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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과 그림자 Oct 03. 2024

<김장 새우의 쓸모>

 은하는 올해는 11월 중순에 김장을 하기로 했다. 작년에는 12월 말경에 김장을 했는데 생새우와 홍갓을 구하지 못했다. 김장철은 늦가을에서 초겨울까지이다. 그 기간이 지나도 웬만한 김장 재료들은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생새우는 아예 구할 수가 없었다.

하는 김장할 때 생새우를 듬뿍 넣었다. 생새우를 많이 넣으면 김치가 시원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났다. 새우젓만 넣을 때와는 감칠맛이 달랐다. 은하는 작년 김치맛이 좀 아쉬웠다. 올해는 꼭 생새우를 넣기로 마음먹었다.

 올해는 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 때문에 소금 파동이 났었다. 은하는 시류에 민감하고 잘 휩쓸렸다. 그래서 20킬로짜리 소금을 두 포대나 샀다. 3년 동안 간수를 뺀 신안 소금이었다.
김장 때가 되어서야 은하는 자신이 많은 양의 배추를 절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두 포기로 겉절이같이  양념과 버무려 먹을 때는  배추를 소금에 절였다. 하지만, 김치의 양이 많은 경우는  절인 배추를 사서  담겄었다. 절인 배추 20킬로는 보통 큰 포기 배추로 7.5 포기였다. 은하는  해마다  60킬로 정도 김장을 담았다.

은하는 절인 배추를 박스로 시키려다가 많이 사놓은 소금 때문에 직접 절이기로 했다. 다행히 집 근처에 직접 배추를 절여서 김장을 해본 적 있는 대학동창 진영이 있었다. 진영과는 오랜 이웃이어서  절인 배추를  사서 여러 번  김장을 같이 담근 적이 있었다. 은하는 진경에게 도움을 청했다.

진영은 배추 절이는 것에 대해 배추양과 절이는 절차, 시간등 구체적으로 알려 주었다.  배추를 절일 때  같이 해주겠다고 했다.

 은하는 일단 신천시장에 가서 작은 포기의 배추를 25통 시켰다.  은하 집으로 온 진영은 큰 플라스틱 김장용 대야에 레시피에 적힌 양의 물을 붓고 소금을 풀었다.  그리고 반으로 자른 배추들을 소금물에 담근 후 꺼냈다.  진영과 은하는 소금을 한 움큼씩 잘린 표면에 뿌리고 김장 봉투에 차곡차곡 쌓았다. 김장비닐봉지 중자 3개에 배추가 가득 찼다.


" 8시간 정도 절인 후 씻어주면  돼. 핸드폰에 알람 맞춰 놓고 시간 잘 지켜."

 진영은  배추를 다 절인 후 신신당부했다.


"정말 고마워. 우리 김장 마치고 삼겹살 수육이랑 김장 김치로 보쌈해 먹자."


"기대된다. 맛있게 담가."

진영은 좋아하며 가볍게 손바닥을 흔들며 떠났다.


김장준비로 아침부터 긴장해서 그런지 은하는  지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많은 양의 절인 배추를 8시간에  맞추어 씻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오전에 배추를 씻어 물기를 빼기로 했다. 진영은 다음 날은 다른 일정이 있어서 딸 지은과 함께 양념을 만들고 배추에 버무리기로 했다.

지은은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작년에  넷플릭스에서 <더 글로리>를 보면서 같이 김장을 했었다. 다음날 은하는 지은과 뒷 베란다에서 절인 배추들을 씻어서 커다란 사각 바구니에 물이 빠지도록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은하는 배추의 어린 속잎을 하나 떼내어 먹어 봤는데 다행히 짜지 않았다.

은하는 고춧가루, 까나리 젓, 새우젓, 찹쌀가루로   마늘, 양파, 생강, 쪽파, 홍갓, 배, 매실청, 무 등을 준비했다. 갈 재료는 갈고, 썰 재료는 썰어서 같이 버무렸다. 마루에 야외용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김장용 매트도 놓았다.

배추를 버물릴 양념을 다 준비한 은하는 지은에게 설거지를 시킨 후, 주문한 생새우를 찾으러 신천시장 <대우수산>으로 갔다.
생선가게 아저씨는 싱싱한 새우에 대한 자부심으로 자랑했다.

"이렇게 살아서 팔팔한 새우 어디에서도 못 구해요. 오늘 새벽에 잡아서 배달된 거예요."

은하는 긴 더듬이들을 빳빳하게 세우고 많은 발들로 움직이고 있는 새우들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정말 다들 활발하게 움직이네요."

생선가게 아저씨는 비닐봉지에 새우들을 담아주면서 바닷물도 좀 부어주었다.

"비싼 놈들이라 죽는 게 아까워서 소금물 좀 부었어요. 가자마자 그냥 털어서 양념에 넣어요."

은하는 기쁜 마음으로 생새우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개수대에서 촘촘한 타공 그릇에 비닐봉지째 붓고 한 번만 헹궈서 물을 뺐다.

김장 양념에 산 새우를 넣을 때 올해 김장맛을 기대하며 침이 고였다. 딸에게 김장용 큰 나무 주걱으로 시계방향으로 대여섯 번 저으라고 했다. 새우들이 움직이다 양념에 섞이며 사라졌다.

은하는 새 고무장갑을 꺼내려고 개수대 위에 있는 싱크대 창쪽으로 갔다. 그런데 개수대에 놓인 비닐봉지 위로 새우들이 열 마리 이상 더듬이를 움직이며 살아있었다.

은하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새우 몇 마리를 양념장에 더 넣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지?"

은하는 얼른 플라스틱 샐러드 볼에 비닐봉지에 남은  세우들을 붓고 따로 소금물을 약하게 만들어 더부었다. 그 위에 프라이팬 뚜껑도  작은 틈을 두고 얹어 두었다. 열대어를 키울 때 튀어서 튕겨 나갔던 것이 떠올랐다.
청소할 때  아름다운 열대어 네온이 빛을 잃고 바짝 마른 멸치 같이 죽은 채로 발견된 적이 종종 있었다.

지은과 김치를 다 버무리고, 김치통에 담는 데 서너 시간 정도 걸렸다. 은하는 돼지삼겹살 수육을 삶기 시작했다. 지은은 너무 지친다며 방에 쉬러 갔다. 은하는 냄비에 물을 담고 된장을 두 큰 술 풀었다. 파를 길게 썰고 마늘과 생강은 편으로 저며 넣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수육용 통 삼겹살을 넣고 타이머를 40분으로 맞췄다.

은하는 그런 다음 앞 베란다 창고로 갔다. 높이 30센티, 너비가 30센티인 어항이 있었다. 은하는 어항을 마루 티브이 옆 거실장 위에 놓았다. 그리고 임시방편으로 그릇에 담아 두었던 새우들을 다시 옮겼다. 아직 살아 있었다.
수육이 다 삶아졌다. 은하는 잠시 잠든 지은을 깨워 김장 김치에 수육을 곁들여 먹었다.

"정말 맛있다."
은하와 지은은 동시에 감탄했다.

"생새우를 많이 넣어서 그래. 간도 딱 맞고."

은은 엄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래. 우리 지은이가 재료들을 레시피대로 정량으로 잘 넣은 덕도 있고."

식사를 다한 뒤 은하는 다시 외출용 패딩을 입었다.
지은은  놀라며 물었다.


"엄마, 또 어디가?"


은하는 어항 쪽으로 걸어갔다.
"애완 새우"


"네?"

지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은하를 따라 어항 가까이 다가갔다  새우들이 꼼지락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까 그 새우들이  계속 살 수 있어요?"

지은은 신기해하며 , 상상도 못 한 일이라 움직이는  새우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물었다.

"응, 엄마가 어렸을 때 김장새우를 한 마리 키웠는데 17일 살았어. 탈피도 2번이나 하고."

지은은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불안한 듯 말했다.

"엄마, 얘네들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죽을까 봐 겁나요."

지은은 크고 긴 눈을 더 크게 뜨고 염려가 실린 눈으로 은하를 바라봤다. 새우의 안위를 걱정하는 자신이 좀 어이없다며 어깨를 으쓱거리며 양 손바닥을 펼쳤다.

은하는 어항의 새우들을 봤다.


"그러게. 얘네들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엄마 어릴 때 할머니가 키웠던 우도
욕조에서 튀지만 않았으면 더 살았을 거야.

그런데, 그 새우. 양념에 넣을 때 혼자 튀어서 나와 있는 걸 할머니가 발견해서 욕조에 소금 풀어 넣어준 거야."

                                       *

은하는 근처 대형마트로 가서 새우 먹이를 사 왔다. 열대어 먹이를 먹이면 된다고 알고 있었다.

으로 돌아온 후 은하는 지쳐서 소파에 완전히 뻗었다. 샤워도 하지 않아 온몸에서 김치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김장 새우 때문에 온 가족이 욕조를 쓰지 못해 샤워만 했던 기억도 났다. 지은은 산책을  나갔는지 집에 없었다.

 은하는 깜빡 잠이 들었다.

은하는 소파에서 몸을 돌리다 떨어질 뻔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깼다.
얼마나 잔 걸까? 소파 옆 테이블에 놓인 시계를 보니 두 시간이나 지났다. 피곤이 좀 풀렸다. 

은하는 어두워진 거실의 불을 켜기 위해 스위치 쪽으로 갔다. TV 옆에 놓인 어항이 보였다. 아까 열대어 먹이통을 소파 테이블에 두었던 것이 생각났다.


‘먹이를 줘야겠다. 이제 새우들이 좀 안정됐겠지.’

은하는 어항 뚜껑을 열고 열대어 먹이를 핀셋으로 집어 뿌렸다. 투명하게 반짝이는 새우들이 물에 뜬 먹이를 먹기 위해 모여들었다. 은하는 한 마리 한 마리를 세어 보았다. 좀 헷갈리기는 했지만 12마리쯤 되었다.

“꼬물꼬물? 아장아장? 빠지락 빠지락? 새우 다리 수가 몇 개지?”

은하는 살면서 처음으로 새우 다리 수가 궁금했다. 새우들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먹이를 먹었다.
은하는 그 모습을 적절한 단어로 표현하고 싶었다.
은하는 먹이들이 다 없어질 때까지 새우들을 지켜봤다.


새우들은 정말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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