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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과 그림자 Oct 10. 2024

<크리스마스 파티> 최종화

21. 에필로그

진서는 최근에 진오와 여행을 계획했다. 근처에 사는 시아버지 영재에게 함께 가자고 했지만,  영재는 해외여행을 썩 내켜하지 않았다.

진오가 [청춘]과 관련된 일을  그만둔 지도 3년이 지났다. 지난달 영재가 운영하던 회계사 사무실도 법인을 정리했다. 진오는 현재 하는 일이 없다.

진오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진서와 아들과 가족여행을 떠나기를 원했다.

진서는 최대한 낼 수 있는 휴가 기간이 열흘이라,   일 요일을 포함하면 14일까지 가능했다.


 "우리 캐나다 침엽수림이나 호주의 누드 비치 갈까?"

진오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미소를 띠며 물었다.


"아니, 아니. 썩 안 당겨."

진서는 손사래를 쳤다. 그러다, 진오를 꼭 닮은 아들을 보며, 웃다가 안고 이마에 뽀뽀를 했다. 아들은 영문을 모르고 기분이 들떠 게다리 춤을 추었다.

"얘, 춤추는 것 좀 봐. 어쩜, 얘, 자기랑 아버님, 다 똑같이 생겼어."

진오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비율은 다를 거야. 아이라 1대 1이지. 애 치고 비율이 좋아. 엄마를 닮겠지."

진오는 소망을 담아 아이의 머리를 쓰다 듬었다.


현우와 현정도 행복하고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현정은 최근에 딸을 낳았다. 아들, 딸이 연년생은 아니지만 터울이 적어 육아를 위해 경호원일을 그만두었다. 현정이 싱가포르에서 돌아왔을 때 선미는 선우를 다시 돌봐줄 수 있냐고 물었었다. 현정은 아기를 가진 상태고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없다고 거절했었다.

현정은 선미의 제의를 받고 놀랐었다. '선미의 맹점일까?' 아니면, 선미가 자신이 현우와 결혼한 것을 몰랐을 것이다.

현정은  현우의 아내로서 예민해진 촉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선우는 보기보다 현우를 진지하고 깊게 사랑했었다. 드러나는 부분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선미 선생님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걸까'

현정은 선미에게 묻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현우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현우가 재혁에게 강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더 이상 현정은 선우와 엮일 수 없었다. 하지만, 현정은 선우의 예술 활동을 멀리서 응원했다. 현우도 마찬가지였다.

현정의 어머니는 성공적으로 위암 치료를 끝냈다. 현정의 어머니는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화곡동 <남부 시장>에서 하루 여섯 시간만 분식점을 운영했는데  꼬마 김밥, 떡볶이와 김말이로 대박이 났다. 유명한 연예인이  한 TV 프로그램에서 세 품목이 맛있다고 소개 덕분이었. 동네 친구 2명을 긴급하게 고용해서 장사를 해도 손님들이 줄을 섰다. 현정은 아이들이 어린이 집을 둘 다 다니게 되면 경호원으로 복귀하는 것보다 어머니의 분식집을 도와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우는 회사가 마음에 안 들어 옮기고 싶지만,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주어진 일들을 성실하게 수행하다 보니, 회사에서  인정받아 부팀장으로 승진했다. 이직에 대한 미련은 마음속에 숨겨 놓고 지각하지 않으며 회사를 다닌다.

미솔은  현정에게 한 번씩 육아 도우미  비용을 부쳤다.

시어머니 미솔은 이상하리 만큼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현우와 현정은 원주시 공무원인 아버지의 월급에서 어떻게 이렇게 돈을 주시냐며, 주는 돈을 거절했다. 그때마다 미솔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할아버지의 유산이 아직 좀 남았어. 아이들이 어려서 부산하니까 꼭 육아 도우미를 써. 애들 먹는 거, 입는 거, 자는 거 챙기는 게 어디 쉬워? 잠깐 쉴 틈도 없겠지. 내가 돌보러 가기는 너무 멀고, 사돈어른은 바쁘시고."


선우는 최근에 회화 작업에서 설치 작업으로 영역을 넓히는 실험적 작업을 시작했다. 회화 작업에서 표현하기 힘든 감각들을 다 동원해서 작업을 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특히 표현하고 싶은 '바람의 감각'을 위해서 대형 선풍기를 작업실에 일단 하나만 구비했다. 바람에 날릴 소재로 우선적으로 깃털들을 준비했다. 선우에게 깃털은 다양한 상징들을 내포하고 있었다. 작업에  써보니. 깃털들은 예상과는 달리  원하는 효과가 나지 않았다. 다른 소재들도 찾아 바람에 띄워 보며, 다른 표현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선미는 정적인 회화 작업에서 벗어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주제를 표현하려는 선우에게서 성장하고 소통하려는 의지를 보았다. 그저 응원하고 또 응원할 뿐이었다. 선미는 선준과 여전히 연락을 유지했다. 어머니는 치매 증상이 악화되고 넘어져서 고관절을 다치는 바람에 화장실을 가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요양 병원에 입원하셨다. 선미는 4인 병실에 어머니를 모시고 1인 간병인을 고용했다. 주말에 한 번씩 어머니를 병문안 간다.

정숙은 재혁이 죽은 후 6개월이 지난 후부터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려서 치료를 받았다. 정숙은 재혁의 유언을 실행할 때까지는 재혁의 죽음에 대한 상실감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었을 때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우울감이 몰려왔다. 정숙은  엔트와 로피가 있어서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지금도 서서히 깊은 슬픔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정숙은 재혁의 작품들을 관리하는 일로는 상실감을 극복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작업을 시작했지만, 우울감 때문에 오랫동안 집중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정숙은 근처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정숙은 아직도 아침에 나가 해질 때까지 공원에 머무르고 있다. 혹시 <서울의 숲>에서 갈색 푸들과 하얀 몰티즈와 산책을 하고 있는 중년 부인을 만났다. 그리고, 그녀가 어깨까지 머리가 길고 검은색 윗도리에 밝은 하늘색 청바지를 입었다면 한 번쯤 정숙을 떠올려도 좋다. 정숙이 언제 산책을 멈출지는  본인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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