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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ke May 23. 2024

독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 독성학(34)

술 마시면 취한다.

    어렵사리 입학한 대학의 첫 신입생환영회 자리는 고등학교 동문회였다. 80년대 말까지 대학의 분위기 특히 남자 고등학교 동문회에는 흔한 문화 중 하나였던 사발식이 있었다. 위 기수 선배가 한 병을 마시면 사발식은 거기서 끝이고, 다음 기수는 소주 두 병을 마시면 또 거기서 끝난다. 만약 마시지 못하면 그다음 기수에게는 세 병이 돌아간다. 바로 위 기수 선배는 가락국수 사발에 소주 한 병을 다 마시지 못했다. 위 기수의 선배는 다 마시지 못했고 소주 두 병이 부어진 사발이 내게 건네졌다. 막노동하며 어른들과 회식 자리에서 소주 한 병가량을 마셔보긴 했지만, 한 번에 많은 양을 마셔본 적은 없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술이라고는 마셔본 적이 없을 후배들이 걱정되는 마음 반, 강요에 대한 반발심 반으로 받아 마셨다. 그 정도 양의 물을 한꺼번에 들이켜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젊은 패기는 그걸 가능하게 했다. 덕분에 같은 학번의 5명이나 되는 후배들은 사발식을 피할 수 있었지만, 채 십분 도 지나지 않아 구토와 어지러움으로 식탁에 엎어졌고 자리를 파할 때쯤 정신을 차리고 귀가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위 기수 선배는 술을 못했고 물이었다고 했다. 사발의 소주를 다 마신 사람은 수년 만이라고 했다. 이런 사발식이 어려운 선후배 사이에서 술을 배우게 하려는 좋은 의도로 시작했을지라도 복학생들에 의한 군대문화가 섞이며 과해졌고 강압적이었다. 적당한 음주는 때로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치면 비이성적인 행동과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더욱이 알코올 대사에 유전적 변이가 있는 경우라면, 적은 양의 알코올도 위험할 수 있다. 이러한 악습은 신입생환영회에서 과음으로 인한 사망 뉴스가 들려오고 문화가 바뀌며 사라졌지만, 80년대 말까지도 대학가의 신입생환영회에서는 흔한 모습이었다.



    약 1억 4 천오백만 년 전에서 6천6백만 년 전인 백악기에 공룡, 양서류, 파충류 등 동물계에 다양한 종이 환경변화에 따라 나름의 진화가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 식물계에서도 속씨식물이 등장하는 큰 변화가 있었다. 속씨식물은 곤충과의 공생으로 수분 효율을 높이고, 과육을 만들어 새나 초식 동물의 먹이가 되어 씨앗을 먼 곳으로 옮기는 전략으로 거대 겉씨식물로 인해 생기는 광합성의 불리함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단당류를 포함한 과실은 조류나 초식 동물에게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미생물도 빠르게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여 증식할 수 있는 좋은 배지가 되었다. 과실의 높은 당은 미생물의 빠른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 미생물이 성장하며 과육 내의 산소 부족은 aerobic metabolism이 제한되어 배지 내 에탄올 농도를 높아지게 되고 박테리아 성장에 어려움을 겪게 되며, 대부분의 박테리아는 약 3% 정도에 이르면 성장이 멈췄다. 곰팡이류는 작은 유전자와 단순구조를 가지는 박테리아에 비해 진핵생물인 곰팡이류는 박테리아보다 성장 속도가 과육에서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곰팡이류는 나름의 생존 전략이 등장한다. 그중 하나는 박테리아를 죽이거나 성장을 억제하는 물질을 만드는 것이다. 이의 대표적인 예가 푸른곰팡이에서 발견된 페니실린이다. 다른 하나는 대사 측면에서 경쟁적 우위를 가지는 변화가 2백만 년 전쯤 특정 곰팡이에서 나타났다. 유전자가 전체가 2 배체가 되는 post-Whole-Genome-Duplication으로 당을 흡수하는데 필요한 빠른 흡수가 가능해졌다. 당 농도가 극단적으로 낮아지기 전까지 산소가 없을 때뿐만 아니라 산소가 있는 상태에서도 알코올을 생성하며, 알코올에 대한 저항성을 가지는 쪽으로 진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당을 부분적으로만 사용하기 때문에 초기 성장에는 불리하지만, 빠른 당의 제거를 통해 경쟁자의 증식을 억제하고 박테리아나 에탄올에 내성이 없는 다른 곰팡이류의 증식을 억제하거나 사멸하여 박테리아와 경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진화한 종이 효모의 조상이다. 이들의 출현은 과실이 미생물 증식으로 인해 가질 수 있는 알코올 농도를 약 3%에서 10% 이상으로 올렸다. 이러한 변화는 백악기의 대멸종 이후 속씨식물이 늘어나며 가속되었다. 대멸종으로 인한 숲의 감소와 기후변화는 나무 위에 살던 일부 유인원이 땅으로 내려와 정착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속씨식물의 과실을 먹이로 하던 유인원은 땅에 떨어져 발효된 알코올 노출량 증가하게 되었다. 효모에 의한 알코올 농도 상승 이전에 과실을 먹던 조류나 초식동물들은 이들이 처리해야 하는 알코올은 과실의 3% 정도 노출을 처리하는 대사 능력이면 충분했지만, 늘어난 알코올 노출은 에탄올에 대한 대사 능력이 늘어나는 방향으로의 진화가 촉진되었다. 식물에서 생긴 변화가 미생물의 진화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다시 이것을 섭취하는 동물의 진화에 영향을 준 것이다. 수만 년에 걸친 알코올과 관련된 진화의 역사는 생물과 환경의 상호작용이 물질을 통해 생명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지 보여준다.


    동물은 섭생에 따라 알코올 분해 효소 유전자에 대한 중복을 만들어 강화하거나 유전자 변이로 더는 발현하지 않게 되기도 하였다. 포유류에 있어서 육식동물, 풀을 주식으로 하는 동물, 과일이나 과즙을 먹는 동물인지에 따라 알코올 분해효소의 발현이 다르게 진화해 왔다. 생체에서 알코올 대사는 알코올탈탄산효소(alcohol dehydrogenase)에 의해 아세트알데하이드로 대사 되고 아세트알데하이드는 다시 아세트알데하이드 탈수소효소에 의해 acetyl-CoA로 전환된다. 알코올류의 대사에 관여하는 효소인 알코올 탈수소효소는 6개 클래스의 8종류의 동질효소(isozyme)가 알려져 있고, 인간에는 7종류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효소의 조직 내 분포는 다르며, 위, 점막, 식도, 간 등에 분포하며 각 장기에 분포하는 종류는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간에서는 동질효소 대부분이 발견된다. 유인원이 에탄올에 적응하는 유전적 변화 중 하나는 인류, 보노보스, 침팬지, 고릴라 등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에탄올 대사에 관여하는 주요 알코올탈탄산효소인 ADH7(alcohol dehydrogenase7)의 변이로 에탄올 대사 효율이 40배가량 증가했다. 이는 천만년 전에 인류의 조상이 땅에서의 생활이 증가하며 발효된 과일에 섭취가 증가한 시기와 부합한다.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와 속씨식물이 만들어 낸 과실류의 섭취를 늘린 인류의 조상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알코올 섭취가 늘어났고, 이에 적응하는 쪽으로 진화하도록 압력이 가해진 것이다. 영양 부족의 시대에 에탄올은 좋은 열량 공급원으로 작용했다. 빠른 에탄올 대사는 지방합성이나 유산소 에너지 생성에 역할을 하는 TCA cycle에 사용되는 Acetyl-CoA를 증가시킨다. 알코올 섭취는 대사 되며 Acetyl-CoA를 증가시켜 지방산 합성을 증가시킨다. 과도한 열량섭취가 문제인 현대인들에게 알코올 섭취는 지방간을 유발하여 간장질환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지만, 열량 부족 시대에 알코올 대사 능력은 생존 가능성을 향상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물질에 대한 적응은 물질의 대사 능력이 향상되거나, 작용을 회피하면서 일어난다. 과실을 먹는 유인원 중 많은 종은 대사 능력을 키워 높은 에탄올 농도에 적응하였다. 에탄올이 작용하는 특정 수용체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술을 마실 때 취하는 즉, 중추신경 억제 효과는 물과 지질에 모두 용해성을 가지는 에탄올이 빠르게 흡수되어 세포막에 녹아들어 세포를 팽창하게 하고, 기능성 단백질의 3차 구조에 변화로 설명되고 있다. 에탄올의 또 다른 독성은 대사산물인 아세트알데하이드에 기인한다. 반응성이 커, 단백질이나 DNA 등과 쉽게 결합해 에탄올보다 세포에 더 크게 손상을 준다.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숙취의 원인이라는 가설은 이에서 비롯된 듯하다. 숙취의 한 원인이 대사산물이자 독성이 더 큰 아세트알데하이드이기는 하지만 표준적인 알코올 대사능을 가진 경우 주요 원인은 과음 그 자체이다. 사람마다 혹은 건강 상태 등에 따라 다르지만,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축적되면 알코올탈탈산효소가 억제하여 과도한 아세트알데하이드 생성을 억제하여 아세트알데하이드 농도가 높아지는 것을 억제한다. 이러한 기전은 아세트알데하이드 농도가 높아져 나타나는 독성을 어느 정도 줄여줄 수 있도록 동작한다. 과도한 알코올의 노출은 뇌세포뿐 아니라 모든 세포를 취하게 하고 그 결과물이 숙취이다. 유전적으로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분해하는 아세트알데하이드 탈수소효소 유전자 변이로 효율이 떨어지거나, 분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전혀 분해하지 못하는 경우, 소량의 알코올 섭취에도 얼굴이 붉어지고, 토하거나 심한 경우 심장 박동의 이상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유전적 변이는 열량 부족의 시대에 불리하게 작용하였겠지만, 현대와 같은 열량 과잉의 시대에는 알코올 중독이 되지 않고, 알코올성 지방간의 위험에서 자유롭다. 만성 알코올 중독환자에게 쓰이는 디설피람은 아세트알데하이드 탈수소효소를 억제하여 아세트알데하이드 축적을 일으켜, 고도의 숙취 상태를 유발한다. 이를 통해 술의 선호를 줄일 수 있지만, 이 약을 먹고 에탄올을 섭취하면 때때로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특히, 만성 알코올 중독으로 건강이 나빠진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빙하기의 짧은 여름, 긴 겨울은 열량 공급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영양 균형을 위해 과일을 섭취해야 하는 상황에서 에탄올에 대한 적응력은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였을 수 있다. 특별한 행사에서 술이 빠지지 않는 현대인의 습성은 초기 인류의 공동 채집하여 저장 후 나눠 먹는 습성은 과 관련 있어 보인다. 저장 과정에서 과실류의 발효를 촉진했으며, 에탄올 섭취를 늘렸다. 농업이 발달하며, 부분적 나머지가 생긴 인류는 곡물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에탄올을 생산하여 열량 공급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유흥을 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흉작 등으로 곡물이 부족해지거나 종교적인 이유로 금주가 강제되는 여러 역사적 상황이 있었지만, 인류의 에탄올에 대한 애착은 이러한 노력을 무위로 돌렸다. 미국에서는 1890년대 금주법이 시행되었다. 이는 에탄올 중독으로 인한 건강위협과 주폭과 같은 사회문제를 줄였지만, 밀수와 밀제조 시장을 형성하였으며 1920년 폐지되었다. 이 금주법이 시행되는 동안 에탄올 금지는 에탄올 대신 메탄올을 사용하면서 이로 인한 중독사고가 빈번했다. 수많은 알코올류가 존재하며 이들은 에너지원이나 영양물질로 사용되며 독성을 일으키기도 한다. 대표적인 독성알코올은 메탄올과 부동액으로 사용되는 에틸렌글리콜이다. 이 두 알코올도 에탄올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흡수되어, 세포 기능을 교란하고 중추신경을 억제한다. 즉, 에탄올처럼 취한다. 그러나 이들 대사산물의 독성이 커 에탄올에 비해 훨씬 위험하다. 메탄올은 에탄올을 대사 하는 알코올탈탄산효소에 의해 포름알데하이드로 알데하이드탈탄산 효소에 의하 개미산(폼산)으로 대사 된다. 포름알데하이드는 아세트알데하이드보다 반응성이 커 세포의 구성성분과 결합하여 독성을 일으키며 시신경 손상을 일으켜 실명에 이르게 한다. 개미산은 전자전달계를 차단하여 청산(시아나이드)과 같은 독성을 나타내 혈액에 젖산을 증가시켜 대사성산증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한다. 메탄올은 에탄올보다 대사가 느려 시신경 손상이나 대사성 산증은 노출량, 메탄올 대사 능력, 건강 상태 등에 따라 수 시간~수십 시간 이후에 나타나기도 한다. 에틸렌글리콜은 대사 되어 글리콜산이 되고 다시 옥살산이 된다. 이들 산성 물질의 생성은 혈액의 액성을 산성으로 바꾸는 산증(acidosis)을 유발하고 옥살산은 혈액 내 칼슘과 착화합물을 형성하여 침전한다. 이 침전물이 신장의 사구체를 막아 신장에 문제를 일으키며, 신장을 망가뜨린다. 이 두 독성알코올은 에탄올을 대사 하는 효소에 의해 대사 되어 이들 독성알코올의 해독제로 에탄올을 사용한다. 이들 해독제로는 알코올탈탄산효소를 억제하는 포메피졸(Fomepizol)이 사용하기도 하지만, 에탄올도 사용된다. 위장장애를 줄이기 위해 정맥 주사용 에탄올이 사용되며, 이 주사제가 없는 경우, 술을 마시게 한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에탄올을 우선하여 대사 시키며, 이들 독성알코올의 독성 대사산물의 생성을 억제해 독성을 줄일 수 있다. 이들 독성알코올도 에탄올과 같이 중추신경을 억제하여, 중추신경 억제로 인한 독성은 강화되지만, 독성이 더 큰 대사산물의 생성을 억제하여 치명적인 독성인 실명이나 신장손상을 막는 것이다.


    열량과 영양이 절대 부족인 시대에 과일 섭취를 통한 에탄올은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과도한 섭취는 신체적 정신적 의존성을 보이는 중독으로 이어진다. 에탄올의 신체적 의존성은 단순당의 잦은 과다 섭취로 인한 대사증후군과 유사하지만 이보다 심각하다. 에탄올은 포도당의 해당 과정보다 우선하여 NADH/NAD+비율을 높여 당 대사를 억제한다. 만성적인 알코올을 섭취하면, 에너지 균형에 관여하는 효소 체계를 에탄올 중심으로 바뀐다. 이러한 변화는 에탄올이 없을 때 에너지 균형에 어려움을 겪게 한다. 또한, 지속적인 알코올 섭취는 지방간을 만들고 세포막에 콜레스테롤 등이 고도하게 분포하여 세포막에 존재하는 수용체의 기능 저하를 가져오고, 혈당조절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지방간이 진행하면 간에서 포도당을 저장하는 글라이코겐 양을 감소시켜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흔히 말하든 당 떨어져서 어지럽고 기운 없다는 것이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혈중알코올농도가 떨어지면, 어지럽고 기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에탄올에 의한 정신적 의존성 기전은 명확하지 않으나, 지속적인 중추신경 억제로 인한 보상회로의 변화로 설명된다. 알코올은 중추신경의 기능을 억제하며 이로 인한 정신적 이완이 보상회로에 작용하여 정신적 의존성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코올의 신체적 의존성은 알코올 섭취로 일시적으로 해소되는 무기력 해소 경험은 이러한 보상회로를 자극해 정신적 의존성을 더욱 강화한다. 지속적인 알코올 섭취는 간 손상뿐만 아니라 뇌 손상으로 인한 섬망, 환각, 알코올성 치매로 진행할 수 있다. 물질에 대한 대사 능력은 유전적 다형(Polymorphism)을 가지는데 에탄올도 유전적 다형이 있다. 에탄올 대사 능력은 영양결핍 시대에 유리하게 작용하여 진화과정을 통해 대부분 알코올 대사 능력이 있지만, 유전자 변이로 인해 개체 간 차이가 있으며, 인종에 따라 대사 능력의 차이를 보인다. 이 중 알데하이드탈탄산 효소의 결핍이나 기능 저하는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축적하게 하여 소량의 에탄올 노출로도 얼굴 홍조, 가슴 떨림, 구토 등 증상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인에게 있어서도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람에게 무리하게 술을 마시게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위험하며 적은 양으로도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원시 인류는 알코올 대사 능력은 열량 결핍의 시대에 유용한 열량 공급원으로 사용할 수 있어 적응에 유리했으며, 원시 사회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갈등을 해소하고, 결속을 다지거나 의식을 진행하는데 나름의 역할을 했다. 산업혁명 이후 에탄올의 과잉 생산과 소비로 그에 따른 주취 폭력, 알코올 중독에 따른 보건 문제 등 다양한 사회문제의 원인이 되어 왔다. 보건 측면에서 열량 과잉 혈당을 급격히 상승시키는 단당류나, 설탕의 과도한 섭취로 인한 대사증후군이 심각한 보건 문제인 현대 사회에서 에탄올은 추가적인 탄수화물 공급으로 비만, 지방간, 대사증후군 등의 문제를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에탄올의 과도한 섭취는 열량 과잉이나 신체적 의존성 외에도 정신적 의존성을 나타낸다. 모든 알코올 중독이 폭력이지는 않지만, 약물 중독과 마찬가지로 과도한 억압적 상태를 술로 해소하거나, 잠재적 폭력성을 가지는 경우, 대부분의 음주 때마다 폭력을 동반하기도 한다. 우울함이나, 억울한 상태에서 술에 의존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술을 마시기 위해 우울함이나 억울한 상태를 선호하는 역전 현상이 생기며, 술을 마시며 하는 행동의 유사한 패턴이 반복된다. 이러한 이유로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으며, 아마 동문회의 술자리도 그런 의식 중 하나였으리라.


중독이 깊어지면, 점차 세상의 모든 이유가 술을 마실 이유가 된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 한잔, 울적해서 한잔, 비가 와서 한잔, 날이 좋아 한잔, 모든 이유와 날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가 되며, 신체와 정신이 모두 알코올에 의존하게 된다. 이런 중독의 형태는 마약에서도 보인다. ‘클럽 드럭’으로 불리는 MDMA는 첫 경험을 클럽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몇 차례 경험하게 되면 클럽을 즐기러 가는 것이 아니라 마약을 하기 위해 클럽에 가게 되고, 다양한 상황에서 마약을 하게 되며 신체와 정신이 약물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도 술이 마약이 아닌 것은 약리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중독되는 기간과 노출 빈도가 알코올의 경우 수개월 이상 걸리고, 수십 번 잦은 빈도로 노출되어야 중독되고 오랜 시간을 거쳐 악화하지만, 마약류는 수일에서 한 번의 노출로 중독되며, 수개월 내에 악화하고 중독을 벗어나기도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경제발전과 더불어 알코올 중독은 많이 줄어든 반면 마약류 중독이 그 틈을 채워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약류에 비해 낮은 중독성에도 불구하고 알코올 중독은 해방에 이어진 전쟁으로 많은 중독자를 양산했다. 술의 부정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알코올은 사회 갈등과 스트레스를 일시적으로 줄이는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술에 관대한 문화가 형성되었고, 술을 권하는 사회였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회식에서 술을 권하거나 잔을 돌리는 문화가 점차 사라졌지만, 여전히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고, 주취 폭력이 뉴스를 장식하기도 한다. 


술을 마시면 왜 취하는 걸까. 정신신경계에 영향을 주는 약물 등과 달리 알코올은 정신신경계에 특별한 수용체가 있지 않다. 술을 마시면 취하는 이유는 알코올의 비특이적 독성 때문으로 보인다. 알코올은 물에도 잘 녹지만 지방에도 비교적 잘 녹는다. 알코올을 섭취하게 되면, 세포막에 알코올 농도가 늘어나, 지질로 구성된 세포막의 유동성에 영향을 주고 세포가 부풀어 오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포막에 존재하는 기능성 단백질의 3차 구조에 변화를 일으킨다. 이러한 현상은 모든 세포에서 일어나는데, 뇌에서 일어나게 되면 신경 전도에 이상을 일으키는데 이 상태가 술에 취했다고 느끼는 상태이다. 술을 마시면 뇌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포가 취하며 정상적인 기능에 어려움을 겪는다. 독성과 관련된 여러 분류체계 중 특이적 독성과 비특이적 독성으로의 분류가 있는데, 알코올의 이러한 독성을 비특이적 독성이라 한다. 적당한 수준의 알코올은 말이 많아지거나, 평소보다 쾌활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알코올에 의한 중추신경 억제 때문이다. 흥분된 것처럼 보이거나, 평소에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두서없이 하게 되는 것은 평소 욕구를 억제하던 기능 또한 억제된 결과물이다. 혈액 중 알코올 농도가 0.35~0.45%에 이르면 호흡곤란, 혼수에 이르러 사망할 수 있다. 과도한 음주는 중추신경뿐만 아니라 호흡중추도 억제되며, 세포 수준의 기능을 떨어뜨려 주요 장기의 기능이 떨어져 사망에 이르게 한다. 


    오랜 진화의 역사에서 알코올은 에너지원으로 때로 집단 내 갈등을 해소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문명의 발달에 따른 과잉 생산과 소비는 개인 건강뿐만 아니라 주취 폭력, 알코올 중독 등의 사회문제를 일으켜왔다. 과도한 음주는 뇌, 간, 신장, 심장 등 각종 장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과도한 탄수화물로 인해 대사 증후군의 원인이 된다. 알코올 과다 섭취에 의한 중독사는 줄어들고 있고, 보건사회연구원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우리나라 1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은 감소하고 있어 알코올 중독 환자는 감소하고 있다. 회식 문화가 개선되고 술을 권하지 않는 음주문화 정착으로 알코올 소비량 감소와 알코올 중독 환자 감소에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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