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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과 그림자 Oct 10. 2024

<어머니의 정원>

"삐삐"

에러가 떴다.


"다시 1225#"


어머니는 중얼거리면서 다시 눌렀다.


“엄마, 아니지. 샾이 아니라 별.”


현아는 어머니가 #을 누르려고 할 때 *이라고 강조하며 말했다.


“아, 맞다. 예수님 생일에 #”


어머니는 다시 말했다.


“아니, 반짝반짝 별”


현아는 다시 말했다.


“삐리릭”


“문이 열렸어. 이제 안 헷갈려. 확실히 알겠어.”


어머니는 기뻐하면서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고, 현아도 뒤따라 현관으로 들어섰다. 바로 보이는 마루 벽에 아버지가 파나마모자를 쓰고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버지의 평소 표정이 그대로 잘 찍힌 영정사진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두 살 많았는데 이제는 네 살이 어리다. 돌아가신 지 5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어머니가 오늘 처음 주간보호센터에 갔다. 현아는 잠실에서 막히는 시간을 피해 미리 경기도 광주에 있는 어머니 집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귀가 시간에 맞춰 지하 1층 주차장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10층 집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한 달 전 인지검사 결과를 통보받은 후 동생들과 내린 결정이었다. 어머니는 아직 치매는 아니지만,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 장애였다.

어머니가 치매로 가는 것을 늦추기 위해서 약도 먹고, 지적인 자극을 주는 사회생활과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자녀들은 판단했다.


“엄마, 일단 잠옷으로 갈아입고 양치해요. 그러고 나서 오늘 있었던 일 이야기해요.”


 어머니가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싶어 소파에 앉았지만, 현아는 일단 잘 준비를 끝내고 침대에서 대화하자고 했다.

어머니는 현아가 하라는 대로 얼굴을 씻고 양치하고 잠옷을 갈아입은 후 현아와 침대에 같이 누워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말했다.


"바쁘고 낯설어서 기억나지는 않지만, 하루가 바쁘고 즐거웠어"

어머니는 모처럼 외출을 한 것이 좋아서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센터 회원들이  얌전하고 조용히 수업을 잘 따라 하는 것도  마음에 들어. 별난 사람이 하나도 없고 다 유순해. 선생님들은 어쩜 친절하고, 자상한지."


어머니는  말을 하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고개를 가볍게 두세 번 끄덕인 후 덧붙이셨다.


"나야 어디든 잘 적응하는 성격이지. 모범생이니까."


어머니는 본인 칭찬도 잊지 않았다. 현아는 어머니의 그런 솔직함과 자긍심이 좋았다. 30분쯤 대화하니 8시 20분이 되었다. 어머니가 집에 도착한 지도 한 시간이 지났다.


 현아는 하루 종일 긴장해서 녹초가 된 어머니를 재웠다. 오전 8시 50분에 어머니는 남동생과 집을 떠나 9시에 주간보호센터 셔틀을 탄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지쳤다. 어머니는 금세 잠들었다.

현아는 불을 끄고 조용히 어머니 집을 나왔다.


                                                            *

   

현아는 차를 운전하며 집으로 오는 동안 아버지를 생각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였다면 이렇게 정신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현아가 도로가 막히는 시간을 피해 4시 30분쯤 어머니 집에 갔을 때, 앞 베란다에 꽃들이 만발했다.

부겐베리아가 덩굴을 이루며 활짝 피어 있었고 색색깔의 제라늄이 석양빛을 받아 빛을 내듯 선명한 선홍색, 분홍색, 짙은 빨간색으로 흐드러지게 피었다.

각종 양란들의 꽃대들이 삐죽 뻗어 있었다. 곧 꽃망울들이 터지려고 한두 꽃잎들이 살짝 열려 있었다.

 오렌지 쟈스민의 하얀 작은 꽃들이 베란다를 기분 좋은 향으로 가득 채웠다.


“엄마는 이렇게 편안한 집을 떠나 치매와 싸우기 위해 낯선 곳으로 갔네.”


현아는 가는 세월이 서럽고, 어머니의 늙음이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


 어머니는 타고난 원예사처럼 항상 집에 꽃을 활짝 피웠다. 현아는 초등학교 때 2층 벽돌집 화단을 가득 채웠던 피튜니어 꽃들을 아직 경이감을 가지고 기억한다. 늦을 가을까지 짙은 보라색, 하얀색, 선홍색, 핑크색 피튜니어들이 봄부터 피고 지고 했다.


 화곡동 남부시장 상가 주택의 2층 붉은 벽돌집은 가족들로 북적였다. 첫 딸인 현아가 결혼하고 나서 어머니, 아버지는 동생들과 신도시인 분당으로 이사했다. 동생들도 차례차례 결혼해서 분가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분이 살았다. 두 분은 금슬이 좋아 서로의 이야기를 질려하지 않고 귀 기울여 주는 부부였다.

약 6년 전 아버지가 담도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혼자 남았다.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코로나 시대를 어찌어찌 견뎠다.

노인들에게 코로나 시대는 정말 가혹했다. 나이가 들어 가뜩이나 힘든데, 코로나 예방 격리 조치는 고립된 노인들을  더 외롭게 만들었다. 많은 노인들이 코로나 시대에 평소보다 더 많이 우울증에 걸리고, 치매도 더 심해졌다.  노인들은  사회의 약한 고리였다.


현아의 어머니는 코로나 예방주사를 접종한 후 얼마 뒤 이상한 경험을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팔십이 년을 살아오면서 처음 겪는 기분이라 했다. 아득히 정신이 사라지고 몸이 까무러쳐져 얼른 소파에 누웠다고 뭔가 몸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아는 동생들과 분당 서울대병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다양한 심장 검사를 받게 했다. 검사 결과 심장이 24시간 중 4초씩 멈추는 사실을 발견했다.

길 가다가 그런 일이 일어나면 2차 사고로 이어져 생명이 위태롭거나 심한 부상을 당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쇄골 옆 오목한 곳에 심장박동기를 달았다.


 현아의 어머니는 *사이보그가 되었다. 몸속에 기계가 작동해야 안전한 어머니를 수술 후 돌볼 때 현아는 안타까웠다.

어머니는 부분 마취를 하고 심장박동기 수술을 해서 수술한 날 밤새 소변 조절이 안되어 시트를 여러 번 적셨다.


“머리는 멀쩡한데, 너무 무서워서 이러나 봐. 수술할 때 의식은 있었어. 의사들이 수술하는 모습을 봤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아.”


현아는 미안해하는 어머니가 너무 가여워 보였다. 어린아이 보다 더 겁먹은 위풍당당했던 어머니 곁에 아버지가 있었으면 얼마나 안심할까 생각했다.


수술한 날 밤, 현아는 어머니의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잡아 주었다. 젖은 기저귀도 갈고 바지도 갈아입혔다. 다행히도 이틀 정도 지난 후 어머니는 괜찮아졌다.


 아버지는 심장이 아팠지만 사이보그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현아가 대학교 1학년 때 심장 수술을 하셨다. 심장벽이 두꺼워지는 병이었다. 걸을 때 심장의 통증을 느껴서 검사를 하고 적절한 시술을 했었다.

아버지는 정기 건강검진 후 담도와 췌장에서 이상이 발견되어 정밀검사를 통보받았다. 팔순 잔치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사실을 자식들에게 담담하게 알렸다. 그 후 아버지는 1년을 투병하신 후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7년 전에 전립선암 수술을 한 후 완쾌되셨다. 돌아가시기 4년 전에는 뇌졸중 증세가 와서 뇌졸중 집중 치료센터에 입원한 적도 있었다. 그 후 대상포진이 와서 입원치료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아는 아버지가 아프다고 짜증 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차분하게  병원에 계시며 치료받았고,   퇴원한 뒤에 평온한 일상을 즐기셨다. 아버지는 본인의 고통을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고 인내했다.


운전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면서, 현아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불만을 거의 느낀 적이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을 볼 때 따뜻한 눈빛으로 말없이 바라보았다. 수다스러운 어머니의 이야기를 지치지 않고 듣고 웃었다. 어머니가 성당에서 있었던 작은 사건들을 말할 때면 반복해서 듣고도, 다시 듣고 싶어 했다.


 '어머니는 그래서 지금 더 외롭다.'


현아는 집이 가까워졌을 때 아버지가 좀 더 사셨으면, 아니 좀 미운 점이 있었다면, 어머니랑 사이가 좀 나빴으면...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러면 우리가 덜 힘들었을 텐데. 아빠, 어머니가 너무 불쌍해요.”


                                                    *


현아는 집 번호키를 누르고 전실을 지나 중문을 열었다. 마루로 들어서자 앞 베란다를 확장한 부분의 유리창 옆에 놓인 선인장과 관엽 식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현아의 집은 2층 동남향이어서 어머니의 10층인 남향집처럼 햇빛이 아주 잘 들지는 않았다.


현아는 어머니와 달리 선인장과 관엽 식물을 꽃식물보다 좋아했다.

어머니처럼 꽃을 잘 피울 재주도 없었다. 꽃을 잘 피우려면 물을 규칙적으로 줘야 했는데, 물 주는 시기를 놓쳐 말려 죽이기 일쑤였다. 그나마 게발선인장만 해마다 활짝 꽃을 피웠다.

현아는 어머니의 정원을 떠올리며, 화분들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게발선인장의 꽃 몇 송이가 어떤 마디 끝에는 춤추는 무희 모양으로 활짝 피어 있고 , 다른 마디 끝에는  작은 꽃봉오리가 맺혀 있었다. 물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전에 산 히야신스의 뭉친 꽃봉오리들의 간격이 벌어지며 몇 개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약하지만 상큼한 봄을 알리는 향이 코 끝을 스쳤다.



“봄의 정령, 향기 꽃 히야신스.”



현아는 기분이 좋아 중얼거렸다.

현아가 화분들에 물을 주고 있을 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틱틱틱틱, 삐리릭"



경쾌하고 빠르게 눌려지는 현관키 자판 소리 후 딸이 등 뒤에서 물었다.



“엄마, 할머니 어떠세요?"



현아가 어머니 집으로 출발할 때 딸은 같이 외출했었다.

현아는 자신의 미래가 떠올랐다. 화분에 물을 다 준 후 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응, 잘 계셔. 나도 나중에 주간보호센터 보내줘.”


딸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엄마도 만들기 좋아하고, 선생님한테 칭찬받는 거 좋아하니까 잘 다닐 것 같아.”


현아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을 했다,

딸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 엄마가 그런 데를 다닌다고 생각하니 좀 이상해요. 아니, 좀이 아니라  많이 이상해요."


현아는 머쓱한 표정을 짓다가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래, 나도 사실 이상해. 그런 날이 올 것 같지도 않고."


 현아는 딸과 자신의 화분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이보그(cyborg)

생물 본래의 기관과 같은 기능을 조절하고 제어하는 기계장치를 생물에 이식한 결합체. 생물체가 일하기 어려운 환경에서의 활동을 위하여 연구하였는데, 전자 의족이나 인공심장, 인공 콩팥 따위의 의료 면에서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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