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 싶은 사랑보다 받고 싶은 사랑
쓸모는 이기적으로 내 재주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실질적 필요에 응답하는 것임을 잊고 살았다. - 프랭클린 익스프레스(에릭 와이너) -
군 복무 시절 친해지고 싶은 후임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후임이었다. 후임 A는 활발하고, 붙임성이 좋았다. 나는 혹시나 A가 너무 튀거나 선임과 소위 맞먹으려 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잔소리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지만 당시에는 어물쩡 지나가기보다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선임이 필요했고, 그 역할을 A의 맞선임인 내가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후임과의 거리는 멀어졌다. 후임에게 나는 잔소리쟁이, 귀찮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후 관계를 회복하고자 그에게 냉동식품을 사주며 대화할 시간을 갖고자 했다. 최대한 상냥한 말투로 말하고, 칭찬을 많이 해줬다. 그러나 내가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어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하는 후임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전역 날짜가 다가올 수록 내 마음은 급해졌다. 엉켜있는 실타래를 어서 풀고 개운하게 전역하고 싶었다. 하지만 노력할 수록 그 실타래는 더욱 엉켜버리고 말았다. 내 정성이 쓸모 없어지고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것만 못해진 것 같아 어린 마음에 절망했다.
우리 아버지는 날 사랑한다. 아버지는 나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한다.
"삼겹살 구워줄게."
"시장에서 방울토마토 사왔는데 진짜 달아. 먹어봐."
"오늘 밖에서 돼지갈비 먹자."
아버지는 나에게 배풀고 싶은 걸 쭉 늘어놓는다. 자식으로서 참 감사하다. 그러나 마음이 내키지 않아 거절하거나 반응이 시원찮을 때 아버지는... 섭섭해하신다. 그래서 나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가짜 연기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가 종종 있다. 사랑을 주는 아버지는 즐거우셨겠지만 사실 나는 항상 그렇지는 않았다.
사.랑.의. 쓸.모.
어떤 사랑이 쓸모 있을 지 생각해본다. 사랑이란 존재가 무조건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 자체로 마냥 훌륭한 거라고 배웠으니까. 사랑의 발신인과 수신인이 동일하다면 상관 없겠다. 하지만 문제는 사랑의 발신인과 수신인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랑을 주는 행위는 행복한 일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베풀 수 있음에, 도움이 될 수 있음에, 이를 통해,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음에 마음에 꽃이 핀다. 그 꽃이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 향기로 전달된다면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이 인공 방향제처럼 전해질 수 있다. 분명 향기로우나 오래 맡으면 머리가 아프고 부담스럽다. 그렇다면 그 사랑의 향기를 과연 쓸모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사랑의 발신인에게 정말 미안하지만... 안타깝지만... 긍정의 답을 하기 힘들 것이다.
쓸모있는 사랑은 내가 주고 싶은 사랑이 아닌, 상대를 행복하게 하는 사랑이다.
나의 사랑은 적정한 온도로 전달 되었으면 한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 그 사람이 편하게 느꼈으면 한다. 너무 부담스럽지도, 성의 없지도 않아 미소를 짓게 했으면 한다.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내가 들인 정성이 아까우리만큼 그 사람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할 수 있다. 그때 실망하지 않겠다. 서운해하지 않겠다. 의연하게 웃어 넘기겠다. 만족을 강요하지 않겠다. 그 사람을 생각하며 쌓아올린 사랑의 조각의 시간들이 행복했음을, 그 자체로 나는 행복했음을, 그래서 그걸로 충분함을 가슴에 품겠다.
당신이 기꺼워하는 쓸모있는 사랑을 하고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