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주말 산책을 나섰다.
잔뜩 흐린 하늘과 눕눕한 바닷바람이 한여름 대낮 산책길을 나름 경쾌하게 했다..
바람은 불어 살갗은 시원한데 습도가 높아 흔들어 대는 팔에는 촉촉한 물기가 모여들었다.
한참을 걸었다.
이 흐린 날에도 남편과 나는 선글라스와 모자를 장착하고 휴대폰은 바지 뒷주머니에 꽂은 채 열심히 걸었다.
'오~~ 하늘! 오늘 멋진데? 완전 매력적인 청년 같아!'
라는 말에 남편은 또 싱거운 소리 한다며 멋쩍은 듯 두어 걸음 앞서 걷는다.
여느 때처럼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무엇이 달라졌나 살피며 걷는다.
어.. 이 과일가게 웬 일로 가게 앞을 청소를 했네.
십원빵 가게 사장님은 오늘도 문을 여셨네. 허리는 좀 괜찮으신가?
어머! 여기 있던 옷가게는 없어졌네, 어쩌누.
아이고! 여기는 하수구 냄새가 여전하네. 어떻게 좀 안되나?
오늘도 여기는 할머니들만 잔뜩 나와계시네.
파지 줍는 저 어르신 힘드실 텐데... 내 노년이 저러지 않기를... 우리는 어찌 되었던 참 다행이다.
어머나 무슨 편의점이 오늘 같은 날 문을 닫았어?
...... 이렇게
온갖 참견을 하는 나에게 남편은 말한다.
"우리 둘이서 저기 고깃집 가서 고기 먹고 갈까?"
"너무 좋지! 그러자 우리 먹고 가요"
집에 있는 둘째는 따로 챙겨 주기로 하고 산책길 오며가며 몇 번씩이나 눈여겨보았던 그 고깃집에 우리는 들렀다.
눈에도 맛있어 보이는 선홍빛깔의 고기를 골라 테이블에 앉아 한 상차림을 받고 시원한 소맥 한잔으로 우리는 눌러둔 갈증을 풀었다.
밑반찬이 좀 빈약했다.
이것으로 우리는 한참 수다를 피웠다.
남편과 나는 언제나 이런 수다를 자주 피운다.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으로 자질구레한 수다를 피운다.
그러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노년생활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남편은 은근 나이 듦의 무게를 느끼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노년의 생활에 대한 수다를 종종 시작한다.
나도 안다.
이 사람이 점점 힘이 드는 모양이다.
이 사람이 점점 자신감이 잦아드는 모양이다
이 사람이 체력이 떨어지는 모양이다.
이 사람이 점점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
오늘 남편은 말한다
"그저께 친구들하고 한잔 할 때 말이야, 그 친구 동네에 주택부지가 얼마 안 하더라고, 우리 난중에 거기 땅 사서 쪼갠하게 집 짓고, 남는 돈 가지고 거기 가서 살면 어떨까?"
남편은 한 참 고심을 하고 내게 툭 내뺃았을걸 안다.
나는 웃으며 말한다
"하늘! 거기도 좋은데 우리 그냥 제주도 가서 살아요!
한적한 동네 조그마한 주택 하나 사서 그냥 그 동네 주민으로 스며들어 살아요. 요즘 기본임금도 높은데 간간히 하루 일당 받는 인부로 이 밭에서 하루 저 밭에서 하루 일하고 편하게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요. 그렇게 살면 나는 너무 좋지 "
남편은 말한다.
"거기는 아무도 없는데 괜찮아?"
나는 얘기했다.
"괜찮아! 지금 여기는 뭐 누가 있어서 왔나요?
자기랑 같이 있으면 그걸로 된 거지!"
그러자 남편은 피식 웃으며 얘기한다
"그래! 그것도 참 좋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한라산도 올라가 보고 제주도 오름도 함께 거닐어보고 그러다 당신 말대로 며칠은 일도 좀 하고 둘이서 공도 좀 치고 그렇게 살면 좋겠네!
근데 애들은 어쩌지?"
"큰 놈은 이제 독립시켜야 하고 둘째는 한창 커가는 거니 어디든 상관있울라구요. 그래도 나중에 둘째 녀석에게는 어떨는지 한번 물어는 봐야지"
남편의 젓가락질이 리듬을 타면서 한결 가벼워졌다.
나도 양껏 먹었다.
기분 좋게 식당을 나서는데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뽑아 든 자판기 커피는 마시고 가야겠다며 가게 앞 간이 의자에 앉았고 그 사이 남편은 식당으로 다시 들어가 비닐봉지 2개를 얻어 왔다.
우산 하나 빌려주신다는 식당 사장님의 친절을 뒤로하고 들고나온 비닐봉투 하나를 나에게 내밀며, 혹 모르니 봉투에 휴대전화를 넣어 둘둘 말아서 뒷주머니에 꽂으라 한다.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나는 비닐봉지에 전화기를 넣고 둘둘 말아 뒷주머니에 꽂았다.
그리고 우리는 폭우를 편히 맞으며 천천히 팔짱 끼고 걸었다.
우리는 비 맞고 걷기로 작정했음에 뛸 필요가 없었다.
그냥 천천히 걸었다.
팔에 탁탁 튀기는 빗물의 따끈 거림을 느끼면서, 빗물에 미끄덩거리는 남편의 팔뚝을 잡고서 기분 좋은 걸음을 걸었다.
곧 모자에서도 뚝욱뚝 폭우와는 상관없이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속옷까지 빗물이 스며들면서 그렇게 흠뻑 젖어 속옷의 묵직한 그 느낌도 좋을 만큼 폭우 속을 걷는 지금 옆에 남편이 있으니 그저 좋았다.
남편도 그런다.
"모처럼 이렇게 비 맞고 걸으니 참 좋네 "
나는 절로 흥이 돋는다.
"우리는 참 잘 맞아! 그치?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이렇게 폭우를 함께 맞고 걷는 게 어디 쉬워?
근데 우린 이렇게 좋은 걸 보면 진짜 우리는 서로 참 좋은 사람인가지..
자기야! 진짜 좋다"
두둥둥 두둥!
발걸음에 춤바람이 묻어난다.
발걸음은 춤을 추고 미끄덩거리는 손은 남편을 감싸고 펼쳐든 손바닥엔 타닥타닥 발걸음에 흥을 돋우는 소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