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고독

어두운 상상의 세계 속 지어진 고독이라는 공간

by 훌륭한어른이
그러니, 고독보다 더 위험한 상태가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상상력은 그 본성상 고상한 것을 추구하게 되고 문학 작품을 통해 환상적 이미지들을 받아들인 나머지 우리보다 더 고상한 일련의 존재들을 공상하게 된다. -젊은 베르테르의 괴로움 (괴테) -

꿈은 상상 속에 피어난다. 상상 속 미래의 나는 대단하다. 지금보다 더 훌륭하고 가진 것이 많다. 성숙한 어른으로서 세상에 좋은 영향을 준다. 이러한 상상은 긍정적 상상이라 할 수 있겠다.


부정적인 상상이 있다. 특히 이미 벌어진 과거에 얽매였을 때 혹은 내 의지와 선택에 의해 절대로 바꿀 수 없었던 상황을 억지로 뒤집으려 시도할 때, 상상은 우리 발목에 무거운 추를 달아 암흑 구덩이로 추락시킨다.


'문과 대신 이과를 갔더라면.'

'10년 전에 비트코인을 샀더라면.'

'좀만 더 아니 훨씬 키가 컸더라면.'

'더 똑똑하고 돈 많은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났더라면.'


상상을 통해 구성된 만약의 세계는 단 하나의 결점 없이 완벽하다. 지금보다 더 나았을 거라는 굳건한 확신이 있다.


사람도 상상의 대상이다. 아프게 스친 인연이 있다. 내 마음 가득 채워주었지만 단 한 번도 닿아보지 못한. 그 인연들이 상상 속에서 무럭무럭 자란다. 그들은 아름답고 따뜻하다. 그들의 흠결을 발견할 기회를 놓친 바람에 아름다운 향기만이 진공 상태로 증폭되어 상상의 세계를 채운다.


상상은 무궁무진하다고 했던가? 실제와 동떨어져 저 편 세상에서 그려지는 한도 없는 스케치북 위에 꿈도, 만약도, 짝사랑의 대상도 무궁무진하게 뻗어나간다.


마찬가지로 고독도 상상 속에서 무한히 위험하게 작용한다.


어두운 배경 속 아무도 없는 적막한 우주 같은 공간 속에 뚝딱뚝딱 집이 지어진다. 내 마음이 그리 들어가라 지시 내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 속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방금 지어진 집의 문턱을 넘는다. 문이 닫힌다. 이제부터 그 문은 웬만해선 열기 힘들다. 집안도 바깥 세상과 마찬가지로 어둠 뿐이다. 그러한 상황이 답답할 법도 하지만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아무 생각하기 싫다. 방 구석에 쪼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는다. 그때 무슨 소리가 들린다. 상상의 영상.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던 창문 너머로 영상이 재생된다.


주제는 '나 없이도.'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

'나 없이도 행복한 사람들.'

'나 없이도 사랑하는 인간들.'


영상 빛이 점점 더 집안 깊숙한 곳으로 침범할 수록 더욱 움츠려 숨을 곳을 찾는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도록. 화려한 장면으로 비치는 다채로운 빛과 대조되어 홀로 몸을 숨긴 공간이 더욱 어둡게 가리운다. 상상과 함께 고독은 마치 깊은 동굴 속에 갇혀버린 어린아이와 같다.


고독의 상상 속에 가끔 파묻힐 때가 있다. 그곳으로부터 도망나와 가만히 보면 실체 없는 허상일 뿐이다. 그러나 그 세계에 빠지는 순간 내 전부가 된다.


불현듯 이끄는 그곳 세상을 영구적으로 없애지 못한다. 다만 언젠가 원래 있었던 나의 세계로 돌아갈 거란 믿을 품을 수 밖에.


언젠가 고독이란 상상 속에서 나온다.

그래서 지금의 고독을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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