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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움 Jun 04. 2024

신촌

설렘이 아픔으로 바뀌기까지

나에게 있어 신촌은

'그리운 곳', '행복한 추억이 가득한 곳'이었다.


나의 뜨거웠던 20대,

너무 신나고 즐거웠던 기억이 가득한 곳이다.


대학 시절이 뭐 물론 늘 행복으로 가득찬 건 아니었다.

매 학기 스트레스가 극으로 달아 속병과 링거 투혼으로

보냈던 시간도 많았다.

관계의 고민, 신앙의 고민, 진로의 고민 등등

수많은 고민거리와 가정, 교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문제들로 지칠 때도 물론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의

장소가 된 것은 왜일까.

고향이 그저 좋고 반가운 곳인 것처럼 신촌은

내게 그런 마음의 고향이었다.

가면 기분이 좋고 그냥 좋은 나의 동네.


그랬는데, 아이가 아프면서

신촌은 슬프고 아프고 눈물의 동네로 바뀌었다.


코로나 기간에 한참 아이가 아팠는데,

그래서 아이를 만날 수도 없었는데,

사람이 없다는 게 오히려 좋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학기 중일 텐데도 엄청 조용하고

고요했던 캠퍼스 한가운데서 소리내어

펑펑 울어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서

온 캠퍼스가 내 울음을 받아주는 느낌이었다.


대학 시절 그렇게 울어본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울었다.


아이를 낳고 만져보지도 손 한 번 잡지도

안아보지도 못하고 그저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전해주는 사진, 소식으로만 아기에 대해 듣던 나날들.


간혹 검사를 하러 가거나 수술을 받으러 갈 때

인큐베이터 속의 아기를 만날 뿐.


전화가 올 때마다 새로운 증상, 새로운 병명,

새로운 치료 계획에 대해 듣게 되어 전화오는 것이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도록 덤덤했다.

아이를 본적도 없어 그런가...

모성애가 생길 틈도 없어 그런가 싶었다.

내 아이가 맞긴 한가 의심이 들 정도로

그냥 약간 상황들이 내겐 비현실로 다가왔던 건지

내 자신이 살아야 해서 그냥 방어기제로 덮어 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돌봐야 할 첫째가 있어서 정신이 없었던 것도 한 몫했다.


그렇게 덤덤하게 지내며 간혹 불러주면 아기 이동 시간에 가고 그랬다. 물론 보면 애틋하고 안쓰럽고 너무 속상하고 서글펐지만.


그런 나날들 중에 두 번 정도 통곡했던 것 같다.

뭔가 날이 너무 좋았는데, 따사로운 햇빛이

더 슬프게 만들었던 것 같다.

맨 처음 얘기와 다르게 아이는 날로 심각해져 갔고

집에 돌아올 수 있을까 싶게 계속 새로운 병명을 달아갔고

난생처음 들어보는 병에, 수술에 그냥 정신없이 휘몰아치던 어떤 날이었나보다.


하루는 아이와 CT를 찍다가 심정지가 와서 전 병원에

'코드블루'가 울리며 의료진들이 뛰어오는 등 난리를 겪었다.

정말 짧은데 억겁같았던 시간이 흐르고 다행히 호흡은 잡혔으나 심정지 된 시간 동안 뇌에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아 검사를 해봐야 하고 앞으로 어쩌구 저쩌구.... 무서운 말들 가득 듣는 중에도 덤덤했다. 그러고 나와서 캠퍼스 쪽으로 걸어가 빈 의자에 앉아 신랑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달하고는

엄청 울었다.


뭔가 행복하고 그리움 가득했던 공간들이

눈물과 슬픔과 아픔의 공간으로 변했을 때의 감정이란.


신촌을 가는 길은 늘 설레고 행복했는데

이제 너무나 자주 가는 신촌은 그저 고통스러운 동네가 되었다.


얼마 전, 심장 수술을 받은 아이가

중환자실에 홀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만나게 된 역사적인 토요일이었다.


아이와 애기 아빠는 일반 병실에 두고

나는 첫째와 함께 집에 오는 길에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는 파란 옷을 입은 물결의 학생들을 보았다.


개인적으로 아카라카를 애정하고 사랑해서

서울대 아니고 연대 온 게 너무 자랑스럽고 좋을 정도로.

연고전에 미치고 응원에 미쳤던 사람으로,

지금도 여전히 가고 싶고 음악만 들어도 가슴 뛰는

주책바가지로서,

그저 부럽고 부러웠다.

엄마 학교에 독수리가 있어! 멋지지?고양이가 나타나면 날아올라서 휙 잡는다구~


밤에 울려퍼지는 함성과 불꽃 소리에

입원 병동의 깜깜한 분위기와 너무나 대조된다고

신랑과 통화로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했다.

그러다가 생각했다.


아, 내가 미쳐 날뛰고,

신나게 신촌 거리를 발발 거리고 다닐 때

바로 옆 병원 건물에서

누군가는 아파하고

누군가는 죽음과 삶을 왔다 갔다하고

누군가는 고통스레 울고 있었구나.


이제서야 조금 알았다.


내가 아픈 아이를 키우며

'다른 세계'에 오게 되었다고 많이 말하는데

또 한 번 다른 세계 입문자로 느끼는 바를 적어본다.


아직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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