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먹은 김밥 중 최고 존엄을 만났다
조회수 10000뷰 돌파!
나는 내가 천생이 부지런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건 한국에 살기 때문이었다. 한국이었으면 벌써 일 끝나고 나가서 약속을 몇 번 갔다가 돌아와서 뭐 새로운 거 배우고, 준비하고 그랬을텐데, 세상에 지금은 재택근무하는 것도 큰 일이 되어 놔서는 손발이 영 말을 듣지 않는다. "조금만 더 누워있으면 안돼요?" 한다.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은데, 어찌어찌 다행히 처리해내고 있다.
몇 주 전 캐나다 퀘벡주를 다녀왔다. 퀘벡은 언제나 가보고 싶었던 곳. 작년에도 메인 주 가는 김에 (미국 메인주에서 캐나다 퀘벡주 까지는 운전해서 몇 시간 밖에 안 걸림) 다녀오고 싶었는데 렌터카를 미국에서 빌려서 캐나다에 반납하는 비용이 말도 안 되서 포기했었다. 다음에 가자 다음에, 했는데 남편 출장이 몬트리올로 잡혔다 (야호). 핑계가 아주 좋은데, 이용해먹지 않을 수 없지. 퀘벡시티까지 꿰어서 다녀오기로 했다.
퀘벡시티는 예뻤다. 퀘벡시티를 알아보다가 보니까 '도깨비'라는 드라마의 배경으로 쓰였어서 한국인 사이에 인기가 많다는데, 나는 도깨비를 돌아다니는 클립이나 쇼츠로 본 게 다여서 몰랐다. 크루즈쉽 메인 출발지나 스탑이라서 연세있으신 관광객들이 굉장히 많았고, 그 외에도 단체관광객으로 북적였다. 관광지는 지긋지긋할 법도 한데, 그래도 예뻤다.
박물관에 가서 역사와 First nations(원주민)에 대해 배우는 것도 재밌었다. 특히 곳곳에 있는 카톨릭 성당에서 그들이 어떻게 정착하고 선교했는지와, 유럽인이 넘어오고 나서 First nations가 어떻게 점차 변해갔는지,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의 시선을 비교하는게 흥미로웠다. 현재는 서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유럽인의 시야에서 벗어나 원주민을 존중하고 슬픈 역사를 교육하면서.
퀘벡시티 마지막 날에는 샌드위치 집을 찾아가려고 관광지에 나와서 걷다가 사람이 많아서 보니 엄청 성황리에 진행하고 있는 길거리 푸드축제에 가게됐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음식을 사 먹을 정신은 없었지만, 공연을 하고 있길래 앉아서 구경했다. 불어로 부르는 노래라 하나도 못 알아듣지만 그냥 그 분위기가 좋았다.
주변에 대학교가 있어서 그런지 길거리에서 술마시는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취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원래 그냥 히피스러운건지, 담배를 쉬지않고 뻑뻑 피며 술병 나발을 불더니 이내 공연에 맞춰서 다같이 나와 막춤을 춰댔다.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이때다 싶어 뛰쳐나와 춤파티에 동참했다. 그야말로 제 멋에 노는, 팔다리가 따로노는 막춤의 향연. 밴드는 제 멋에 취해서 공연하고 사람들은 제 멋에 취해 춤을 추는 밤.
다만 프랑스령이었어서 그런가 모두가 대놓고 아무렇게나 담배를 쉴 새 없이 핀다. 주변에 임산부가 있든, 어린아이가 있든, 전혀 상관하지 않고. 고개를 돌린다거나 연기를 다른 쪽으로 뿜지도 않는다. 자유로운 건 좋은데, 가는 곳 마다 담배연기를 직빵으로 맞으니 너무 힘들었다. 표정을 찡그리고 손사래를 치면, 주변 사람이 손사래치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이쯤 되면 이 동네의 폐암 발병률이 궁금해지는데- 또 담배꽁초를 한국같이 바닥에 버리지는 않으니 요상한 포인트에서 예의가 있다. 헷갈린다.
또 이상한 포인트라면 변화가에 노숙인이 많아서 익숙(?)했다. 하도 샌프란시스코만 까여서, 퀘벡주에는 없는 줄 알았다. 딱히 시비를 걸지 않으면 안전하다는 건 경험으로 알지만 어스름한 길을 밤에 지나갈 때는 텐트가 많아 최대출력으로 파파팟걸었다. 여기는 겨울에 엄청 추울텐데도 많구나.
몬트리올에 넘어오고 나서도 열심히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올드포트 같은건 퀘벡시티가 더 예뻤기 때문에 흥이 좀 덜 해졌다. 아니, 몬트리올 첫날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처음 오는 도시 운전을 한다고 고생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행 3분의 2를 넘어가는 시점에서 남편은 출근을 했고, 나도 숙소에 남아 일을 했다. 그는 밤까지 하루종일 일정이 있으니, 일을 끝낸 오후 시간은 전부 나 혼자만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혼자서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길거리를 구경하다가 내키는 대로 검색을 해서 카페에 들어갔다. 성당(?)으로 보이는 구석에 작게 위치해 있는 이탈리아 카페. 다 맛있어 보여서 고민하다가 티라미수와 라테를 시켰는데, 기계가 고장이 나서 뜨거운 라테는 안되고 아이스커피(?)가 있다고 했다. 이탈리아 사람들 아이스커피 싫어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데, 직원이 맛있다고 하기에 그럼 아이스커피에 우유를 조금 넣어 달라고 했다.
사람이 계속 들어왔다. 가뜩이나 좁은 내부에 자리도 별로 없어서, 구석에 단체석 앉고 남은 자리에 겨우 쭈그리고 앉았다. 아무 생각 없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앗
나는 어쩌다가 맛집에 들어온 것이 분명했다.
이것은 위대한 승리였다.
커피는 달달한 더위사냥 맛이 났는데, 얼음도 커피인지 녹아도 묽어지지 않았다. 커피 슬러시인가?
티라미수를 한 입 먹었다. 아, 레이디스핑거가 원래 이렇게 씹는 감촉이 좋았던가? 흐물흐물해지는 줄 알았는데. 레이디스 핑거가 기분 좋게 텍스쳐로 씹히며 알싸한 커피, 카카오가 혀를 튕기면, 마스카포네가 짠 하고 나와서 '아이구 그래쪄요' 하고 다른 애들을 감싸안았다.
작은 내부에 사람들이 끝도 없이 들어왔다. 먹는 동안 검색을 했더니 한국인 사이에서도 꽤나 유명한 이 동네 작은 체인이었다. 우연히 맛있는 걸 먹게 된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지금 생각 해 보니 오랜만에 마신 카페인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행복이 차올랐다.
행복에 젖어 이리저리 걷다가, 저녁을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학가 근처에서 묵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다양한 퀴진이 많았고 특히나 평점 좋은 한식당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 중에 김밥집이 있었다. 점심으로 먹고 싶었는데 하필 그 날은 저녁에만 문을 열어서 저녁으로 먹으려고 이미 찜 해둔 상태였다.
코너를 돌자 작은 김밥집이 나타났다. 이른 시각이라 사람은 없었다. 키오스크를 보고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참치김밥을 한 줄 골랐다. 한국인 아저씨 한 분, 아주머니 한 분이 안쪽에 계셨다.
에이드를 팔고있었다. 여담이지만 ade는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된다. 처음에 봤을 때 "아..아데? 아데가 뭐지" 하다가 에이드였다는 사실을 알고 멋쩍게 웃었다. 미국에서는 그냥 통칭해서 소다나 소프트 드링크, 비싼 곳이면 sparkling이나 fizz 정도로 부르는 것 같다 (블루바틀에 Yuzu fizz 뭐 이렇게. 파는 걸 보면). 구글에 'ade' 라고 검색하면 미국 가수 아델이 추천검색어로 뜬다(웃음). 어디서 왔나 봤더니 'ade' 라는 단어 끝말로, 보통 레모네이드, 라임에이드, 체리에이드 정도 이외에는 따로 흔히 쓰이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주로 쓰기 시작한 말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달달한 소프트 음료를 뜻하는 말로 변한듯. 한류가 유행하면 같이 덩달아 같이 역수출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앉아있었더니 사장님께서 직접 김밥을 가져다주셨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건, 퀄리티가 다르다. 보통 해외에서 사먹는 김밥은 그룹이 겹치는 재료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불고기 김밥이면 불고기가 단벌 고기류. 거기에 단무지에 색깔을 위해 시금치와 당근, 계란 정도가 들어간다. 그것도 많다.
여기는 정말 속재료가 아끼지 않고 들어갔다. 참치가 저렇게 많이 들어갔는데, 거기에 햄에, 맛살에, 어묵까지?
김밥이 커다래서 입에 힘겹게 욱여넣었다. 세상에, 맛있었다.
김밥의 속재료는 집마다, 취향마다 다르게 마련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 사장님 내외의 속재료는 우리 엄마의 셀렉션과 똑같았다. 햄, 맛살, 어묵, 계란, 시금치, 당근, 단무지. 김밥을 한 입 먹으면, 꼬꼬마였을 무렵으로 되돌아갔다.
엄마가 아직 집에 주부로 계실 무렵. 소풍을 가는 날이면 아침 꼭두새벽부터 맛있는 냄새에 깼다. 엄마는 부지런히 햄을, 맛살을, 어묵을, 계란을, 시금치를, 당근을 다 따로따로 볶아내어 쟁반에 가지런히 담아놓고 있었다. 계란이 동그랗게 나오면 기다랗게 잘라내는데, 그 옆에서 눈을 빛내고 있으면 엄마가
"야 너 이거 먹어라"
하고 계란 가생이를 입에 넣어줬다. 기름이 자글자글하고 따뜻한 계란 지단의 맛은 아쉽게도 금새 사르르 녹아 없어져 버리고, 엄마가 한 눈을 파는 사이 맛살을 쏙쏙 집어 먹었다. 한 두 개면 괜찮은데 계속 집어먹다 보면 들킬 수 밖에.
"김밥 말 거 모자라, 이노무 지지배! 고만 집어먹어. 가서 얼른 씻고 갈 준비 해"
엄마의 웃음기 어린 핀잔을 피해 씻고 준비하고 나오면, 아침밥은 언제나, 김밥 꼬다리 모음. 나와 언니가 빠르기 김밥 꼬다리를 해치운다. 김밥을 싫어하는 아빠는 엄마가 다른 반찬을 줬던가, 아니면 그냥 김밥을 드셨던가. 사실 나 먹느라고, 엄마 김밥 싸는 거 구경하느라고 기억은 잘 안난다. 산처럼 쌓아놓은 반질반질한 까만 김밥을, 엄마가 단칼에 척척척 잘라내면 알록달록한 예쁜 김밥이 나왔다.
그러면 우리 먹는 사이에 엄마는 예쁘게 잘린 중간김밥들을 골라, 내가 재능 학습지 스티커를 모아 받았던 접이식 도시락에 가지런히 담아줬다. 너무 많은가 하면서도 예쁜 것들만 골라 담아주던 김밥 도시락. 지금처럼 휴대폰에 사진찍는게 당연했다면 사진이 많았을텐데, 아쉽게도 사진이 없다. 김밥은 짜장면 다음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었다. 아빠가 대체 왜 이 김밥을 싫어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른다). 물론, 저렇게 속재료를 일곱 까지나 넣으려면 프렙하는데 진이 다 빠진다는 사실은, 꼬맹이인 나로서는 잘 몰랐다. 김밥을 싸려면 엄마가 일찍 일어났어야 했으니까, 오래 걸린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
아마, 미국에서 최근에 냉동김밥 대란이 일면서, 그걸 구호식품(?)으로 사다놓고 계란에 부쳐 먹던 것과 대비되서 였을 수도 있다.
트레이더스 조에서 대란이 났던 비건 냉동김밥인데, 나는 유행이 다 지나고서야 사먹을 수 있었다. 김밥, 단무지, 유부 시금치 정도만 들어간 단출한 구성. 사실 나는 그냥 돌려 먹으면 너무 맛이 없을 것 같아 항상 계란에 담가 부쳐먹었는데, 그럼 꽤 먹을 만 했다. 엄청 맛있냐고 하면 그렇진 않지만 맛 더럽게 없냐고 하면 그렇다고 하기도 애매모호한. '김밥이 먹고싶다' 라는 생각이 들 때 '그래, 뭐, 그냥, 뭐' 정도로 불을 끌 수 있는.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까 먹은 카페인의 영향이었는지도 모른다.
주책스럽게 눈물이 찔금 나오려는 걸 참았다. 한 입 가득 김밥은 오래오래 씹을 만큼 풍성했고, 저어만큼 추억에 젖을 즈음이면 빠르게 입에서 사라져갔다.
단식이 무어냐. 김밥을 다 먹고, 키오스크로 가서 참치 치즈/제육 삼각김밥도 샀다. 그릇을 돌려드리면서 사장님께 무어라고 하고 싶은데 고민하다가
"해외에서 먹어본 김밥중에 제일 맛있어요"
하고 이야기했다. 사장님은 기분 좋게 웃으시며, 감사합니다- 하셨다. 곧 나온 삼각김밥도 친절이 가득 담긴 몸짓으로 가져다 주셨다.
김밥을 먹고 행복감이 젖어 돌아다니다가, 맥주를 사서 돌아왔다. 사 온 김밥은 원래 마지막 날 비행기에서 식사로 먹으려고 했는데, 유혹에 못 이거 참치치즈김밥과 맥주를 마셨다. 세상에- 참치 치즈 김밥을 먹을 걸! 맥주를 얼마만에 마시는거지?
다음 날 또 갔다.
이번엔 새우튀김 김밥을 포장했다. 삼각김밥을 또 샀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맥주를 또 샀다.
기왕에 먹을거면 캐나다 맥주를 먹는다고 샀다. 어어- 새우튀김 김밥은 또 더 맛있었다. 새우가 촉촉, 바삭. 커다란 김밥을 한 입 가들 넣고 씹다가 맥주를 넣어 입 안을 씻어내렸다.
세상에나.
김밥과 맥주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나? 혼자 실실 웃으며 행복해졌다.
몬트리올까지 가서 김밥으로 행복해질 줄은 몰랐다. 몬트리올을 떠나는 건 아쉽지 않은데 이 김밥집을 두고 온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주책맞게 글을 쓰면서 김밥 맛이 나는 것 같아 눈물이 또 찔끔 난다.
몬트리올은 또 가야한다. 그 동안 그 근방에 계신 분들께서 많이 팔아주셔서 장사 잘 되었으면 좋겠다. 몬트리올 사시는 한국인들이 부러워 미치겠다. 많이 파시고, 건강하시고, 어린시절의 맛을 그리워하는 모든이에게 행복을 선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꼭 전해드리고 싶다.
김밥집 구글맵 정보 https://maps.app.goo.gl/e6w2u3gP721MSps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