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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Apr 10. 2024

누구나 환영! 배꼽잡는 붕붕카 레이싱

바퀴만 있으면 된다

만 1-2세 어린이의 최애 붕붕카.


이 시기에는 아이들의 신체능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어른이야 걷고 무언갈 타고 하는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냐고 여길 수 있지만, 잘 생각해 보면 굉장하다.

누워서 천장만 보다가 -> 뒤집고 고개를 돌리면서 주변을 낮은 뷰에서 돌아볼 수 있게 되고 -> 앉고/일어나면서 2D나 다름 없던 시야는 3D로 확대된다. 게다가 기고 걸어다니고 뛰면서, 행동반경은 물론이거니와 이제는 손과 발의 조합까지 곁들여 할 수 있는 일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진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수만년이 걸린 인류의 놀라운 직립보행과정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이 나이에는 밀거나 끌수 있는, 혹은 올라타서 자신의 대근육 능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활동이 발달에 굉장히 적합하다. 부모가 밀거나 끄는/ 혹은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차 보다는, 아이가 직접 동력과 조작을 조달해야 할 수록 좋다. 삐까뻔쩍하지 않아도 된다. 벤츠나 벤틀리나 수퍼카는 어차피 나중에 커서 산다고 난리를 쳐 댈 것이니. 비싸서 모시고 있거나 엄마아빠가 밀어줘야지만 탈 수 있는 게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굴리고 부딛치고 스스로 놀 수 있는, "너만 있으면 난 어디든 갈 수 있어"하고 속삭일 수 있는, 어린이의 최애 첫 차를 뽑아주시라.



이 첫 차는 아이가 더 크고 성장하면서 찬란했던 영광의 순간을 뒤로하고 더는 눈길을 받지 못한 채로 남겨진다. 빛이 바란 채로 아마 창고어딘가, 마당이 있다면 마당 한 구석에 쳐박혀 있을 거다. 영화 '토이스토리'에서 장난감들이 속상해 했듯이.





이들에게 다시 찬란한 영광을! 선사할 수 있는 이벤트가 바로 이 것! 일 년에 한 번씩 포트레로 힐(동네이름)에서 열리는 'Bring Your Ol' Big Wheel' 이다. 직역하면 '오래된 큰 바퀴를 가져와' 지만 의역하면 '낡은 붕붕카 대회' 쯤 되겠다. 매 년 부활절에 열리는데, 벌써 한 20년 쯤 됐단다. 왜 부활절에 열리는지는 모르겠다. 종교와 아무 관련도 없는데, 아마 그냥 '봄이 온다는 활기찬 느낌의 명절'이라는 이유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모두에게 무료인 행사로, 바퀴달린 작은 자전거/붕붕카 외에 그 어떤 바퀴달린 작은 탈 것이 있다면 참가신청이 가능하다. 대회/레이싱이라고 의역하긴 했지만 경주는 아니다. 샌프란시스코는 7개의 거대한 언덕이있다고 보는데, 맥킨리 스퀘어 파크는 그중 포트레로힐 꼭대기에 위치한 공원이다. 시티 뷰가 한눈에 보이는 이 공원은 예전에 회사가 근처여서 차를 타고 점심 먹으러 자주 왔던 곳이기도 하다.


시티뷰가 한눈에 보인다. 그 와중에 저 비탈길을 붕붕카 타고 질주하는 미친자


뷰를 제외하고는 그냥 평범한 공원인데, 나는 여길 그렇게 왔으면서도 이런 행사가 있는 걸 몰랐다. 왜지? 하고 곰곰히 생각해봤더니, 아! 이 공원에는 구불구불한 비탈길이 있다! 차와 관광객이 넘치는 룸밧드 스트리트 외에도, 샌프란시스코는 언덕과 비탈길에 지어진 도시라서 그런 비슷한 도로나 공원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룸밧드스트리트 보다는 이런 작은 공원들을 더 좋아한다.


구글맵 / 구글스트리트뷰

지도의 저 구불구불한 부분은 꽤나 좁고 휘몰아치는 비탈길이다. 평소에는 저기 집도 있고 해서 실제로 차가 종종 다니기도 하는데, 저기를 막아놓고 행사를 하는 것이었다!





낮 시간 (1시쯤?)에 가면 무려 어린이 전용 경기시간이다. 놀랍게도 이제 막 1살 즈음 되어보일까 하는 아기부터 십대까지 다양한 아이들이 참여한다. 왜 나만 몰랐는가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재밌는 코스츔을 입은 사람들도 많다.


마리오아 루이지 복장을 한 아이들

큰 아이들 몇몇은 이 행사 고인물 같았다. 속도도 엄청 빠르고 드리프트 실력이 장난아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발과 손을 정교하게 사용해서 드리프트를 한 후 인코스로 빠르게 파고들어 부아아앙 하고 사라지는 애들이 많다.


아주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하느냐?


이렇게 부모가 줄을 매달고, 혹은 바로 옆에서 잡아주거나 동영상을 찍으면서 함께 달린다ㅋㅋㅋㅋ 정말 허겁지겁 달린다. 아이들 재밌게 해 주시겠다고 열심히 뛰어다니는 어른들이 안타깝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형아(?)와 아빠가 잡고 뛴다
시선강탈 유유자적 핑크카 어린이ㅋㅋ


파란 망토를 휘날리며 달리는 학부모ㅋㅋ 슈퍼히어로같다


위험하지 않느냐고?


이상하게 위험할 것 같은데 별로 위험하진 않다. 급 커브 길에는 보이다시피 짚이나 블랭킷을 깔아 쿠션을 해 놨고, 부모가 항상 주변에 있으며 진행요원?도 있다. 게다가 아이들이 가끔 넘어지거나 카트가 뒤집히거나 하면, 이 착한 어른 갤러리들이 "잘 하고 있어!! 너 엄청 멋지다!!!" 나 "(넘어진게 아니라는 걸 강조하며) 이야 랜딩을 기가막히게 했는데?!" 칭찬과 함께 환호성을 쏟아내며 아이가 민망하지 않게 격려를 해 준다! 그럼 아이는 조금 쑥쓰러워하며 곧바로 다시 올라타 신나게 씽씽 달린다. 세상 귀엽다.




3시가 되면 어른리그 시간. 진행요원들이 철저하게 경기장(?)을 비우고, 갤러리들도 더 멀리 비키도록 한다. 어른들은 더 빠르게 달린다.



서로 부딛치고 넘어지고 하는데 아무도 화 내는 사람도 없고, 그냥 즐겁다. 집에서 만든 것 같은 아주 이상한 자전거? 부터, 어린이 세발자전거, 공주 붕붕카 까지 온갖 것들이 등장하고 코스튬을 입은 사람들도 정말 웃기다.


건설장비 붕붕카 부터 맑은눈 광인 토마스까지 ㅋㅋㅋㅋㅋ 나중에 저 왼쪽청년들은 맥주를 한 잔씩 들고 마시면서 달리기까지 했다
오 왼쪽 아저씨,, 타이어펑크나써용


저런 작은 붕붕카나 세발자전거가 저렇게나 빠르게 험난한 비탈길을 달릴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래봐야 손바닥 크기도 안되는, 플라스틱 재질의 자그마한 붕붕카가 엄청 많았는데 커다란 아저씨를 싣고 현란한 드리프트를 선보이며 참 빠르게도 달렸다! 사람들은 그저 자신이 입고싶은 대로 입고 마음에 드는 방법으로 행사를 즐겼다. 승자도 패자도 없고, 이상한 사람도, 정상(?)인 사람도 없다.





행사는 5시에 끝나는데, 시간이 늦어질 수록 좀 더 어른들 이벤트가 되어서 맥주를 마시거나 담배/대마초를 피우기도 한다. 어른들 위주의 즐기는 행사가 좋으시면 오후에 참가, 어린이 위주의 가족행사가 좋으시면 오후 1시 행사를 참여하시길 추천한다.



낡고 방치된 붕붕카가 잠재력을 발휘하는 날. 행사가 끝나면 사람들이 가져온 붕붕카를 들쳐메고 떠나는데 몇몇의 경우는 짧은 생명력을 화려하게 불태우고 타이어가 빠졌거나 부서지기도 했다. 그저 어린이 붕붕카일 뿐인데, 왠지 우리의 삶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에게도 화려한 프라임 시기가 있고 그게 영원하다면 좋겠지만 시간이 지나 색 바랜 채 찬란했던 시기를 떠올린다. 그래도 살다보면 우리에겐 익사이팅하고 다이나믹한 이 행사처럼, 또 다른 기회가 오길 마련이다. "내 작은 바퀴로는 안 될거야" 하고 움츠려들기 보다는, "그래 덤벼보자"하고 뛰어들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바퀴가 빠지지 않게 조심하고 안전장비도 착용할 것.



모두가 즐기는 샌프란시스코의 이벤트. 이건 뭐 그냥 머스트다. 기왕이며 때 맞춰서 방문해서 꼭 참여하시길 바란다.


<내년에 저랑 같이 붕붕카 구해서 참여할 파티 구함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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