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나는 스님 못해요. (4)
스님과의 점심 식사에서 스님은 내게 여동생에 관한 질문을 하셨다.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동생과 자주 싸우지는 않느냐는 것이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나는 동생과 잘 싸우지 않는다.
동생의 인간 됨됨이가 좋아서 그렇달까, 나의 인간 됨됨이가 좋아서 그렇달까. 남동생을 포함한 우리 삼 남매는 우애가 좋은 편이다.
그날 나는 스님께 이렇게 답했다.
“스님, OO 이는 저한테 세상이에요. 저는 OO 이한테 세상을 배워요. 저랑 OO이가 달라서 너무 좋아요.”
실제 동생은 내게 세상을 보여준다.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나를 세상으로 끌어내고, 먼저 경험해 본 세상의 신문물을 내게 가르쳐준다. 아날로그를 좋아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에게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눈 뜨고 보라 일러준다.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이야.
자기가 경험해 본 좋은 것은 꼭 나를 데리고 가 내게도 경험을 시켜주고, 기계를 만져보라, 실습을 시킨다. 또 내가 어려움을 느끼고 헤맬 때면 그녀는 실제적인 모델이 되어 내가 그녀를 보고 관찰학습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때로는 나의 선생님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손길이 필요한 아이처럼. 그녀는 내게 그런 사람이다.
어른이 되고 나니 우리가 달라서 좋은 점 중에 재미난 부분이 또 생겼다.
바로 ‘쇼핑’이다.
나는 쇼핑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쇼핑에 기가 쪽쪽 빨리는 사람이랄까.
어딘가 내 옷이 있을 건 아는데 아무래도 지쳐서 닿질 못하겠다.
만족할만한 수준의 옷이 나타나면
그래 네가 내 옷 해라.
이 정도의 삐꾸난 쇼핑에도 불만 없는 사람.
그렇다 보니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내 옷들은 모조리 아웃이었다.
아웃!
하지만 나와 다른 내 동생의 센스.
TPO에 맞춘 유행하고 있는 트렌디한 옷과 신발, 좋은 화장품 등이 무엇인지는 아는 똑똑한 이 여성은,
좋은 상품이 있을 때면 때에 맞게 센스 있는 옷과 신발을 장만해두곤 했다.
그리고 우리는 연년생으로 체형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우리는 옷을 함께 입을 수 있다는 말이다.
ㅎㅎ
동생이 고르는 옷은 제법 내 취향과도 잘 맞았다. 인간 됨됨이가 아주 훌륭한 내 동생은 자신의 옷이 우리의 옷이 되어도 내게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밖에서 내 옷차림에 대한 칭찬을 듣기도 했다. 아이고 부끄러워라.
엄마는 쇼핑에 큰 지출이 없는 나를 보며 동생이 상대적으로 과소비를 한다 여기기도 했다.
엄마가 동생의 씀씀이에 한소리를 하고자 할 때면 나는 슬쩍 나를 위한 동생 편을 들어준다.
“엄마, 어차피 쇼핑을 해야 옷을 입을 수 있는데 얘가 사니까 얼마나 좋아. 우리는 같이 입잖아. 이게 아끼는 거지.”
나는 골치 아픈 쇼핑 안 하고 예쁜 옷 생겨서 좋아, 동생은 자기가 좋아하는 옷 다 사고도 언니랑 같이 입는 거잖아. 소리 할 수 있어 좋아. 얼마나 좋아. 일석이조다.
그러니 스님, 제 세상이 여기 있으니 저는 동생 곁에 있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