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의 잔혹성이 실록에 남은 이유
정도전(鄭道傳)이 이색(李穡)을 자연도(紫燕島)로 귀양보내고자 하여 경기 계정사(京畿計程使) 허주(許周)로 하여금 잡아 보내게 하였다. 허주가 자연도에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를 어렵게 여겨, 그 구처(區處)할 것을 물으니, 도전이 대답하였다.
"섬에 귀양보내자는 것은 바로 바다에 밀어넣자는 것이다."
조금 뒤에 이색을 장흥(長興)으로 귀양보내라는 명령이 나오게 되니, 도전의 계획이 마침내 시행되지 못하였다.
태조 1년 7월 30일 자 기사다. 정도전이 이색을 무인도인 자연도(紫燕島)로 귀양 보내려 하자, 담당 관리가 그곳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다고 난색을 표한다. 그러자 정도전은 "섬으로 보내자는 것이 바로 바다에 밀어 넣어 죽이자는 것"이라며 자신의 본심을 실토한다.
정도전은 왜 이색을 이토록 극단적인 방법으로 제거하려 했을까? 이색은 고려 말 최고의 유학자이자, 정몽주를 비롯한 수많은 사대부의 스승이었다. 그는 고려 왕조에 대한 충의를 지키려 했던 온건파 사대부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새로운 나라 조선에겐 큰 위협이었다.
반면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설계자이자 급진 개혁파의 선봉장이었다. 그는 조선을 성리학적 이상 국가로 만들고자 했고, 이를 위해서는 고려의 낡은 체제와 인물을 완전히 청산해야 한다고 믿었다. 특히 조선 건국 초기는 왕권과 국가의 기틀이 매우 불안정한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구시대의 상징인 이색은 반대 세력의 구심점이 될 수 있었다. 정도전의 계획은 개인적인 원한이라기보다는, 새 왕조의 기틀을 다지기 위한 냉혹한 정치적 결단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건국 일등공신인 정도전의 잔혹함이 이토록 생생하게 드러나는 기록이 공식 역사서에 남았다는 점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굳이 정도전에게 불리한 내용을 남길 필요가 있었을까? 해답은 이 기록이 실록에 실릴 당시의 정치 상황에 있다.
정도전은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훗날 태종)에게 숙청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이후 권력을 잡은 이방원 세력이 태조실록 편찬을 주도하게 되는데 그들의 입장에서, 정도전의 급진적이고 무자비한 면모를 보여주는 이 기록은 굳이 삭제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정도전을 제거한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효과적인 장치였기 때문이다.
* 조선왕조실록을 해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