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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지원 May 05. 2023

주 69시간 논쟁: MZ세대가 바라는 ‘진짜 노동개혁’

연합뉴스

대통령실발(發) 노동개혁 논란을 보고 있노라면, 국민의힘 당원인 나조차도 한숨이 나온다. 언제는 120시간 이랬다가, 갑자기 69시간이라더니 반발이 빗발치니까 ‘가짜뉴스’, ‘극단적 프레임에 씌워진 오해’라며 60시간으로 낮췄다. 그런데 오늘, 60시간이 아니라며 상한캡을 씌우지 말자는 발표가 나왔다.


X도 Y도 아니라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Z다’라고 말해야 한다. 국민의 듣기능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한국어를 보다 명확히 사용해주시면 좋겠다. 주제넘은 얘기지만, 대통령실은 말을 해도 너무 못한다. 소통능력 부족이 아니라 이 정도면 무슨 말인지 전달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니 거의 장애 수준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심히 걱정된다.


소통의 문제에 대한 지적은 이미 언론에서도 충분히 언급되고 있으니, 이번 글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써보려 한다. 나는 정부와 대통령실의 근로시간 상한캡을 없애자는 큰 틀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당연히 시장경제적 관점에서 동의하나, 발표 과정에서 그들은 시장경제 논리를 스스로 정면으로 반대해버리는 모순에 빠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문재인 정부 시절 주52시간제의 문제는 기업과 노동자 간에 자율적으로 정해져야 할 노동시간에 정부가 개입하여 임의적으로 상한캡을 씌운다는 점에 있다. 윤 정부와 대통령실은 이 상한캡을 없애는 것을 원하는 것 같다.


그러면 여기서 논리적 모순이 생긴다. 상한캡을 없애고 싶은게 목적이었다면, 왜 굳이 ‘69시간’의 상한캡을 언급했는가? 과거 정책과의 차이점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하한선’을 강조했어야 옳다. 왜냐하면 시장경제는 정부가 최종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제한만 하고 가격이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놔두어야 하니까. 그러나 대통령실은 시장경제를 따른다면서 시장경제에 어긋나는 발표를 해버린 것이다. 그저 일개 소통 과정의 오해가 아닌 이유다.


그 69시간은 어떤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서 누구 맘대로 정한 것인가? 대안을 얘기하자면, 같은 52시간이더라도 상한캡(maximum)으로서 작용하지 않고 하한선(minimum)으로서 기능하게 한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쉽게 말하면, ‘최대 52시간’과 ‘최소 52시간’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또, 물리적인 근로시간만 늘리자는 게 아니라 질적인 측면, 즉 생산성과 인센티브를 얘기했어야 옳다. 어떻게든 몇 시간이라도 직원들에게서 더 쥐어짜내려고 하는 구시대적 자본가, 보수 기득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명백히 거대한 정무적 실수였다. 아까 언급한 것처럼 52시간을 하한선으로 전환하자, 대신 상한캡을 없애는 만큼 늘어나는 근로시간에 대해서 어떻게 윤 정부는 시장이 더 효율적으로 보상할 수 있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설파한다면 미래지향적인 얘기가 된다.


그러나 그런 MZ세대들이 듣고 싶어하는 ‘진짜 노동개혁’이 무엇인지 윤 정부는 사실상 전혀 맥을 짚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민노총 때려잡기가 아니라, 바로 미국처럼 능력에 대한 파격적이고도 정당한 보상, 늙어 빠진 연차, 호봉 등의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이다.


머니투데이

물론, 순서적으로 민노총을 때려잡아야 후자가 가능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것도 일정 부분 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후자가 더 중요한 목표임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라는 것을 대중들에게 어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은 민노총 때려잡기가 최종 목표로 보여서 단기적 지지율 상승을 노린 극우적 행태로만 비춰질 뿐, 어떤 미래지향적인 비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민의힘 차기 총선 승리를 위해서도 현명한 전략이 아닐 듯 싶다.


MZ란 말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입맛에 맞는 청년들만 골라서 보좌역이니 자문단이니 병풍 세우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그들이 진짜 바라는 정치적 아젠다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게 우선 아닐까? 알려줘도 모르면 그건 MZ의 문제는 아니다. 대통령이 ‘결단’ 내리는 것은 이제 그만. 겸허한 소통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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