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길>

by 빛과 그림자

“아, 시원하다.”


어머니가 소변보는 소리가 들렸다. 진아가 처음 온 주유소 화장실의 첫 번째 칸은 닫혀 있었다. 문에는 ‘사용금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어머니 혜숙은 서둘려 둘째 칸 화장실로 들어갔다. 진아는 문이 닫힌 화장실 앞에 서서 혜숙을 기다렸다. 혜숙이 들어간 화장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이런, 못 일어나겠다.”

조금 전과 다른 당황한 목소리가 들리자 진아는 어머니가 들어간 화장실 앞으로 갔다. 소변이 급해 문을 안 닫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쪼그려 앉는 화변기였다. 혜숙은 엉덩이를 보이는 자세로 손으로 바닥을 딛고 꼼작 못하고 있었다.

“엄마, 손을 뻗어 내 다리를 잡아요.”

진아는 변기머리에 바짝 다가서며 혜숙의 양팔을 잡고 일으켜 세우려 했다. 혜숙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엄마, 그냥 손을 변기 머리 앞으로. 머리를 앞으로 더 숙여요. 다리는 무릎을 굽힌 채로 변기 옆에 딛고요. 그리고 앞으로 기어 나와요.”

혜숙은 진아의 말을 듣고 일단 머리를 숙인 후 양손을 뻗어 앞다리처럼 디뎠다. 진아는 혜숙이 양팔로 화장실을 기어 나오게 했다. 그러자 저절로 무릎이 굽혀져 화장실 바닥에 닿았다.

“엄마, 앞으로. 앞으로”


혜숙은 천천히 기어서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진아는 얼른 혜숙의 팬티와 바지를 올려 주었다.


“엄마, 이제 몸을 돌려 좀 앉아 봐요.”


혜숙은 왼쪽다리를 들어 돌려 앉았다. 혜숙은 화장실 바닥에서 한숨 돌렸다. 진아는 혜숙 앞에 서서 양손을 내밀었다. 혜숙은 진아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양다리가 심하게 흔들거리며 혜숙은 비틀거렸다. 진아는 얼른 뒤로 가서 혜숙을 안으며 부축했다.

“아, 세상에나. 내가 왜 이러지. 이런 적은 처음이야.”

비로소 균형을 잡은 혜숙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변기 탓이에요. 별일 아니니까 우리 손 씻어요”


모녀는 화장실 바닥을 여기저기 만진 손을 비치된 세제로 거품을 내어 여러 번 씻었다.


이제 횟집으로 출발해야 했다. 진아의 전시회장에서 횟집까지 혜숙은 세 개의 화장실을 들렀다. 전시회장을 출발할 때, 미술관 화장실을 진아와 지은과 들렀다. 진아가 자신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남편인 경수를 만나 혜숙의 집으로 출발한 5분 뒤, 경수는 근처 아파트 상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 주차했다. 손녀인 지은이 할머니를 모시고 지하상가 화장실을 다녀왔다. 세 번째는 차가 고속도로를 달릴 때, 혜숙은 아무래도 화장실을 또 가야겠다고 했다. 경수는 가까운 주유소가 나타나자 정차했다. 이번에는 진아가 혜숙을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진아의 집에서 혜숙의 집으로 가는 한 시간 남짓한 거리가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시간이 예상보다 훨씬 더 걸렸다. 긴긴 여정이었다.


*


“엄마, 도다리 회랑 광어가 싱싱하니 입에라도 한 번 넣어 보세요.”


혜숙은 계속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오른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무지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들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이런 일을 당하다니. 화장실에서 쪼그리고 앉아 다리도 못 펴고. 정말 변기에 엉덩이가 빠지기라도 했으면. 너무 놀라서 심장이 벌렁거려. 떨려서 아무것도 못 먹겠어.”


지은은 회를 덜어 혜숙의 개인 접시에 놓아주고 나서, 맛있게 밥을 먹고 있었다. 경수도 밥을 먹다 말고 무덤덤하게 장모 혜숙을 바라보았다. 진아는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혜숙에게 순간적으로 짜증이 났다.


“엄마,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다친 것도 아니고. 먹는 데 좀 집중하세요. 이제 잊어요.”

경수는 얼굴을 찡그리고 혜숙을 독촉하는 진아에게 조용히 타이르듯 듯 말했다.

“장모님이 놀란 만도 하지. 우리도 오늘 큰일 날 뻔했어. 기껏 전시회 모시고 갔다가 장모님이 다치기라도 했음 처제들이랑 처남한테 볼 낯이 없지.”


“맞아요. 엄마. 그래도, 엄마가 가서 다행이에요. 아파트 상가 화장실 갈 때처럼 제가 갔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해요.”

지은은 경수말을 거들었다.


“그래. 나도 참, 처음 당하는 일이라 황당했지. 할머니야 말할 것도 없고.”


진아는 밥을 먹지 않고 물만 마시는 혜순의 모습을 보자 울고 싶어졌다. 입 안에 쓴 맛이 맴돌았다. 달짝지근해야 할 회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엄마, 못 먹겠으면 따듯한 국에 밥을 말아서 몇 숟가락이라도 드세요. 평소 때는 조금 전 일도 잘 잊어버리더니.”


진아는 혜숙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모습을 보며, 혜숙의 망각이 난처한 상황을 얼른 삼키기를 바랐다.

혜숙은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 찡그린 큰 딸 진아의 얼굴을 보고 마지못해 된장국에 밥을 말았다. 몇 숟가락을 먹었지만, 맛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혜숙의 심장은 계속 뛰었다. 혜숙은 자신이 좋아하는 집 근처 횟집으로 왔다는 게 생각났다.

커서가 깜박이듯 기억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혜숙은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젓가락질을 했다. 작은 회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광어살이 질겅질겅 씹히는 게 고무조각 같았다. 남편이 죽고 난 뒤 밥알이 모래알 같거나 고기가 고무조각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래도, 회까지 이렇게 질긴 적은 없었다.


“나는 도저히 못 먹겠어. 더 먹다가는 체하거나, 토할 것 같아.”


혜숙은 수저를 놓고, 진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혜숙에게는 오늘 새로운 경험이 더 쌓였다. 심장이 신호를 보낸다. 빠르게 뛰어 떨림을 온몸으로 전달한다. 통제불능으로 뛰는 심장은 멈춘 적도 있었다.


혜숙은 3년 전 심장박동기를 달았다. 수술하기 전 혜숙은 태어나서 처음 하는 경험을 했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온몸이 땅으로 사라졌었다. 소파에 누워 있다가 일어나려고 했는데 몸도 시간도 멈추었었다.


“알겠어요. 엄마. 그래도, 몇 숟가락이라도 먹었으니까 저녁약을 먹을 수 있을 거예요. 집으로 차 타고 가는 동안 놀란 건 좀 가라앉을 거예요.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 들렸다 가요.”


진아는 깡마르고 주름진 혜숙의 손을 잡고 횟집 화장실로 향했다. 혜숙의 손을 보는 순간 진아의 짜증은 한 풀 꺾였다. 혜숙의 심장이 하루에 4초간 멈추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때도 혜숙은 살면서 한 번도 겪지 못한 말할 수 없는 느낌이라고 말했었다.


횟집에서 혜숙의 아파트까지는 차로 15분 정도 걸렸다. 차 안에서 혜숙은 속상해하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휴, 못 일어났어. 배도 안 고프고. 몸은 떨려. 내가 화장실에서 못 일어나다니."

뒷 좌석에 같이 앉은 지은은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보다가 한 번씩 할머니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진아는 혜숙의 집에 도착하면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혜숙의 반복되는 말을 들으며, 불과 5시간 전 전시회장에서 느꼈던 행복감을 떠올렸다.


“삐삐”

에러가 떴다.

“다시 1225#”

혜숙은 중얼거리며 눌렀다.

“엄마, 아니지. 샾이 아니라 별.”

진아는 혜숙이 #을 누르자 *이라고 강조해서 말했다. 혜숙은 당황해서 일상적으로 열던 집 번호키를 누르는 데 허둥거렸다.

“아, 맞다. 예수님 생일에 #. 오늘 하도 놀래서. 원래 안 이러는 데.”

혜숙은 다시 말했다.

“아니, 반짝반짝 별.”

진아는 반복했다.

“삐리릭.”


“문이 열렸어. 이제 좀 정신이 차려지네. 정신 잘 붙들어 매야지. 이러다 집에도 못 들어가겠어.”

혜숙은 문을 열며 빙긋 웃었다. 진아, 경수, 지은도 고개를 끄덕이며 양손으로 엄지를 들어 올렸다.


현관을 들어서자 마주 보이는 벽에 혜숙의 남편이 파나마모자를 쓰고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남편의 평소 표정이 그대로 잘 찍힌 영정 사진이었다. 남편은 혜숙보다 두 살 많았는데, 이제는 여섯 살이 어리다. 혜숙의 곁을 떠난 지 7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경수와 지은은 마루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진아는 화장실로 가서 혜숙이 옷을 벗게 했다. 혜숙을 샤워 의자에 앉힌 후 샤워기를 틀어 손에 쥐어 주었다. 혜숙이 샤워를 하는 동안 진아는 안방에서 속옷과 잠옷을 챙겼다. 혜숙이 피곤한 건 알지만, 주유소 화장실 바닥에 뒹군 상태로 옷만 갈아입힐 수는 없었다. 진아는 혜숙이 샤워를 끝내자 바디 로션을 혜숙의 몸에 듬북 발라 주었다. 피부가 건조해져서, 로션을 바르지 않으면 가려워져 혜숙은 손으로 여기저기 긁었다. 등이나 발목 근처에 딱지가 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생겼다.


잠옷으로 갈아입은 혜숙은 허기가 져 있었다. 쓰러질 만큼 피곤해서 안방 침대에 얼른 누웠다. 잠깐이라도 눈을 감고 쉬고 싶었다.


“엄마, 좀 쉬다가 베지밀이랑 단팥빵 먹어요. 나는 오늘 옷 손빨래해서 세탁기로 헹굼, 탈수해서 널고 올게요. 그동안 저녁약도 먹어요.”


혜숙은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끄떡였다. 졸리지 않지만 눈 뜰 힘도 없었다. 심박 기를 단 후로 먹어야 할 약들이 늘었다.


*


진아는 뒷베란다 세탁기 앞에 섰다. 혜숙의 옷을 넣고 헹굼, 탈수를 누르고 창밖의 산들을 바라보았다. 하루의 피로가 몰려왔다. 오전 9시에 혜숙을 데리러 잠실 집에서 출발했었다. 혜숙과 자신이 참여한 단체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진아는 혜숙이 데이케어센터를 다니게 만든 종이가방을 모티브로 작품을 기획해 전시했다. 작가 노트의 내용을 떠올리니, 힘들지만 혜숙을 전시회에 초대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 7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외로움과 우울함으로 어머니에게 경도인지장애가 왔다. 어머니는 삶의 의미를 잃었다. 그런데, 데이케어 센터 시범 수업에서 종이 가방을 접은 뒤에 어머니의 삶이 바뀌었다. 종이 가방은 어머니에게 사는 의미와 재미를 주었다. 어머니의 기쁨이 가족들의 마음까지 밝게 만들어 주었다.

어머니의 변화를 이끌어 낸 종이 가방을 변주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미술이 인간에게 살아갈 힘을 준 순간을 기념하고자 한다.] 작가 김진아


혜숙에게 전시회로 출발하기 전에 작가 노트를 읽어 주었다. 혜숙은 자신이 만든 가방이 진아 작품 속 맨 앞에 놓여 있다는 말을 듣고 무척 뿌듯해했다.


진아는 자신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혜숙과 미역국 정식을 먹었다. 혜숙은 미역이나 밥이 딱딱하고 제대로 요리되지 않았다고 투덜댔다. 밥은 설익혀서 모래알 같고, 미역은 충분히 끓이지 않아 뻣뻣해서 씹히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손으로 턱을 만지며, 윗 이빨로 아랫입술을 물었다. 이런 음식이 어떻게 버젓이 잘 팔리는지 혜숙은 이상하다고 고개도 갸우뚱거렸다. 왜 진아가 맛집이라고 하는지 혜숙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진아는 맛집은 맞는데 혜숙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고 두 손을 들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진아는 다시는 이 미역국집에 오지 않기로 혜숙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혜숙은 점심값을 아까워했다.


진아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혜숙은 소변이 마려워 어쩔 줄 몰랐다. 진아는 건너편 차선의 마주 보는 차와의 간격이 좁은 데도 불구하고 비보호 좌회전을 강행해서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섰다. 일단 출입문에 가까운 곳에 차를 세웠다. 진아는 혜숙을 얼른 내리게 한 뒤 최대한 빨리 집으로 왔다. 다행히 별 일없이 집 화장실에 도착했었다. 진아의 집에서 혜숙은 낮잠을 잤다. 데이케아에서 통상적으로 점심을 먹고 2시까지 자던 것처럼 마루 소파에서 따듯한 이불을 덮고 잠이 들었다.


진아는 취업 준비생인 딸 지은을 기다렸다. 컴퓨터와 영어 학원을 다녀온 뒤 3시 30분쯤 지은이 도착했다. 진아는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할머니, 어머니, 손녀라는 여성 3대에 걸친 유대감을 즐기고 싶었다. 지은은 대학을 졸업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혜숙은 지은을 무시하거나 잔소리하지 않았다. 늘 기도해 주고 걱정해 주었다. 진아는 자신이 혜숙에게 나이가 들 수록 더 애착을 느끼는 이유가 혜숙의 변함없는 손녀에 대한 애정과 염려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탁기의 탈수하는 소리가 요란스럽다. 평형이 좀 깨어졌나 보다.’


불과 5시간 전의 전시회장에서 혜숙, 진아, 지은은 편안하게 즐겁게 시간을 보냈었다.


*


“엄마, 엄마가 만든 이 가방을 아이들이 제일 좋아해요. 아마 작아서 그런가 봐요. 서너 살쯤 된 여자 아이가 만지려 하고, 가져가겠다는 것을 우리 지킴이 회원이 간신히 말렸어요.”


진아는 혜숙이 만든 가방을 사람이 들어가서 누울 수 있을 만큼 확대해서 만들었다. 진아가 직접 그 가방에 들어가 누웠을 때 관 같다는 느낌도 어렴풋이 받았었다. 또 혜숙의 가방을 대형 핸드백 크기로 색색별로 만들어서 화려하게 꾸며 줄 세웠다. 진아의 작품은 미술관에서 제공한 하얀 받침대에서 조명을 받아 빛났다. 사람이 들어가 누울 수 있는 가장 큰 가방부터 혜숙이 만든 작은 가방까지 8개의 종이 가방이 전시회장 한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들쑥날쑥 배치된 네 개의 받침대 중 맨 앞받침대에 혜숙이 만든 종이 가방을 우선으로 놓았다.


“엄마, 아직 살아있지. 이렇게 깔끔하게 가방을 접는데, 치매는 무슨?”


“맞아요. 저도 작품을 만들 때 엄마 따라 손 끝에 힘을 주어 꼭꼭 눌러가며 깔끔하게 접었어요.”


세탁기 탈수가 끝났다. 요란스러운 소리가 멈추었다. 진아는 세탁기 옆 선반에 놓여있는 평행계를 세탁기 위에 놓고 평행을 맞추었다. 앞으로 오늘처럼 소음이 심하지 않을 것이다.


진아는 세탁기에서 빨래들을 꺼내 마루로 나왔다. 경수와 지은은 TV에 집중하고 있었다. 진아는 앞 베란다에 있는 빨래걸이로 빨래를 들고 갔다. 진아는 빨래를 널고 나니, 혜숙이 기르는 화초들이 눈에 들어왔다. 부겐베리아 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었다. 제라륨들은 거의 죽어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낯설다. 엄마가 데이케어센터를 다닌 지도 1년이 훌쩍 지났네.”


혜숙의 꽃으로 풍성했던 정원을 생각하자 쓸쓸해지며 눈물이 핑 돌았다. 혜숙이 데이케어센터를 다니기 시작하고, 한 달 동안 진아는 일주일에 두세 번 집으로 돌아오는 혜숙을 지하 주차장에서 마중했다. 혜숙이 변화한 생활 방식에 적응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였다. 저녁을 먹고 셔틀을 타고 주차장에 내린 혜숙은 진아를 발견하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광대가 승천하는 미소를 지었었다.


진아는 도로가 막히는 시간을 피해 , 매번 한 시간쯤 미리 혜숙의 집에 가 있었다. 혜숙의 앞 베란다는 꽃들이 만발했었다. 부겐베리아가 덩굴을 이루며 활짝 피어 있었고 색색깔의 제라늄이 석양빛을 받아 빛을 내듯 선명한 선홍색, 분홍색, 주황색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각종 양란들의 꽃대들이 삐죽 뻗어 있었다. 곧 꽃망울이 터지려고 한두 꽃잎들이 살짝 열려 있었다. 오렌지 쟈스민의 하얀 작은 꽃들이 베란다를 기분 좋은 향으로 가득 채웠었다. 1년 2개월 전에도 진아는 울었다. 혜숙이 이렇게 편안한 집을 떠나 치매와 싸우기 위해 낯선 곳으로 갔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제 혜숙은 데이케어센터 밥을 어떤 맛집 밥보다 좋아하게 되었다. 진아는 눈물이 핑 돌았다. 망가진 정원 때문인지, 화식 화장실에서 못 일어나는 혜수 때문인지. 가는 세월이 서럽고, 어머니의 늙음이 서러워서인지 복잡한 감정들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혜숙은 타고난 원예사였다. 항상 집에 꽃을 활짝 피웠다. 진아는 초등학교 때 2층 벽돌집 화단을 가득 채웠던 피튜니어 꽃들을 아직 경이감을 가지고 기억한다. 늦은 가을까지 짙은 보라색, 하얀색, 선홍색, 핑크색 피튜니어들이 봄부터 피고 지고 했었다.


*


혜숙은 침대에 누워 있다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진아가 침대 옆 낮은 서랍장 위에 놓아둔 베지밀과 단팥빵을 먹었다. 허기가 달래지며 힘이 났다. 아까처럼 심장이 떨리지도 않았다. 돌이켜 보니, 화장실에서 엉덩이가 빠질 뻔한 사건도 최근에 사용하지 않은 변기 때문이었다. 안 다친 게 다행이었다. 혜숙은 네 발로 기어 나온 자신이 자랑스러워졌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아. 판단력이 살아 있잖아. 아직 오늘 일이 다 기억나는 것 같아’


혜숙은 자신을 믿지 못했다. 기억력 때문이었다. 데이케어센터를 다니기 전 혜숙은 심심했었다. 오전에 세 시간 요양 보호사가 다녀간 후, 하루 종일 TV를 보았다. 때때로 아들, 딸들에게 돌아가며 전화를 하기도 했다. 혜숙이 전화를 했을 때, 자녀들은 또 전화했냐고 짜증을 냈었다.

진아는 어떤 때는 고함친 적도 있었다.


“엄마, 벌써 일곱 번이나 한 말을 왜 처음인 듯 반복해? 지금부터 별일 없으면 전화하지 말아요.”

“내가 언제 전화했었니? 전화한 줄 몰랐다.”


혜숙은 짜증을 내는 자식들에게 서운했다. 자신이 언제 전화를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침대 맞은편 벽에 놓인 TV 양쪽으로 혜숙이 만든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종이로 만든 꽃다발, 종이로 만든 크리스마스리스, 지점토와 일회용 접시, 낚싯줄로 만든 꽃분수, 종이부채, 종이에 스티커 붙인 지갑등 수십 가지가 넘는 작품들이 놓여 있다. 혜숙은 데이케어 센터에서 모범생이었다. 진아가 유명한 미술관 전시실에 혜숙의 작품을 전시했다.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자신의 작품이 자랑스러웠다. 혜숙은 종이 가방을 만들었던 순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칭찬을 참 많이 받았었다.


아침부터 혜숙이 예약한 시범 수업을 안 가겠다고 떼쓴 작년 2월 어느 수요일이었다.


“어머니, 종이접기를 참 잘하시네요. 어쩜 야무지게 손 끝에 힘을 줘서 꼭꼭 누르시네.”

데이케어 센터 선생님은 혜숙을 칭찬했었다.


“모처럼 집중하니 참 재미있네요. 가방도 너무 예뻐요.”


혜숙은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아 처음 만났지만 낯설지 않은 2명의 조원들과 종이가방을 만들었다.


“어머니, 이제 손잡이를 접어서 붙이고, 스티커로 장식하시면 완성됩니다.”


숙은 선생님의 말대로 색종이를 사분의 일로 잘라 반으로 접어 펼쳤다. 접힌 자국에 따라 중간선에 맞추어 다시 양쪽에서 반으로 접고 합쳤다. 혜숙은 손잡이 끝만 가방에 붙이기 위해 펼쳤다. 가방 덮개 중간쯤에 풀을 칠한 가방끈을 아치 모양이 나도록 붙였다. 테이블 위에 놓인 입체 스티커로 가방 끈과 덮개가 연결된 부분, 덮개의 중간에 세로로 갈라진 부분의 틈을 메꾸며 장식했다.


혜숙은 신이 나고 힘이 났다. 최근에 이렇게 재미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엄마, 수업 어땠어요?”


시범 수업 2시간 동안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던 둘째 딸 영아와 막내딸 민아가 혜숙을 데리러 와서 물었다.


“너무너무 재미있었어. 내가 어디 가서 이렇게 예쁜 가방을 만들겠어? 당장 내일부터 다닐래.”


혜숙은 자신이 만든 가방을 보여 주었다. 민아는 혜숙의 작품을 사진 찍어 가족 카톡방에 올렸다.


아들인 준호가 성당 모임 레지오 회장에게서 혜숙이 치매 검사를 받고 약을 먹어야 한다는 전화를 받고 한 달 정도 지나서였다. 준호는 멀쩡한 어머니를 돌보기 싫어서 구박하는 것 같다며 기분 나빠했다. 하지만, 자녀들 모두 혜숙의 상태가 불안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혜숙에게 유일한 낙은 성당이었다. 혜숙은 수요일 오전 10시 레지오를 가서 회합을 한 후 단원들과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올 때, 피가 따뜻해졌다. 따뜻한 피가 힘없고 쭈글쭈글한 혜숙의 몸을 데우며 돌았다. 혜숙은 일주일 내내 수요일 오전과 일요일 11시 미사를 기다렸다. 근처에 사는 아들 준호가 차로 성당에 데려다주었다. 돌아올 때는 친한 성당 신자들과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집으로 걸어왔다.


*


평소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어느 수요일 저녁이었다. 혜숙은 진아가 집에 왔을 때 레지오 회원 중 한 사람이 자신을 자꾸 구박하고 무시한다고 하소연했다.

"나보고 왜 자꾸 했던 말을 또 하냐며,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큰 소리를 지르던지. 민망해서 화나는 걸 꾹 참았다니까."


혜숙은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삭히지 않았다. 진아는 혜숙의 모습을 보며 건망증이 단순 노화현상에 그치지 않고 치매로 발전했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준호가 성당 분의 전화를 받자마자, 진아는 분당에 있는 종합 병원을 예약했다. 2주 뒤, 혜숙을 데리고 가서 신경과 의사와 상담하고, 인지 검사도 했다. 다행히 혜숙은 치매의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였다.


“내가 왜 이렇게 편한 집을 두고 치매 노인들이 모여 있는 데이케어 센터에 가야 해? 안 갈래.”


혜숙은 자신이 울고불고 떼를 쓰고 서러워 고함질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데이케어 센터를 안 갔으면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도 없었을 것이다.


*


“휴, 빨리 집으로 가고 싶다.”

진아가 빨래를 마치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혜숙이 반쯤 눈을 뜨고 꺼진 TV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편안한 표정이었다.


“엄마, 오늘 나랑 엄마랑 같이 만든 작품 전시회보고, 변기에 빠질 뻔했던 것 기억나요?”

“응, 저녁 먹고 약도 먹었어. 고마워”

“양치는요?”

“했어. 너무 피곤해서 자야겠어.”


진아는 안방 불을 끄면서 말했다.


“엄마, 우리도 이제 집으로 갈게요. 잘 자요.”


평소 같으면 현관문까지 배웅하는 혜숙이었지만, 누워서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진아는 엄마의 정원과 엄마의 작품들을 떠올렸다. 얼마 전 혜숙은 꽃들을 키우기 힘들어서 화분을 다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진아는 반대했었다. 하지만, 오늘 앞 베란다의 상태를 보면 몇 개의 화분만 남겨야 했다.


차 안에서 자던 지은은 석촌호수를 산책하겠다고 아파트 입구에서 내렸다. 경수는 지하 주차장에서 내리면서 진아에게 말했다.


“오늘 별일 없이 지나서 다행이야.”

“그러게. 엄마, 샤워할 때 보니까 다리에 근육이 하나도 없어. 곳곳이 지뢰밭 같아. 노인은 나빠지지 않으면 좋은 거네.”


경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양복을 갈아입으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양복 뒷면이 오랜 운전으로 가로 줄이 쭉쭉 가며 구겨져 있었다. 진아는 거실 소파에 드러누웠다. 몸이 무거웠다. 지쳐서인가? 무거워진 마음 때문일까? 손가락 하나 꼼작하기 싫었다. 진아는 자기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쉰 뒤, 창 밖 나무들을 보았다. 진아의 집은 2층이어서 나무들이 전면 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나빠지지 않았어. 그럼 괜찮은 거야.’

진아의 마음속에서 작은 속삭임이 들린 것 같았다.


진아는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파에서 일어나서 베란다를 확장한 부분에 놓인 화분들에 바싹 다가갔다. 진아는 어머니 혜숙과 달리 선인장과 관엽 식물을 더 많이 키웠다. 혜숙처럼 꽃을 잘 피우는 재주가 없었다. 꽃을 잘 피우려면 물을 규칙적으로 줘야 하는 데, 물 주는 시기를 놓쳐 화초를 말려 죽이기 일쑤였다. 혜숙의 집은 10층인 햇빛이 아주 잘 드는 집이라 여건도 달랐다. 그나마 진아의 집에서는 게발선인장만 해마다 활짝 꽃을 피웠다. 올해도 게발선인장 꽃 몇 송이가 춤추는 무희 모양으로 활짝 피어 있었다. 다른 마디들 끝에는 작은 꽃봉오리들이 맺혀 있었다. 진아는 밤이 늦었지만 물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전에 산 히야신스의 뭉친 꽃봉오리들의 간격이 벌어지며 몇 개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약하지만 상큼한 봄을 알리는 향이 코 끝을 스쳤다.


“봄의 정령, 향기 꽃 히야신스.”


진아도 혜숙처럼 꽃을 좋아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은이 어느새 진아의 등 뒤에 와서 물었다.


"엄마, 뭐해요?”


진아는 자신의 미래가 떠올랐다. 화분에 물을 다 준 후 지은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나도 나중에 주간 보호센터 보내줘.”


지은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도 만들기 좋아하고, 선생님한테 칭찬받는 거 좋아하니까 엄마처럼 잘 다닐 것 같아.”

진아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지은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엥, 엄마가 그런 데를 다닌다고 생각하니 좀 이상해요. 아니 좀이 아니라 많이 이상해요.”

진아는 머쓱한 표정을 짓다가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래, 나도 사실 이상해. 그런 날이 오긴 올 텐데 실감이 안 나네.”


진아는 지은과 화분들을 번갈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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