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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Apr 08. 2024

빵순이의 빵지순례

빵 먹고 싶어서 서울 가는 사람

  미국에 오기 전까지 내가 살던 대전 전민동에는 세계 제빵대회 1등을 했다는 슬로우 브레드와 작은 가게에서 시작해 이층 건물을 올려버린 별 베이커리가 있어 손쉽게 맛있는 빵을 사 먹을 수 있었다. 대전 여행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라 불리는 성심당 역시 가까운 곳에 분점이 있어 심심치 않게 들렀다. 식사대용의 호밀빵이나, 베리와 너트들이 잔뜩 들어간 건강빵이 주요 구매 품목이었다. 꽤나 상향평준화 되어 있는 대전 베이커리 시장에도 만족하지 못한 어느 때면 서울의 맛있는 빵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최상의 맛을 찾으러 다니는 미식가나 유별난 빵순이는 아니지만 밀가루가 몸에 좋지 않으니 기왕 먹는 거,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그러던 내가 미국에 처음 정착한 곳은 텍사스의 휴스턴이다. 정확히 말하면 휴스턴에서 30분 떨어진 우드랜드.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뽑힌 자부심이 강한 동네였다. 처음 하는 타향살이에 가장 그리운 건 가족과 친구들이고, 두 번째로 그리운 건 음식이었다. 얼큰한 김치찌개, 따뜻한 국밥과 나물반찬 같은 한국음식이 생각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는데, 나에게 또 떠오르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빵이었다. 빵. 빵. 빵. 달지도 않고 부드러운 감촉의 빵들. 한국에서는 십분 만에 손에 넣을 수 있는 맛있는 빵들을 텍사스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미국 빵들은 기름에 튀겨낸 도넛이나, 엄청 달고 색소가 많이 들어가 거부감이 생기는 케이크, 초콜릿이 듬뿍 박힌 쿠키 같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건강하고 맛있는 빵은 어디에 있는가. 검색 끝에 프랑스 제빵사가 운영한다는 빵집 몇 개를 찾아 1시간가량 차를 운전해 빵을 사 먹으러 다녔다. 시속 75마일, 시속 120km 속도로 1시간을 달렸으니, 빵 사 먹으러 대전에서 서울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리다. 풍족하게 있을 땐 소중한지 몰랐던 것들에 그리움이 더해지면 무서운 집착이 생긴다.


휴스턴 동네에서 먹었던 커피케익


  휴스턴에서 빵을 조달하기 위해 120km를 뚫고 달리던 생활을 청산하고 샌프란시스코에 오니, 지척에 맛있는 빵집이 많아 행복하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이곳에 여행 오는 한국인들이 꼭 들리는 3대 빵집, 타르틴, 비파티셰리, 보딘이 있다. 하지만 잘 알려진 빵집 외에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빵집들이 따로 있어, 이곳에 살면서 맛난 빵집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타르틴과 비파티셰리가 이미 한국에 분점을 여러 곳 내었다는 사실을 알고선 한국인들의 빵 사랑을 다시 한번 느꼈다. 맛있는 걸, 기가 막히게 찾아다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맛을 잘 아는 <맛잘알>들이란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가 없어 웃음이 난다. [샌프란 일상으로의 초대] 매거진을 함께 운영하는 Presidio Library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우리가 아무 빵이나 먹는 사람들이 아님을 발견했을 때 굉장한 동질감을 느꼈다.


한국에 진출한 비파티셰리
샌프란 3대 빵집 타르틴
요즘 샌프란을 점령중인 제인더베이커리


  “제가 아는 맛있는 빵집이 있는데, 점심 드시고 거기 한 번 가시죠.”

그녀의 씩씩한 제안에 무한한 믿음이 생겨 따라간 그곳. 클레멘트 거리 끝에 위치한 이 빵집은 요즘 샌프란시스코 베이커리 계를 주름잡는 동양인 여성이 운영하는 여러 빵집 중 하나다. 작은 가게지만 빵집을 시작으로 그 앞에 서있는 줄은 끊이지 않는다. 좋은 밀가루와, 좋은 버터, 정량의 재료들과 정성이 들어가야만 만들 수 있는 맛있는 빵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바삭한 겉면 아래 겹겹이 쌓인 페스츄리의 단면에서 부드러움과 신선함을 볼 수 있는 크로와상은 이곳의 시그니처다. 관광객이 없고 현지인 중에서도 맛잘알만 가는 이곳에 여러분도 모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Presidio Library 작가님이 추천해준 빵집(JMT)
금문교 보며 먹는 퀸아망

  빵과 커피를 사들고 금문교가 보이는 베이커 비치에 앉아 먹고 마시며 한동안 여유를 즐겼다. 빵을 다 먹고 나니 버터향이 손에 베여 계속 맛있는 냄새가 났다.

  “여보, 맛있는 빵이 근처에 있는데 사니깐 좋지? 빵 먹으면서 멋진 풍경도 볼 수 있고 말이야.”

  화창한 날씨와 맛있는 빵에 기분이 한껏 기분이 들뜬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응, 좋아. 하지만 나는 서울에서 먹은 그 크림빵이 먹고 싶어. 사과잼이 들어가서 달달하면서도 신선하게 푹신한 그 크림빵을 말이야.”

남편의 기억은 지난 3월 서울, 청와대 근처에서 먹은 소금빵을 향해 있었다.

  “맞아, 그 집이 여기 오면 정말 대박 날 텐데. 그때 레시피를 물어볼걸 그랬나 봐.”

  사장님께 이렇게 맛있는 빵은 정말 오랜만에 먹어본다며 극찬을 한 뒤 몇 개를 더 포장해 온 그 빵이 생각났다. ‘동업 제안을 해볼걸’ 이란 뒤늦은 후회를 하지만 소용없다. 샌프란시스코에 맛있는 빵집이 많다고 해도 고급화된 우리의 입에 서울처럼, 한국처럼 찰떡같이 맞는 빵을 내어줄 곳은 없을 거다.

서울에서 먹었던 엄청난 맛의 빵들

  최근 유재석과 조세호가 진행하는 TV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에서 한국인 서용상 파티시에가 운영하는 밀레앙이라는 빵집의 플랑이 파리 최고의 플랑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파리 최고의 바게트를 만들어 엘리제 궁에도 납품을 했다고 하니 본토에 있는 사람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한국인의 솜씨에 괜한 자부심이 생겼다.

  “국뽕이 아니라, 정말 한국사람이 만든 게 뭐든 맛있고 뭐든 좋지 않아?”

한국의 음식이나 제품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하면 국뽕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이중국적자, 남편에게 물었다.

  “맞아.”

어찌 된 영문인지 순순히 인정을 했다. 아마 한국의 빵이 많이 그리운가 보다.



PS. 제가 샌프란에서 가장 좋아하는 빵집은 비파티셰리입니다. 한국에도 있지만 본점에 앉아 커피와 함께 맛있는 페스츄리를 드시면 여행의 진한 풍미를 더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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