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_3

욕심쟁이

by 매일 매일 끄적임




내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_3

욕심쟁이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도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꿈만 많은 피터팬이 아니라 꿈 많은 초현실주의자라서 결혼은 우선순위에서 없었다.


20대에는 학점과 과제를 잘하면 나의 앞길이 창창해질 꺼라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가 엄하기도 엄해서 12시면 무조건 집에 귀가를 해야 해서 클럽을 가본 적도 없었다. 나의 일탈을 그나마 22살 런던으로 유학을 오고서 친구들과 클럽도 가보고 일탈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과제에 목숨을 걸었다. 진짜 마지막 마지막 학기에는 3일 동안 한숨도 못 자고 작업을 했다. 그 당시는 과제를 열심히 하고 잘하면 나의 미래가 밝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졸업하고선 딱히 모두에게 막막한 미래가 나만 찬란한 꽃길은 아니었다. 그렇게 학교 생활을 뭐든 걸 놓치지 않고 했다. 과대도 하고 알바도 하고 자원봉사도 하고 관련업무 직무의 일들도 다 놓치지 않고 했다. 그리고 공모전에서도 상도 탔었다.


이런 나의 '열심히병'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30대가 되어서 더 심해졌다.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브랜드를 가지고 일을 하다 보니 더더욱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사장처럼 일 할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도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단순히 꿈만 꾸는 피터팬이 아니라, 꿈 많은 초현실주의자다. 그래서인지 결혼은 나의 우선순위에서 늘 뒤로 밀려났다. 어쩌면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것은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일에 몰두하며 나만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20대의 나는 학점과 과제를 잘하면 나의 앞길이 창창해질 거라 굳게 믿었다. 엄마의 엄격한 통제 아래, 밤 12시가 되면 무조건 집에 들어가야 했다. 신데렐라나 다름이 없었다. 22살까지 클럽의 문턱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나의 일탈은 22살 9월 런던으로 유학을 가면서 시작되었다. 친구들과 클럽에 가보게 되었고 한국에 있을 때보다 자유롭게 밤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나의 커리어와 학교 과제가 항상 1순위였다. 특히 유학 생활의 마지막 학기는 나의 치열함이 절정을 찍은 시기였다. 마지막 학년 때는 공모전, 알바, 자원봉사, 과제 이 모든 것을 다 했다. 그래서 무려 3일 밤낮을 꼬박 새우며 과제에 몰두했다. 욕심이 얼마나 많으면 나는 대학 생활 동안 정말 모든 것을 붙잡으려고 애썼다. 학업에 충실했을 뿐만 아니라, 과대표로 활동했고, 나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다 잡으려고 했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자원봉사도 하고, 전공 관련 직무도 빠짐없이 경험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공모전에 참여해 상을 타기도 했다. 당시에는 학교 과제를 열심히 하고 잘 마무리하면 내 미래가 찬란하게 빛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졸업 후 마주한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모두에게 막막한 미래가 찾아오듯이 나의 앞에도 장밋빛 꽃길만 펼쳐지지는 않았다.


이런 ‘열심히병’은 대학 졸업 후에도 나를 따라다녔다. 오히려 30대가 되면서 더 심각해졌다. 내 브랜드를 만들어 사업을 시작함으로써 더 심해졌다. 그 과정에서 내가 더더욱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업 초기에는 모든 일을 나 혼자 해야 했다. 내가 사장인 동시에 직원이었다. "사장처럼 일할 직원은 없다"는 말을 몸소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업을 하면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지만, 그 안에서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버티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가 만든 브랜드로 실현해 가는 과정은 힘들지만 매력적인 도전이었다. 이 과정에서 실패와 좌절도 많았지만, 그런 경험들이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고 또 다른 도전을 부딪힐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여전히 욕심이 많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실행해보고 싶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을 하나씩 실현하고 있다. 초현실주의자라는 단어는 단순히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의 틀을 깨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바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아주 천천히지만 작게 시작해서 꾸준히 계속 내 페이스대로 나의 꿈을 이루어 나갈 거다. 그러다 보니 결혼이 계속 우선순위에서 제일 뒤로 미루어졌다.


나는 오늘도 내 브랜드와 꿈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심지어 지금 나의 꿈을 위해 런던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20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나의 열정을 쏟아붓고 있지만, 여전히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30대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을 탐구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며,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나는 서른이라는 숫자에 얽매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발판 삼아 더 멋진 삶을 꿈꾼다.


근데 이제 30 중반이 되면서 나의 생물학적인 나이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내편이 되는 남편’, ‘나의 남편’ 보다 내 아이를 가지고 싶다. 그러다 보니 이제 시간이 없다. 한국사회에서는 결혼을 해야 아이를 갖는 것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며 이상적인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삶이다.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 좋겠지만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일단 애라도 먼저 만들고 싶다 왜냐면 생물학적으로 40 중반에는 아이를 가질 수 없지 않은가? 고민이 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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