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_2

트라우마

by 매일 매일 끄적임

내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_2

- 트라우마


이 기억은 떠오르고 싶지도 않다. 사실… 기억이 정확하지도 않다.

중학교 2학년 2학기 때쯤 일이었다. 이 일은 있고 6개월 동안 주변으로 고통받았다. 이 일도 트라우마였지만 트라우마를 더하는 충격적 일은 예고 입시에 떨어졌다. 그래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겨울방학 동안의 기억이 전혀 없다.


그 당시를 회상하자면… 마치 여러 편의 드라마가 실타래처럼 꼬여 덩어리진 채 있었다. 여기서 나오는 이름들은 실명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전적으로 1인칭 주관적 시점이다.


‘김이준이 고백한대! 대박! 구경하러 가자! 누구한테 고백한대??’

“몰라. 쟤라는데?! 안 예쁜데?”

‘뭐야 전 여친이 더 예쁘잖아. 쟤는 뭔데?’


내 귀에 들려오던 소리였다.


방과후 청소 시간이 끝날 무렵 큰 소란이 났다. 그 소란의 주인공이 내가 될 줄은 몰랐다. 집에 가던 친구들 또는 주변 애들이 우리 반으로 몰려들었다. 주변이 둥글게 조성되었다. 구경난 사건이 생긴 것인데 주인공은 나였다.


“김지은 나랑 사귀자”


같은 반도 아니고 나는 2반이면 이 남자애는 11반이었다. 그냥 번 지나치다 본 남자애가 나에게 갑자기 고백했다. ‘어떻게 날 알고 고백하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문젠 그 남자애는 그리고 일진 무리 중의 한 명이 였다. 난 사실 무서웠다. 이걸 거절해도 문제이고 거절을 안 해도 문제일 것 같았다. 알지도 못한 애가 말도 한 번도 안 섞어 본 애가 갑자기 고백해서 난 너무 당황했다. ‘친구 하자고도 아니고 사귀자라니!’ 몸이 배배 꼬이다 못해 장까지 꼬인 느낌이었다. 한참을 눈도 못 마주치고 땅만 보고 벌을 서듯 있다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거의 30분은 그러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남자애는 내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청소 검사를 하러 선생님이 오셨다. 우리 반이 아닌 그 남자애는 당연히 쫓겨났다. 그렇게 대략 일은 일단락이 되었다.

이때부터 악몽 같은 중학교 시절이 되었다.


중학교 때 나는 전교 20등 안에 꼭 들고 반에서는 항상 5등 안에 들었던 모범생이었다. 초등학교 때 예원 예술중학교에 떨어져서 일반중학교 들어와서는 서울예고는 꼭 가고 싶어 예고 입시를 열심히 준비했다. 공부든 실기든 열심히 하는 항상 열정이 가득 차 있고 매우 해맑은 친구였다. 가끔은 좀 눈치도 없을 정도로 이때는 정말 그냥 순수하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엄마가 너무 심각하게 엄해서 다른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이 고백 소동으로 난 그 시절 그 당시 유명 인사가 갑자기 되어 버렸다.


그렇게 고백의 답을 못 받은 그 남자애는 그 당시 제일 많이 사용했던 메신저인 ‘버디버디’로 통해 연락이 왔고 메신저로 다시 고백했다. 메신저로 긍정의 답을 보냈다. 정작 그 답장을 보낸 건 내가 아니었다.

피시방에서 친구들이랑 컴퓨터게임을 하며 놀았다. 그 당시 나는 스타크래프트랑 크레이지 아케이드 게임을 하면서 놀았다. 친구들이랑 있다가 그 남자애가 연락이 온 거였다. 내가 답장을 못 하겠다고 하자. 내 친구 직접 답장을 해준 거였다.


“너 얘 어떻게 생각하는데?”

‘음…’

“아니 좋아? 싫어?”

‘음… 나쁘지는 않은 거 같은데…’

“오케이 그럼 좋은 거네”


그렇게 좋아한다고 되어버려 답장은 긍정의 뜻으로 답장이 되었다. 그리고선 사귀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나의 의견은 내세우지 않는 아이였다. 에너지는 넘치지만, 사람은 좋아하지만, 내향형이었고 항상 남들을 맞추어 주었다.


첫 남자 친구였다. 모든 게 처음이었다. 짝사랑은 한 적은 있었고 누가 좋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이고 요란하게 고백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진짜 사귀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 당시에 난 이성에 대해서… 아주아주 매우 매우 전무했다. 정말 순수했다. 구김이 하나 없는 흰색 종이 같았다. ‘성’에 대한 내용은 무지했다. 엄마가 엄격해서 그런 건 아예 가까이게 가지도 못 가게 해서 중학생이었지만 마치 유치원생의 정도의 ‘성’의 관념 두고 있었다. 진짜 어떻게 아기를 갖는지 상상도 못 할 정도였다. 중학교 때 성교육을 하고 생물 과목에서 ‘정자가 난자를 만나 수정된다.’ 이론으로 알았지만 진짜 어떻게 만나는지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총 사귄 기간은 2주가 채 안 되었을 것이다.

2주 동안임에도 불구하고 사춘기 열을 올라온 중학생 남자애는 그 열에 맞추지 못한 여자 친구 때문에 답답해서 미쳐버렸을지 모르겠다. 스킨쉽도 모르고 관심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100도에 끓어 넘치는 아이를 제지할 방법도, 막을 방법도 알지 몰랐다. 그저 하자고 하면 따라 해줬다. 바쁜 나의 학원 일정에서 피시방 가자고 하면 같이 가고 영화관 가자 고하면 같이 가서 보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갔던 거 같다. 손도 잡고 뽀뽀도 했다. 난 엄마 아빠랑 하던 뽀뽀만 그냥 했는데 그 친구는 그걸 바라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자꾸 사람이 없는 곳으로 날 데리고 갔었다. 어느 날 비상구 쪽을 데리고 와서 키스했다. 그 당시에는 그게 키스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뽀뽀를 오래 길게 했던 것 같다. 건축학 개론의 납뜩이가 말한 것처럼 ‘비벼’ 같은 것은 없었다. 만약 그게 있었다면 도망갔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있었는데 내 기억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는 내가 좋아서 바래서 하는 스킨쉽이 아니다 보니 또한 끓는 점이 다르고 속도가 다르다 보니 따라가기가 버거워서 내가 그만 만났으면 했다. 그래서 계속 도망 다니고 이런 얘기를 창피해서 못 하고 계속 못 만나겠다고 친구들한테 얘기했다. 친구들이 어떻게 보면 이별 전달을 해준 것 같다. 하여튼 그 남자애로서도 황당했을 것이다.


이 일이 계기가 되었는지 친했던 친구들은 나를 따돌렸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 남자애를 버린 애가 되었다. 거기다 그 남자애는 계속 내가 좋다고 친구들이 다들 있는 데서 또 고백을 해버렸다. 그때는 거절하고 싶은데 거절을 못 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선생님이 날 구해주었다. 그렇게 또 도망가 버렸다.

그때 내 의견을 제대로 표현했다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땐 정말 나의 감정을 잘 몰랐다. 어떻게 표현하는지도 잘 몰랐다. 누구도 그런걸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렇게 일진 무리의 잘생긴 남자애를 여러 번 차버린 찌질이에서 은따(은근히 따돌림)가 되어버렸다. 친했던 친구들이 따돌렸다. 그 당시 나의 사회성은 그렇게 좋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엄마가 용돈을 좀 넉넉히 항상 줬었다. 혼자 뭘 사 먹기가 그래서 친구들 것도 같이 사서 나눠 먹었었는데 이게 습관이 되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난 친구들 사이에서 ‘열린 지갑’이 되어 있었다.


첫 남자 친구 사건과 따돌림이 같이 맞물리게 되면서 난 도저히 학교에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이 제일 끔찍했다. 그냥 계속 수업하면 공부라도 할 텐데 중간중간 쉬는 시간은 지옥과 다름이 없었다. 급식을 먹는 점심시간은 반 안에서 혼자서만 먹어서 그렇게 죽고 싶게 창피하고 곤혹스러울 수가 없었다. 같은 반 친구들 대부분이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엄마한테 이런 구체적인 자세한 얘기는 안 하고 전학 보내달라고 떼를 썼다. 엄마는 그 당시는 크게 대수로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네가 걔들을 따돌려라는 식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렇게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며 3학년 1학기까지 다녔던 것 같다. 도저히 진짜 죽을 것 같아서 예고 실기 준비한다고 하면서 3학년 2학기는 현장학습 처리되도록 다 빼버렸다. 나만의 살길이었다. 엄마도 이렇게 해야 설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선 학교를 안 나오다가 나왔었는데 그때쯤 예고 결과 발표가 있었었다. 그때 나보다 걔들이 어떻게 그 결과 날짜를 더 잘 알았는지 날 컴퓨터 실을 데리고 가서 예고 결과를 보자고해서 같이 보게 되었다. ‘불합격’ 모두가 같이 보게 되었다. 그렇게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4~5개월 동안 현장학습으로 빠졌던 나에게 치욕 같았다. 게다가 그 친구들은 ‘얼마나 잘되나 보자’란 마인드 였던것 같은데 통쾌하게 그들의 기대에 맞게 실패한 걸 보여주니 더 치욕스러웠다. 그렇게 난 이들과 똑같은 고등학교를 갈까봐 무섭고 창피해서 고등학교 배정일까지 겨울 방학 동안 모든 기억을 점점 지워버리는 만큼 나의 살을 쪄갔다. 집 밖에도 방에서도 안 나오고 살이 통통에서 뚱뚱으로 쪄가던 어느 날 엄마가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봤던 것 같다. 그날 대성통곡을 하며 1년 동안 있었던 일을 엄청 디테일하게 어떻게 따돌렸는지 얘기했던 것 같다. 돈도 뺏겼던 것 같은데… 그렇게 울고 나니 엄마는 동네 고등학교로 배정되면 당장 할머니 주소지로 해서든 해서 전학 보내준다고 했었다. 그때부터 기억이 정확하게 나기 시작한다.


그 당시 우리 동네는 뺑뺑이로 고등학교가 배정이었다. 우리 중학교에서 전교에서 딱 3명만 아주 먼 고등학교로 배정이 되었다. 그 3명 중의 한 명이었다. 우리 집에서 조금 먼 학교라서 처음 들어본 고등학교였는데 너무 좋았다. 너무 행복했다. 더 이상 그 애들을 안 보고 뭔가 새롭게 시작해서 말이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는 중학교 때 교복의 두 배 가까이 커진 교복만큼 마음과 사회성과 모든 면에서 굳은살이 생겼다.


이렇게 트라우마가 있다. 그래서 특히나 아는 사람은 못 만난다. 교내 연애는 못 한다. 사내 연애도 못 한다.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에서부터 어떻게 만나 잘 시작할 수 있을까?

이렇게 이후로부터 모태 솔로가 되었다. 모태 솔로는 맞는가? 이후로 연애를 시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ps. 트라우마 얘기다 보니 집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생각하기 싫은 얘기를 끄집어내고 기억이 안 나는 부분을 끄집어내다 보니 어떻게 되면 왜곡된 내용이 많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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