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러 가기 전에도 네가 있어..
*이 소설은 사실과는 전혀 무관한 픽션입니다.
아이는 긴 머리를 고무줄로 느슨하게 묶으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오늘 수업은 밤 9:10 이였다. 늦은 시간에 일어나는 아이로서는 반가운 시간이다. 교통 체증을 걱정하며 여유롭지 못하게 준비를 했던 평소와는 다르게 오늘은 느긋하게 준비할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그녀의 시선은 이미 옷장으로 향했다. 댄스강사인 그녀는 언제나 보이는 게 중요하다. 옷걸이에 빽빽이 걸려있는 무채색 위주의 의상들 사이에서 오늘은 조금 더 뜨겁고 강하면서도 파워풀한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장미가 날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이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입술을 물었다. 수천번 수업을 준비해 봤지만 이상하게도 장미가 수업에 오는 날에는 언제나 마음이 설레고 산만해진다.
남자친구가 있고, 사제지간인 데다가 소문도 빠른 이쪽 세계에서 선을 그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수시로 생각나는 장미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장미의 치명적이고 바보 같은 매력 탓이다. 엄청난 몸치임에도 어떤 동작을 하든 열심히 하려고 애쓰는 그 진지한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게 문제였다.
옷을 고르며 마음 한구석에서 은근한 기대감이 솟아올랐다.
"장미는 오늘도 나시티를 입고 오려나? 아니면 지난번처럼 호피무늬 바지?" 저번에는 걸리쉬한 안무를 했지만, 이번에는 파워풀한 안무를 할 건데, 그리고 두 번이나 계속해달라고 했던 수업인데 어떤 옷을 입고 올까? 생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
"아.. 이러면 안 돼. 빨리 준비해야지.."
그녀는 혼잣말로 스스로를 다잡으며 화장대 앞으로 걸어갔다.
브러시를 쥔 손이 평소보다 세심하게 움직였다. 눈썹 모양 하나까지 꼼꼼히 살피며 정돈했다. 화장이 끝난 뒤엔 옷장으로 다시 향했다. 그녀는 춤추기에 편안한 옷과 유난히 핏이 좋은 검정 바지 중, 핏이 좋은 옷으로 골랐다. 옷을 입고 나서도 몇 번이나 전신 거울 앞에서 몸을 돌려보며 자신을 확인했다.
"그래, 이 정도면 됐다..!! 아니야... 혹시 너무 의도적으로 너무 꾸민 거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고개를 끄덕거리며 시계를 확인했다. 택시를 부르기까지는 아직 조금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물병을 집어 한 모금 마시며 창밖을 바라본다.
"얼마나 오랜만이지.. 2주 만인가?" 작게 읊조리며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한다. 지난번 수업 때의 장미의 모습을 떠오르니 또 웃음이 피식 나온다.
알 수 없는 이 감정.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딱 잘라 정의할 수 없었다. 장미를 볼 때마다 심장이 뛰고, 그녀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하루의 피로가 잊히고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감정이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뒤따랐다. 들킬까 봐 두렵기도 하고, 선을 넘으면 안 되는 관계라고 마음먹으니 장미에게 더 다가가고 싶어도, 스스로의 선을 넘는 것 같아 망설여졌다. 장미가 건네는 미소나 진심이 담긴 한 마디가 떠오를 때마다, 그저 학생과 선생님 사이의 범주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속 어딘가가 흔들렸다.
그녀와 사적인 관계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괜한 불안감마저 들었다.
"만약 장미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돌리면 어떡하지..?" 라며 괜한 초조함에 사로잡혔다. 단지 선생님으로서 응원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붙잡고 싶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장미가 수업에 오는 날이면 그날의 수업이 더 빛난다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서툰 동작에 미소 짓고, 진지한 태도에 마음이 움직여지는 아이는 그 어떤 때보다도 수업에 열심히 임하게 된다. 장미는 20년 차 프로댄스강사인 아이를 가장 열정적이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학생이다. 단지 재미있는 수업을 넘어서서 '진심으로' 진지하게 가르쳐 주고 싶게 만든다. 아이는 장미가 오는 수업날이면 언제나 땀으로 흠뻑 젖는다. 손목에는 긴 머리를 질끈 묶을 느슨한 고무줄을 항상 챙기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