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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과 그림자 Oct 09. 2024

<뷰티 여신>

“방금 매니저님한테 문자 왔는데 우리 매장이 이전된대.”


부매니저인 소영이 점심시간 전에 애영, 정우, 수현을 불러놓고 말했다.


“갑작스럽게요?”

깨방정 막내 수현이 물었다.


“갑작스럽기는, 에비뉴엘 건물로 옮긴다는 말이 진즉 있었지. 막내, 모르면 말을 아끼랬지.”


"죄송 죄송."


애영은 소영과 수현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과 막내동생 서영의 모습이 떠올랐다.


"서영야, 너는 태어났을 때 내 첫인상이 어땠어?"


애영은 언젠가 막내 여동생에게 물은 적이 있다.


"언니 얼굴을 보자마자 울었어."


고등학생이었던 동생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애영과 서영은 농담을 자주 하며 깔깔 웃었다.


수현이 아무 생각 없이 질문할 때 소영은 흘겨보며 대답했지만 수현을 귀여워했다.

소영은 수현과 점심을 먹으러 가며, 애영과 정우에게 오늘부터 하는 프로모션을 알려줬다.


"지금부터 우리 시그너쳐 올인원 에센스를 32% 할인하니까 가격 미리 알아둬. 점심시간 이용해서 오피스걸들이 오니까 둘 다 화장실 가서 매장 비우면 안 돼."


식사하러 가던 소영은 오른 손바닥으로 입을 톡톡 쳤다.


“나 좀 봐. 우리 뷰티 여신들한테 안 해도 되는 소리를 늘어놓네.”


애영은 웃으면 생각했다.


‘맞는 말하네. 경력이 벌써 몇 연차인데 하나마나한 잔소리. 본인이 알아서 다행이네.’


애영과 정우는 소영과 수현이 매장으로 돌아올 때까지 바쁜 시간을 보냈다.


                                      *


애영은 여행 가방을 챙기고 있다.

태국의 왓포 사원에 우는 여신 동상이 있다는 말을 직장 동료인 정우에게 들었다. 크고 화려한 와불상이 있어 유명한 사원이었다.


"우는 여신? 왜 하필 우는 여신이야? 웃는 여신이 아니라."


정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애영의 질문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꼭 웃는 게 좋은 거야?"


애영은 할 말이 없었다.


"그러게."


정우는 애영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빙긋 웃다가 진지하게 말했다.


"자기, [행복 전도사] 알지? 모든 것을 행복하게 받아들이면 행복해진다고 한 사람.

웃고 미소 짓는 사람들이 다 행복할까? 울고 있는 사람들은 다 불행하고."


애영은 갑자기 대화가  확 진지하게 느껴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는데 주제가 산으로 가는 느낌도 들었다.


"아이, 무거워. 깔리겠어. 농담을 다큐로 받는 거야?"


정우는 갑자기 자동인형되어 고개를 피아노 메트로놈처럼 움직였다.


"하하하하. 자기가 태국의 [누워있는 불상]을 좋아한다면 우는 여신에게 반할 수밖에 없어. 내가 장담할게."


정우는 상담의자에 앉는 손님을 보자 대화를 멈추고 일하러 갔다.


                                            *


 애영은 정우와 백화점 MC 코스매틱 매장에서 근무한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정우는 친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항상 무표정하거나 찡그린 표정으로 있다가 고객을 보면 갑자기 자동인형처럼 웃음을 지었다. 그런 모습이 이중적으로 보여 애영은 다가가기가 두려웠다.

조금 전 대화할 때도 마치 로봇처럼 고개를 좌우로 계속 흔들었다.


"방금 로봇 춤춘 거야? 완전 <오징어 게임>에서 나오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의 술래인형 같은 엽기적인 분위기가 있어."


  애영은 정우가 자신이 태국의 누워있는 불상을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곰곰이 되짚었다.


'아, 맞다. 멕시코 인형. 내가 미국에 사는 이모네 놀러 갔을 때, 애플 여행사 패키지로 남미여행 갔었지.

그 당시 멕시코에서 대표적인 멕시코 인형을 보고 울었지. 무릎을 접고 앉아 양 무릎 위에 얼굴을 숙이고, 큰 밀짚모자를 쓰고 쉬는 모습에 마음이 뭉클해졌어.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정우에게 말했어.'


애영은 뭔가 눈물이 나게 끌리는 멕시코 인형은 샀는데, 지난번 태국 여행에서 누워있는 불상을 안 산 것을 후회했었다.

태국여행 갔을 때는 와불상을 보는 순간 마음 편해져서 웃음이 나왔었다.


"우리나라 불상들은 편하게 누워있는 것을 못 본 것 같아. 아님, 내가 모르는 건가?”


멕시코여행을 다녀와서 손님이 없는 시간에  정우 앞에서 와불상을 안 산 것을 후회했던 적이 있었다.


"세상 마음 편하게 하는 것이 누워있는 태국 불상이나 인형들 보는 거였는데 사 올 생각을 왜 못했을까?”


애영은 정우에게 말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애영은 가방에 여름옷들을 챙겨 넣으며 서랍장 위에 놓인 멕시코 인형을 보았다.

이제는 이 인형이 편해 보였다. 지친 노동에서 잠시 해방된 모습은 슬퍼 보이지 않았다.


애영은 정우가 태국 여행을 다녀온 뒤 우는 여신상을 말하는 것을 듣고 믿을 수 없었다.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정보였다.

애영은 정우가 거짓말을 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들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정우가 고객 상담을 마치자 다음에는 애영이 상담을 했다. 결혼식을 앞둔 신부에게 비싼 기초화장품 세트를 두 개나 팔았다. 애영은 기분이 무척 밝아졌다.

정우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코로나로 미루어졌던 결혼들이 진행되며 일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  애영과 정우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과 긴장도 줄었다.


애영은 정우에게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정우는 누워있는 불상 옆에 울면서 서 있는 자신의 셀카 사진을 보여 주었다.


"장난치는 거야?"


"아니."


"그럼 거짓말한 거야?"


"뭐?”


“우는 여신상이라며?”


“나는 우는 여신이라고 했잖아. 우리 뷰티 여신이잖아.”


정우는 유니폼 주머니 위에 있는 사각 이름표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름 위에 조그맣게 뷰티 여신이라고 적혀 있었다.

정우는 머뭇거리다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자기 말 듣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태국으로 갔어. 와불상을 보고 싶어서.

방콕 왓포 사원의 거대하면서도 정교하고 화려한 불상을 보는 순간 눈물이 펑펑 났어.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하면서 야간대학을 나왔어. 하루 중 자는 시간 외에 누워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애영의 머리를 뭔가 치고 지나갔다.


"자기가 우는 여신상 아니 우는 여신이야?"


"응."


“내가 여신이 있다고 안 믿으니까 동상으로 착각했네.”


"처음으로 놀러 가서 신나서 울었어. 자기 말대로 저절로 눈물이 났어."


애영은 정우가 아파 보였다.

애영은 마음이 복잡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트리지움 상가에 들렸다.

그릭 요구르트에 블루베리 토핑을 얹어 먹고 싶었다.

마침 요구르트 가게 맞은편  보석 가게 옆에 있던 옷가게가 [샤롯데 여행사]로 바뀌어 있었다.

여행사는 오픈 기념으로 태국여행을 할인, 할부 판촉행사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애영은 오래 전부터 생각만 했던 와불상을 사러 방콕에 가는 것을 실행하기로 했다.

서랍장 위 멕시코 인형 옆에  태국의 와불상을 놓고 싶었다.

애영은  태국 와 불상을 쿠팡에서 주문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쿠팡에서 파는지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애영은 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세 달 후 매장 이전할 때 태국으로 여행 갈까? 왓포 사원도 다시 가고?

우리 동네에 여행사 오픈하면서 엄청 할인하는 여행상품이 있어. 무이자 할부도 가능하고.

이번에는 웃는 두 여신을 만나면 어때?"


정우는 좋다고 했다.


애영과 정우는 퇴근 후 저녁을 같이 먹으며 여행일정을 짰다. 초저가 상품은 억지 쇼핑이 많아 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12개월 무이자 상품을 선택했다. 일부 패키지, 일부 자유 여행 상품이었다.


 애영과 정우는 여행계획을 세우며 깔깔거렸다. 근무 시간에도 자투리 시간이 날 때는 여행 외에도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하게 됐다.

애영은 정우처럼 표정이 풍부한 친구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


 애영은 내일 오전 11시 비행기를 타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다. 여행 준비를 마친 후 애영은 침대에 누웠다. 점심시간에 정우와 대화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정우야. 태어났을 때 엄마 첫인상이 어땠어?”


정우는 당황해했다.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 표정으로 정답이 뭐냐고 물었다. 애영은 서영과의 대화를 이야기해 주었다. 정우는 깔깔 거리며 웃었다.


"와, 대박. 너무 웃기다."


정우는 표정이 굳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사실 엄마를 싫어해. 근데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엄마 보고 슬퍼서 운다고 생각하니 묘하게 위안이 되네.”


 애영과 정우는 서로 눈이 마주쳤었다. 애영은 고개를  끄떡였었다. 


"울다 웃다, 웃다 울다. 하루가 지나고 잠이 드네."


애영은 침대 옆 스탠드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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