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을 꼼짝 못하게 한 김과의 명쾌한 답변

사관과 경연이 필요한 이유

by 김욱


절대 권력자인 왕에게도 불편한 존재가 있었을까? 조선의 3대 임금 태종은 어느 날 신하들에게 왕으로서 느끼는 두 가지 불편함을 털어놓는다.


첫 번째 불만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는 사관(史官)의 존재였다. 이에 대해 신하 김과는 깊은 궁궐에서 자칫 나태해지기 쉬운 군주를 바로 세우는 것은 오직 하늘과 '사관의 붓(史筆)'뿐이라고 답한다. 임금의 모든 언행이 기록되어 좋고 나쁨이 후세에 그대로 전해진다는 두려움이야말로, 군주가 스스로를 경계하고 올바른 정치를 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장치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경연(經筵)에 대한 것이었다. 스스로 부지런히 학문을 탐구하고 있는데, 굳이 여러 신하를 모아 경연을 열 필요가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김과는 이 합리적으로 들릴 수 있는 주장마저 원칙을 들어 반박한다. 문제는 학문을 좋아하는 태종 당대가 아니라, 혹시라도 학문을 게을리하는 후대의 왕이 나타났을 때다. 만약 태종이 경연을 소홀히 한 선례를 남긴다면, 어리석은 후대의 왕이 이를 핑계 삼아 공부를 폐하고 간신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연은 왕 개인의 학문적 성취와 무관하게, 반드시 지켜져야 할 '제도'임을 역설한다.


이처럼 태종의 솔직한 불만과 그에 흔들림 없이 원칙을 설명하는 신하의 대화는, 조선 왕조가 추구했던 이상적인 군주상과 권력을 제어하던 통치 시스템의 핵심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태종 1년 3월 23일

승지가 시독 김과와 함께 사관과 경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다


임금이 다섯 승지(承旨)와 시독(侍讀) 김과(金科)에게 이르기를,

"전일에 사관(史官)이 사냥하는 곳에 따라온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니, 모두 대답하기를,


"사관의 직책은 시사(時事)를 기록하는 것을 맡았는데, 하물며 인군(人君)의 거둥이겠습니까?"


하였다. 과가 앞으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인군은 구중 궁궐에 있어 경계하는 뜻이 날로 풀리고, 게으른 마음이 날로 생기는 것을, 누가 능히 말리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군은 오직 황천(皇天)과 사필(史筆)을 두려워할 뿐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왜 그런가?"


하였다. 과가 대답하기를,


"하늘은 형상이 없으나, 착한 것은 복을 주고, 음란한 것은 화(禍)를 주며, 사필(史筆)은 시정(時政)의 좋고 나쁜 것과 행동의 잘잘못을 곧게 쓰지 않음이 없는데, 만세에 전하여 효자와 자손이 능히 고치지 못하니, 두려운 일이 아닙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


하였다. 과가 또 말하기를,


"비록 사관으로 하여금 입시(入侍)하지 못하게 한다 하더라도, 다섯 승지(承旨)가 모두 춘추관(春秋館)을 겸하여 일동 일정(一動一靜)을 또한 모두 씁니다."


하였다. 임금이 처음에는 그런 것을 알지 못하고 항상 가까이 하기 때문에, 자못 소홀히 여겼었는데, 이때부터 언동(言動)을 더욱 공근(恭謹)하게 하였다. 임금이 또 말하기를,


"내가 비록 날마다 경연(經筵)에 나아가서 여러 대신들과 강론(講論)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항상 그대와 더불어 글을 읽으니,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한가지다."


하니, 과(科)가 대답하기를,


"그러하오나 불가한 것이 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무엇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신은 전하의 호학(好學)하시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하오나 여러 어진 신하들과 더불어 강론(講論)하지 않고, 오직 소신과 더불어 읽으면, 경연의 법은 장차 폐지될 것입니다. 후세의 자손이 반드시 이를 본받는 자가 있을 것이오니, 혹시 어둡고 용렬한 임금이 있어, 아첨하고 간사한 신하가 날마다 깊은 궁중에 들어와서 하지 않는 것이 없고, 나가서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임금께서 글읽기를 좋아한다.’고 하면, 딱한 일이 아닙니까? 이것은 교훈을 삼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전하의 호학하시는 것과 같이 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 요사이 수리하는 것이 끝나면 마땅히 경연에 나아가겠다."


하였다.



승지가 시독 김과와 함께 사관과 경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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