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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과 그림자 Oct 04. 2024

<밴프 가는 길>

 경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저으며, 얼굴 표정으로 난색을 표시했다.

트럭 운전사에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차에  타서 운전석에 앉았다.

맞은편 교차로에서 신호를 받고 좌회전을 하던 트럭 운전사가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직진하던 SUV차량과 부딪혔다. 사고를 당한 트럭 기사는 SUV 차량 바로 뒤에서  충돌사고를 목격한 경준에게 본 대로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보험회사 직원이 오던, 경찰이 오던, 사고를 일으킨 차량의 바로 뒤차였던 경준에게 목격자 진술을 요청한 것이다.

낯선 캐나다땅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난 교통사고에 대해서 목격자 진술을 하는 것은 경준의 여행일정과

언어능력을 생각하면 무리였다.


 트럭 운전사는 목격자로 여겼던 사고 낸 차량 뒤차의 운전자가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관광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목격자 진술을 부탁하는 것을 포기하고  충돌한 앞차를 향해 걸어가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사고를 낸  앞차의 운전자는 그제야 차문을 열고 내렸다.


 경준의 차 안 뒷좌석에는 8살 아들과 5살 딸이 "" 소리를 듣고 어리둥절해하며 겁먹고 있었다. 운전자 조수석에는 그의 아내가 앞차의 리어뷰 미러가 부딪혀 깨져서 렌터카 옆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마터면 렌터카 앞유리창이 깨어질 뻔했었다.

경준은 사고 현장에 서 있는 두 차를 지나, 다시 캐나다 횡단 고속도로를 향해 출발했다.


 경준은 판사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미국 동부의 한 대학에 1년 동안 가족법 연구원 자격으로 체류하게 되었다. 경준이 해외연수를 가게 되었을 때, 법원 동료들과 학교 선배들은 미국에 도착하기 전에 캐나다를 여행하는 것을 추천했다. 경준은 미국에 입국하기 전 일주일 정도 캐나다 여행을 계획해서 7월 말에 출국했다.

 밴쿠버에서 이틀 지낸 후 제스퍼 국립공원과 밴프 국립공원을 들려 관광한 다음, 캘거리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 오헤어 공항을 통해 미국에 입국하는 여정이었다.


경준의 가족은 오전 10시쯤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찾아 공항에서 나왔을 때, 경준의 가족은 먼지 하나 없는 맑고 청량한 하늘과 아름답게 꾸며진 거리의 화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

경준의 아내는 한국에서 보던 개양귀비꽃들이 서너 배쯤 큰 송이로 빽빽하게 활짝 피어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가족 꽃들이 반겨주는 느낌을 받았다.


경준은 공항 근처에 위치한 하츠렌터카에서 뷰익을 렌트했다. 차에  짐을 싣고 가족을 태운 후 밴쿠버 시내에 예약한 호텔에 도착했다.

경준의 가족 잠깐 쉰 후 관광 가이드가 있는 밴쿠버 시내 투어버스를 탔다. 투어버스는 밴쿠버 시내 한복판에 있는 스탠리 파크를 방문했다.

식물원같이 아름다운 공원에서 아이들은 지나가는 마차를 보며 좋아했지만, 경준의 아내는 계속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녀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경준이 캐나다를 여행한 뒤 미국으로 입국한다고 했을 때도  기뻐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준의 아내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경험시켜야 한다는 부모로서의 의무감 때문에 여행에 대해 반대를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마치  동네 사람이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에 흥미가 전혀 없어 조는 것처럼 보였다.


 경준은 평소에 활기차고 호기심 많은 아내가 졸고 있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공무원인 판사로서는 꽤 많은 비용을 들여 캐나다까지 왔는데, 아내는 아깝게도 구경거리들을 다 놓치고 있었다. 스탠리 파크를 그녀가 언제 다시 볼까 생각하면 참 딱하게도 보였다.

경준은 몇 번이고 아내를 깨우려 어깨를 감싸 안아 흔들고, 팔뚝도 잡아 손가락들로 꾹 눌러보았다. 아내는  잠시 깨서 볼 뿐 다시 졸았다. 아이들은 새로운 장소에 왔다는 사실에 좋아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마차를 끄는 하얀 말을 보자 신나서 깔깔거렸다.


 다음날 경준의 가족은 밴쿠버 외곽으로 가서 곤돌라도 타고 출렁다리도 건넜다. 밴쿠버의  산과 바다의  풍경들은 아름다웠다.

 밴쿠버 시내를 돌며,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고 카페에 가서 커피와 음료수도 마셨다. 캐나다의 손꼽히는 명문 대학인 브리티쉬 콜롬비아도 방문했다.

밴쿠버에  이틀 동안 머물며,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면서 경준은 홍콩에서 이주한 중국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영국의 홍콩 반환 때문에  밴쿠버는 홍쿠버라고 별명까지 있었다. 밴쿠버는 중국인들 외에도 정말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서 사는 다국적 도시였다.


경준은  밴쿠버를 떠날 때 바로 앞에서 교통사고가 나는 것을 목격했다. 제스퍼와 밴프 국립공원을 향해 출발한 참이었다. 경준은 사고로 당황해서인지, 지도를 잘못 봤는지, 캐나다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타려고 어떤 램프에 들어갔지만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록키산맥을 가로지르는 산길이었다.


 어디서 잘못 접어들었는지 모른 채 경준의 가족은 거대한 록키산맥에 위치한 산악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경준의 아내는 졸았다. 밴쿠버에서 출발한 후 매우 큰 트럭과 앞의 SUV가  큰소리를 내고 충돌한 상황을 본 뒤라 그녀는 뒷좌석에 있는 아이들에게 싸우지 말라고 경고를 했었다. 8살 아들과 5살 딸은 전혀 친하지 않았다. 차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서 뒷좌석이 좁고 답답했는지 불편하다고 자주 싸웠다.

경준의 아내는 차 안에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그냥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남매의 싸움을 말리다 포기한 상태였다.


경준은 고속도로로도 상당히 긴 거리를 달려야 프라이스라인 닷컴에서 예약한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길까지 잘못 접어들어 운전시간은 훨씬 더 길어질 거라고 생각하니 속상했다. 게다가 낯선 도로에는 대형화물차들만 다녔는데  경준의 가족은 캐나다의 물류트럭 크기에 압도되었다.

한국에서 보던 컨테이너보다 서너 배 길고 1.5배 이상 높은 컨테이너를 거대한 트럭들이 싣고 큰 소음을 내며 쌩쌩 달리고 있었다. 거대한 차들이 맞은편 도로와 앞뒤에서 작은 경준 가족의 뷰익을 둘러싸며 달리는 것 같았다. 길은 좁고 끝없이 길었다. 무엇보다 산의 높이와 나무들의 크기가 완만한 한국의 산들과는 다르게  압도적이었다.  캐나다 산의  높이와 짙푸른 산세에 경준의 가족은 조그마한 개미들이 된 기분이었다.


 경준은 운전을 하면서 길을 잘못 든 것을 깨달았지만, 다시 돌아가도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차를 잠깐 길가에 세운 후 찬찬히 지도를 보았다. 지금 자신이 접어든 도로가 로키산맥을 가로지르는 철도를 만들기 위한 산악도로라는 것을 알았다. 가끔 도로 아래로 기차가 달리는 것이 보였다. 경준은 이 길로만 가면, 가파르고 위험하기는 해도 예약된 장소로 갈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고깔 같이 뾰족한 이등변 삼각형의 커다랗고 높은 나무들이 무수히 반복되는 겹침으로 거대한 산맥은 만들어지고 끝없이 펼쳐졌다. 제스퍼로 가는 길에 곰가족들을 만나기도 했다. 아이들은 차 밖으로 나가 순해 보이는 갈색곰들을 만지고 싶어 했다.


 실제로는 야생곰들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경준은 차를 세운 후 아이들이 조용히 관찰하게만 했다. 갈색곰의 어린 새끼 두 마리는 도로가에 서있는 차를 크게 경계하는 것 같지 않았다. 경준의 눈에는 그 곰 세 마리가 아내와 자기 아이들같이 보이기도 했다.


 경준은 하늘을 보았다. 정말 맑고 깨끗했다. 영화에서만 보던 가파른 편도 1차로 길은 한 번씩 옆을 보면 깎아지른 절벽들이 나타나기도 해서 공포감을 줬다. 가끔씩 보이는 달리는 기차가 불안감을 없애주기는 했다. 경준은 절벽 아래 낭떠러지를 애써 무시하며 운전을 했다.


 아이들은 조금 전에 곰을 보았던 흥분을 잊고 지쳐 잠들었지만, 아내는 웬일인지 그 길을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산의 경치가 정말 거대하고 압도적이고 아름답다고 감탄의 일색이었다. 우리나라 대관령 구도로를 10배쯤 늘이고 높여 놓은 것 같다고도 말했다. 경준의 아내는 만약 지도가 없었다면, 도착할 때를 기다리는 것이 고도를 기다리는 기분일 것 같다고 말했다.


 경준은 몇 시간을 달린 후 주유소를 발견했다. 자신의 실수가 자책이 되었지만 일단 계획한 숙소에 도착하는 게 중요했다. 그러려면 가솔린을 조금 더 채워야 했다. 다행히도 주유소에서 만난 노인은 왔던 거리보다 제스퍼가 더 가깝다고 말했다. 경준은 아내를 바라보았고, 아내는 씩 웃으며 말했다.


"이 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 

운 좋게 아름답고도 무서운 산길을 접어들었어.

살아서만 숙소에 도착하면 즐거운 추억이 될 것 같아. 돌이켜 볼 수만 있으면, 이딴 건 아무것도 아니지."


아내는 재밌다며 눈썹을 추켜올리고 이빨을 가지런히 드러내고 입술로 크게 웃는 광대 같은 표정을 지었다.


 다시 경준의 가족은 산속을 달렸다. 경준은 아내 때문인지 아이들 때문인지 더 이상 낯선 길이 두렵지 않았다. 곰가족 때문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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