적인 스토리가 제일 좋겠지만, 사실 나도 그걸 제일 바라지만 현실적으로는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요즘 내 스스로 시한폭탄을 몸에 매단 듯한 느낌이다. 어디서 남편을 찾아야 하나, 아니면 내 아이의 아빠가 되어 줄 사람을 찾아야 하나.
만약 내가 39살이 되었는데도 혼자라면 아기에게는 아빠가 없는 이기적인 선택이 되겠지만, 나 역시 방송인 사유리 씨와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난 아기를 낳고 싶다. 나의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누리고 싶다. 그러나 결혼 없이는 자녀를 갖는 문제 역시 복잡하다. 아직 미혼모, 싱글맘에 대한 시선은 한국 사회에서 매우 보수적이다. 그리고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건 쉽지 않은 문제일 것이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매번 나에게 언제 결혼할 거냐고, 남자친구는 있느냐고 묻곤 한다. 날 위해 걱정해 주는 질문이지만, 종종 그 질문은 나에게 시한폭탄 같은 압박을 더 크게 느끼게 한다. ‘평범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꿈이긴 한데,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나에겐 더 어려운 것 같다.
굳이 사회의 시선과 싸우려는 생각은 없다. 싸울만큼 대담한 성격도 아니다. 다만, 나의 권리를 찾고 누리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앞으로 3년간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보려 한다. 혹은 내 아이의 DNA가 되어 줄 아빠를 찾는다. 그런 ‘남의 편’인 남편을 찾는다. 그런데 연애도 제대로 못 해 본 나에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거의 모태솔로에 가까운 내가 이제야 스스로를 돌아보며, 왜 연애를 못하게 되었는지 탐구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