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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Apr 01. 2024

악마의 비탈길

고래를 좋아해요

  따사로운 봄 햇살을 놓치기 아까운 나는 샌프란시스코와 가까운 하이킹 코스를 늘 찾아본다. 그리고 집에서 차를 타고 15분이면 도착하는 곳에 또 하나의 보석을 발견했다. 바로 Devil’s Slide Trail. 악마의 비탈길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이 길은 샌프란시스코에서 1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쭉 가다 보면 만날 수 있다. 캘리포니아 1번 국도는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로 정평이 나 있다.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Big Sir 도 이 길을 통해 갈 수 있다.

  아침 하이킹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퍼시피카에 있는 Soul Grind Coffee Roasters로 향했다. 이곳은 퍼시피카의 아름다운 해변 바로 옆에 자리한 커피숍이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들로 공복을 채우면 어떤 곳이라도 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Photo by Vamsi Kanamaluru, Goolge review
Photo by Sue Hamel, Google review


  악마의 비탈길은 하이킹 코스라고 하지만 사실상 산책로에 가깝다. 어린이들도 자전거를 끌고 오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바퀴가 달린 걷기 보조도구를 굴릴 수 있을 만큼 길이 잘 깔려있다. 북쪽 주차장에 차를 대고 길을 따라 걸으면 오른쪽으로 광활한 바다가 펼쳐진다. 추측하건대, 이 길은 현재 차도인 터널이 만들어지기 전에 사용되던 도로인 것 같다. 중앙에 선이 그어져 있고, 그 폭도 차 한 대씩 지나갈 수 있는 정도였다. 트레일이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바다를 나란히 보는 주말 산책로 그레이트 하이웨이와는 다른 느낌이다. 봄이 온 해안가 절벽에는 야생화들이 저마다의 예쁨을 뽐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야생화의 향연

  이 트레일은 오르막과 내리막 경사가 특징이다. 도로가 잘 깔려있지만 꽤나 가파른 이 길은 편도 약 1.4km 정도로 끝이 나지만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앞으로 향하면 Devil’s Bunker, 악마의 벙커를 마주할 수 있다. 과거 군 초소로 사용한 이 벙커는 현란한 그라피티로 장식되어 있다. 사실 볼 만한 건 그 벙커가 아니다. 벙커에서 바다를 보면 만날 수 있는 고래다. 그렇다 이곳에선 고래를 볼 수 있다.

데빌스 벙커

  벙커에서 처음 고래를 보았던 건 작년 11월 즈음이었을 거다. 사람들이 해가 떨어지는 서쪽 하늘과 맞닿아있는 바다를 보며 연신 감탄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 있을 거란 생각에 나 역시 남편의 손을 이끌고 열심히 해지는 바다를 응시했다. 잔잔한 수면에 파르르 물결이 생겼다. 그 위로 새들 수십 마리가 파닥였다. 그때였다. 고래의 거대한 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한 마리가 지나가더니, 또 한 마리가 뒤 따랐다. 숨구멍으로 푸쉬쉭 하고 물을 쏳아 올렸다. 나는 탄성을 멈출 수 없었다.

  “우와. 고래야 고래. 동물원에서 본 것도 아니고, 관광지에서 보는 것도 아니야. 진짜 야생의 고래야 여보.”

  자연과 그에 속한 생명체를 보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있는 그대로 그곳에 두는 것이다. 보고 싶다고 보러 가고, 만지고 싶다고 만지면 자연은 훼손된다. 먼발치에서 있는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자연을 목도하는 기쁨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알게 되었다.

고래를 목격했던 지난 겨울
물을 내뿜는 고래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트레일을 걷는다. 트레일 양 옆으로 노란 야생화가 피어있다. 깎아지는 절벽 아래로는 파도가 넘실거린다. 공기는 정화된 듯 싱그럽고, 상큼한 딜과 로즈메리 향이 섞여 눈을 감게 만든다. 넘치는 태양을 얼굴과 팔에 맞으며 비타민 D를 합성한다.

  “나중에, 아현이 오면 꼭 데리고 오자.”

  또 한 번 샌프란을 찾기로 약속한 친구를 생각하며 ‘여행 리스트’에 또 한 곳을 적어본다. 왜 악마의 비탈길로 이름이 지어진지 모르는 아름다운 그곳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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