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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ke Apr 16. 2024

독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 독성학(20)

물질도 다면적이다

 오랜만에 약속이 있어 정시 퇴근이다, 하지가 얼마 지나지 않은 탓인지 6시 조금 넘은 시간임에도 대낮처럼 환하다. 늦을까 마음이 급해, 언덕을 너머 내리막길이 끝나는 지점에 시속 80킬로미터 과속단속카메라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지나기 위해 엑셀레이터에서 발을 뗀다. 앞차가 브레이크를 밟는다. 브레이크를 밟기 싫어 1차로에서 2차로로 차선을 변경했다. 또 앞차가 브레이크를 밟는다. 다시 3차로로 차선을 바꿨다. 잠시 후 차량 엔진 소음을 뚫고 마찰음과 충돌음이 들렸고 내 앞에는 중형 SUV 차량 뒷바퀴가 눈앞에 나타났다. 양쪽 직진신호인데 어디서 갑자기 차가 나타났다는 말인가. 

 초보운전인 청년이 초행길에 내비게이션이 좌회전하라고 하니 얼떨결에 좌회전하며. 1차로는 차는 가까스로 비켜갔지만, 2차로를 달리던 차량은 차량 뒷부분과 약간의 접촉이 있었고, 차량을 보지 못한 나는 그대로 충돌해 버린 것이었다. 순간적인 헛웃음과 함께 브레이크 밟을 겨를도 없이 충돌하고 말았다. 에어백이 터지고 안경은 온 데 간데없다. 먼저 화재 위험을 줄이기 위해 차 시동을 끄고 키를 뽑았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후 내리려 문을 열려했지만 차량의 펜더가 밀려 들어와 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마치 다이하드의 주인공처럼 에어백에서 날린 먼지를 뒤로하고 문을 발로 차고 밖으로 나왔다. 그 와중에 핸들을 돌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퇴근 시간 사거리엔 제법 많은 사람이 있었고 자칫 핸들을 인도 쪽으로 돌리기라도 했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사고 신고를 하고 기다리던 중 신호대기 하던 사람들이 차에 탄 사람 많이 다친 것 아니냐며 웅성거렸다. 그냥 웃음이 났다. 팔 안쪽이 축축한 느낌이 들어 살펴보니 핸들을 놓치며 팔 안쪽에 핸들에 긁혀 제법 깊은 찰과상이 양쪽 팔에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걸 확인하는 순간 욱신거린다. 견인차가 오는 동안 에어백이 짧은 순간 팽창하는 원리가 궁금해졌다. 웬만한 펌프로는 그 짧은 시간에 에어백을 부풀게 할 수 없을 것이고 차량 안에 그런 장치를 설치한다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에어백은 아자이드화 나트륨이 강한 충격을 받으면 질소로 바뀌는 현상을 이용하고 있었다. 독성학자에게 아자이드화 나트륨(NaN3)은 실험실에서 세균증식 억제를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음독 시 NO(일산화질소, Nitric oxide)를 생성하여 급격한 혈관 확장으로 심정지나 의식소실을 유발할 수 있고 대사 되어 청산을 만들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독성물질인데 안전을 위해서도 사용되고 있던 것이다.

 제법 큰 기업에서 품질 총괄을 담당하고 있는 집사람은 가끔 독성학적인 이야기부터 제품의 안정성, 미생물, 분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을 쏟아내곤 한다. 대부분은 자기 생각을 정리하려는 방편이지만, 가끔 독성학적 지식이 필요한 진지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회사에 접수된 품질 이슈 중에 아내 회사 제품 음료를 마신 후 갑자기 실신했다가 깨어났다며 고객센터에 접수되었는데 어떤 물질이 의심되는지 물었다. 물론 많은 사건을 접하고 급성독성을 일으키는 물질에 대해 일반인보다 많이 알고는 있지만, 정황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병 입구에 흰색 분말이 있었으며, 현재 집사람 회사 연구소에서 분석 의뢰했다고 했다. 청산으로 짧은 시간 실신했으면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니 청산은 아니고 아자이드화 나트륨 정도면 가능할 것이지만 건강상의 이유 때문일 수도 있으니 먼저 적외선분광광도계를 찍어보고, 분석 결과가 나오면 알려달라고 했다. 다음 날 같은 일을 하는 타 지역 연구소 후배로부터 비슷한 사례에 대한질문을 받았다. 두 명의 중독자가 발생했고 한 명은 실신했다가 깨어났지만 한 명은 깨어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깨어나지 못하신 분은 결국 사망했다). 먼저 경찰에 연락해 병원에서 채혈해 놓은 시료를 확보를 요청하도록 하고 발생 지역을 확인하고 전화를 끊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발생 지역을 확인하니 같은 지역이다. 적외선분광광도계 분석 결과 높은 확률로 아지드화 나트륨(Sodium Azide)이라고 했다. 관련 음료를 퀵으로 관할지역 연구소로 보내달라 요청하고 다시 후배에게 음료수 병이 도착하면 가장 먼저 아지드화 나트륨을 확인하고 병원에서 혈액이 확보되면 아지드화 나트륨을 확인하도록 요청했다. 아지드는 사후에도 혈관 상피세포에 존재하는 효소에 의해 빠르게 분해되기 때문에 사후에서 혈액에서 검출되지 않을 수 있다. 사망한 경우라면 위내용물, 안구액이나 소변을 분석하여 알 수 있다. 하지만, 살아 있는 경우, 위내용물과 안구액을 채취할 수 없고 혈액에서는 빠르게 분해되기 때문에 병원 입원 당시 최초 혈액이나 소변이 노출의 입증에 가장 적합하다. 며칠 후 같은 지역에서 아지드화 나트륨 중독사가 발생했으며 이 모두는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마지막 사망자의 자택에서 아지드화 나트륨이 발견되었다. 아지드화 나트륨의 중독사는 우리나라에서 수년에 한 번씩 보고되고 있지만, 다른 나라 특히,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우리나라 청산보다 흔한 중독사 원인 물질이다. 특정 중독원인 물질에 의한 중독사가 언론에 노출되면 베르테르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어 물질명을 되도록 명시하지 않기를 권고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사건관련자들이 유명인은 아니지만, 모방 자살이나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아지드화 나트륨에 대한 신속 분석법을 개발해 필요한 시약을 구입해 배포하고 표준 절차를 각 지방연구소에 공유하도록 말해두었다. 논문조사와 연구원의 여건을 고려해 가능한 방법 몇 가지를 정리해 보내주고 그중 효율적인 방법을 가능한 한 빨리 세팅하도록 말해두었다. 넘쳐 나는 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어떻게든 해낼 후배들이 있어 든든하다. 한편으로는 첫 중독자를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이후의 상황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첫 중독자가 제조사에 보낼 것이 아니라 경찰에 신고해서 국과수로 의뢰되었더라면, 병원에서 중독 원인 물질을 빨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었더라면 이후 희생을 막을 기회가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나니 이런저런 상념이 든다.

  아지드화 나트륨은 성인에서 최소치사량은 0.7g으로 알려져 있다. 음독하면 위산에 의해서 HN3(하드라 조산, hydrazoic acid)로 변하며 빠르게 흡수된다. 아지드화 나트륨은 맛과 향이 없지만 HN3는 휘발성이 있어 찌르는 듯한 후각 자국이 있으며, 점막 자극을 일으킨다. 흡수된 아지드는 빠르게 NO로 대사 된다. 대사에 관여하는 효소는 명확하지 않지만, NO synthase가 관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Heme 구조에 결합력이 있어, 헤모글로빈에이 있는 상태에서 분해 속도가 빠르다. 실제 혈액에서 분해가 확인되며, 중독환자의 시료에서 혈청에서는 검출되지만, 전혈이나 혈구 층에서는 검출되지 않아 이 가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NO는 루이스 이나그에 의해 그 역할이 규명되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8년 노벨 생리학상을 수상했다. 심혈관 질환에서 NO는 혈관을 확장하여 혈액의 흐름을 원활히 해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NO의 작용을 이용한 의약품이 있다. 폭발성으로 TNT의 원료로도 사용되는 니트로글리세린이다. 니트로글리세린은 협심증 환자에서 빠르게 혈관을 확장시켜 증상을 완화하여 손상을 줄인다. 그러나 과도한 NO의 생성은 혈관을 지나치게 확장시켜 허혈을 만들어 문제를 일으킨다. 노출 후 수 분 이내에 두통, 오심, 구토, 심계항진, 빈맥, 경련, 저혈압, 호흡저하가 나타날 수 있으며, 뇌내 혈액 공급 부족으로 실신하거나, 심장 허혈로 심정지에 이를 수 있다. NO가 한차례 더 대사 되며 만들어진 아질산은 메트헤모글로빈 혈증의 원인이 된다. 여기서 회복하더라도, 대사 되지 않은 아지드는 미토콘드리아 전자전달계 Cytochrome c oxiase에 산소 대신 결합하여 청산과 같이 대사성 산증을 유발해 과량 투여 시 적극적으로 치료하더라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40대 생애주기에 처음 받아본 심전도 검사에서 T파 역위(위로 솟아야 할 T 파가 아래로 향함)가 보여, 허혈성심장질환 의증, 좌심실비대 의증 진단을 받았지만, 젊은 날 부모님을 병으로 떠나보내며 극심한 스트레스로 얻었던 부정맥이 좋아지며 생긴 후유증이라 생각하고 그냥 넘겨 왔다. 몇 년 후 별다른 자각 증상은 없었다. 50대 중반이 되고 한직으로 밀려나 한번은 몸을 정비해야 할 것 같아, 법의관 선생님께 심전도를 보여드렸다. 심전도가 깔끔하지 않으니 검진을 받아보시는 것이 좋겠다며, 친절하시게도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아버님이 심장내과 전문의시니 의견을 구해보겠다 했다. 돌아온 답변은 하루라도 빨리 심장내과 검진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2차 병원에 예약하고 심전도를 보여드렸다. 5년여 전쯤 이 병원에서 건강 검진할 때 찍어둔 심전도가 보관되어 있었고 최근에 찍은 심전도와 비교하며 더 나빠졌다고 했다. 의사는 심혈관의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으니 혈소판 응고제 억제제인 클로피도그렐과 아스피린 복합제를 처방해 주었다. CT 결과가 나오는 날에 맞춰 심장부하 검사와 심장초음파를 찍고 난 후에 주치의와 면담을 했다. 첫 대면에서 관상동맥에 문제가 있고 좌심실 비대를 확신하던 것과 달리 주치의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결론은 예상과 달리 심혈관이 전반적으로 깨끗하고, 좌심실비대도 약간 있지만, 심전도를 설명할 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두서없이 말하던 주치의는 5년 후에 초음파 검사해 보라는 말과 함께, 니트로글리세린 스프레이 제제를 처방해 주었다. 내심 혈관의 문제가 아닌데 니트로글리세린이 필요하냐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감사하다 말씀드리고 진료를 마쳤다. 평생 약을 먹거나, 스텐트 시술을 하고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지만, 심전도 이상의 정확한 원인은 결국 알지 못한 찜찜함은 남았다. 다이너마이트의 원료이기도 한 니트로글리세린도 빠르게 분해되어 NO를 생성해 혈관을 확장시켜 협심증을 완화시킨다. 과하면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만 적당한 때 잘 사용하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생명은 다양한 상호작용이 절대 균형에 이르지 못하지만, 끊임없이 균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유지된다. 상황이 심각하게 균형이 깨졌을 때, 질병이라 부르며, 심각한 불균형은 죽음에 이르게도 한다. 물질은 용도에 따라 정의될 수 있지만, 물질이 균형을 깨뜨리면 독이라 부르고, 무너진 균형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면 약이라 불러 단순하게 물질을 독과 약으로 양분할 수는 없다. 니트로글리세린이 다이너마이트 원료로 폭발물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협심증 환자를 살릴 수도 있고, 과다 노출은 허혈을 일으키고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아지드화 나트륨이 세균 증식 억제목적으로도 사용되고 에어백을 부풀게 하여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노출량에 따라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이렇듯 물질은 약과 독 한 가지로 정의되지 않는다. 아지드화 나트륨이 혈관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메트헤모글로빈혈증과 대사성 산증을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물질이 생체에 나타내는 작용은 하나이거나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 사람이나 사회 현상이 다면적이고 복잡하듯 물질과 생체의 상호작용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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