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판 세월호 사건
태종 3년, 쌀을 운반하던 배 34척이 바다에 가라앉고 1천 명에 가까운 백성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다. 훗날 밝혀진 원인은 참담했다. 책임자는 술에 취해 배에 오르지도 않았고, 궂은 날씨를 무시한 채 무리하게 출항을 강행시켰다. 국가 시스템의 부재가 부른 명백한 인재, 마치 '조선판 세월호'와 같은 사건이었다. 이 비극 앞에서 군주 태종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의 태도는 단호하고 명확했다.
그는 즉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선언하며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통감했다. 그리고 "사람이 먼저다"라는 원칙을 세웠다. 그는 당장 비효율과 물류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위험한 뱃길 운송을 중단하고 육로로 운반할 것을 명했다. "육로 운송의 어려움은 소와 말이 수고하는 것뿐이지만,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라는 그의 말에는 백성의 생명을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군주의 철학이 담겨 있다.
권력을 대하는 우리의 기준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권력을 우리는 용납하지 않았다. 태종이 보여준 리더십은 600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큰 인명 희생 없이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뤄낸 우리의 저력은, 어쩌면 이렇듯 사람을 귀히 여기는 태도가 역사의 고비마다 이어져 왔기 때문은 아닐까.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5월 5일
<경상도의 조운선 34척이 바다에 침몰되다>
경상도의 조운선(漕運船) 34척이 해중(海中)에서 침몰되어, 죽은 사람이 대단히 많았다. 만호(萬戶)가 사람을 시켜 수색하니, 섬[島]에 의지하여 살아난 한 사람이 이를 보고 도망하였다. 쫓아가서 붙잡아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도망하여 머리를 깎고, 이 고생스러운 일에서 떠나려고 한다."
하였다. 임금이 듣고 탄식하기를,
"책임은 내게 있다. 만인(萬人)을 몰아서 사지(死地)에 나가게 한 것이 아닌가? 닷샛날은 음양(陰陽)에 수사일(受死日)이고, 또 바람 기운이 대단히 심하여 행선(行船)할 날이 아닌데, 바람이 심한 것을 알면서 배를 출발시켰으니, 이것은 실로 백성을 몰아서 사지(死地)로 나가게 한 것이다."
하고, 좌우에게 묻기를,
"죽은 사람은 얼마이며, 잃은 쌀은 얼마인가?"
하니, 좌우가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대개 얼마인가?"
하니, 좌우가 대답하기를,
"쌀은 만여 석이고, 사람은 천여 명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쌀은 비록 많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지마는, 사람 죽은 것이 대단히 불쌍하다. 그 부모와 처자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조운(漕運)하는 고통이 이와 같으니, 선군(船軍)이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도망해 흩어지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다. 우대언(右代言) 이응(李膺)이 말하기를,
"육로(陸路)로 운반하면 어려움이 더 심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육로로 운반하는 것의 어려움은 우마(牛馬)의 수고뿐이니,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