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가나 너만 보여
*이 소설은 사실과는 전혀 무관한 픽션입니다.
오늘은 그녀가 아끼는 제자들이 아이를 대신해 수업을 진행하는 날이다.
“상체를 너무 앞세우지 말고, 하체 중심을 더 단단히 잡아야 돼. 그래야 (힘이 분산되지 않고) 끝까지 연결될 수 있어.”
여성스러운 선과 긴 머리의 외모지만, 아이는 팬들로부터 “언니 잘생겼어요!!!” 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아이의 이목구비는 또렷한 데다가, 웃을때는 한없이 장난꾸러기 같이 해맑고 편안하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가장 잘생긴 순간은, 춤에있어서 누구보다도 날카로운 눈썰미로 진지하고 열정이 넘치게 피드백을 할 때다. 십수년간 수많은 무대를 이끌어 와야했던 아이의 디렉팅은 단연코 전문가 그 자체였다. 그녀는 동작 하나하나를 분석하며, 단순히 틀린 부분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유와 대안들 까지도 명확히 제시했다.
아이의 지적은 단순히 기술적인 교정을 넘어, 춤의 메시지와 감정선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힌트를 주는 방식으로 디렉팅하며, 학생이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한다. 수업 중에도 그녀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학생들의 전반적인 흐름을 관리하며, 한 사람에게 과하게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지도력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디렉팅은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춤을 통해 무대 위에서 완성되는 예술을 만들어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장미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은 아이의 디렉팅에 몰입하며, 그녀가 전하는 디테일의 중요성과 춤의 본질을 이해하려 애썼다. 아이는 단순히 강사로서 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각자의 고유한 가능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는 멋진 디렉터였다. 아이를 따르는 팀의 제자들은 한명한명 아이의 디렉팅으로 아이가 손수 키워온 댄서들이다. 춤선 뿐만아니라 표정까지도, 아이는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처럼 그의 제자들을 아껴가며 키워왔다.
수업시작과 동시에 장미가 들어왔다. 평소엔 자신의 크루원들을 하나하나 자랑스러워하며 아껴왔지만, 오늘만큼은 장미의 시선이 유난히 신경 쓰였다. 장미가 어떤 생각을 할지 몰라 아이는 속으로 깊은 긴장감을 느꼈고, 그것을 숨기려 애썼다. 그러나 감추려고 한 탓인지 아이의 행동은 어딘가 어색해진다. 그 어색함은 곧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공기로 번져나갔다. 멀리서 다가오는 장미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평소라면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옷차림으로 아이의 눈길을 사로잡았겠지만, 오늘 장미의 ‘올블랙 룩’은 보이쉬한 매력을 한껏 드러냈다. 그런 장미의 모습은 아이에게 예상치 못한 호기심과 설렘을 불러일으켰다.
’왜 이렇게 보이쉬한 모습도 멋진 걸까… 항상 다르게 느껴져..‘
장미는 매번 다른 매력의 스타일링을 하고와 아이를 놀라게 한다. 어떨때는 여성스럽게, 어떨때는 화려하게. 예측이 불가한게 장미의 매력이다.
머리색도 백발이었다가, 금발이었다가, 파란색이었다가 기분이 내키는대로 휙휙 바뀐다.
장미가 긴장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는 동안, 아이는 그 모습을 보며 괜스레 같이 긴장해버렸다. 장미가 평소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는 다른 표정을 보이는 건 드문 일이었기에, 아이는 그 이유를 추측하며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동시에 장미의 변화된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 가서 관찰하고 싶다는 욕망도 생겨났다.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겉으로는 평소와 같은 여유로운 모습을 유지하려 애썼다. 아이의 속마음은 점점 더 큰 파동을 일으켰지만, 그녀는 그 진동이 장미에게 들키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장미의 존재는 이미 어떤순간에도 아이의 시선을 빼앗아감과 동시에 그녀의 마음을 깊게 흔들어 놓고 있었다.
올블랙 룩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스타일링을 한 것과는 달리, 오늘도 어설픈 동작으로 춤을 따라하려는 장미를 보며 아이는 피식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애써 참아냈다.
장미는 오늘도 올블랙 룩으로 단번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상하의 모두 검정색의 톤과 장갑을 상징하는 손목토시까지. 깔끔하게 눌러 쓴 모자 아래로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장미는 마치 춤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존재감에 감탄했지만, 아이는 장미를 보며 또 다른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바로 그녀의 어설픈 춤사위였다. 음악이 시작되자 장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몸을 움직였지만, 그 동작은 프로페셔널함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갈곳잃은 팔다리를 허공에 허우적대던 장미의 모습은 예상했던 카리스마와는 정반대였다. 특히 그녀가 한 발로 균형을 잡는 동작조차도 따라하지 못하는 모습을 본 아이는 ’어떻게 저 동작이 안될 수 있을지‘ 당황스럽기까지 하면서도 웃음이 터질것 같았다. 아이의 시선은 장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완벽하게 춤을 추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장미는 이상하게도 가장 빛나 보였다. 그녀의 춤은 어설펐지만, 그 속에는 순수한 열정과 즐거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렇게 멋진 옷을 입고도 저렇게 어설플 수 있는 건 대단한 재능이야. 그리고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즐기는 게 정말 장미답네.”
아이는 장미의 어설픈 동작을 보며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애써 참았다. 하지만 그녀의 입꼬리는 이미 올라가 있었고, 마음속에서는 묘한 재미와 사랑스러움이 동시에 느껴지고 있었다.
“장미야, 너 진짜 대단하다. 이렇게 제멋대로 춤을 즐기면서 추다니.. 역시 대단해!!!“
장미는 그 말에 당황하지 않고 환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됐죠 뭐. 춤은 즐기면 되는 거잖아요. ^^”
그 말에 아이는 다시금 장미의 매력을 느꼈다. 완벽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그 모습이야말로 장미의 진짜 매력이었다.
장미는 고백을 하고 차이는 일련의 과정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니, 오히려 더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냈다. 뚝딱거리면서 리듬에 몸을 맡긴 춤사위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 속에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솔직함과 에너지가 담겨 있었다. 아이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어딘가 모르게 끌렸다.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
아이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늘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들의 평가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는 성격이었다. 무언가를 할 때에도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늘 따라다녔다. 그러나 장미는 그런 부담감을 마치 모르는 사람 같았다. 잘하던 못하던, 그녀는 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진심으로 즐겼고, 그 태도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녀를 더 빛나게 만들었다.
장미는 뚝딱이중의 뚝딱이. 그 자체였다. 동작은 투박하고, 거의 모든 동작이 박자와 맞지 않게 삐끗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작은 실수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더 크게 웃으며, 몸을 흔드는 모습은 아이를 혼란스럽게 하면서도 미소 짓게 만들었다.
“저런 자유로움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저 사람은 왜 이렇게 특별할까.”
아이에게 장미는 미스테리 그 자체였다. 차이고도 당당하게 웃고, 남들이 어떻게 보든 춤을 추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 장미는 자신의 삶을 관객이 아닌 주연으로 살고 있었고, 그것이 아이가 느낀 장미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아이의 마음속에는 장미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 동시에 자리 잡았다. 그 미스테리함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쩌면 그게 장미를 계속 바라보게 만드는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속으로 되뇌었다.
“잘하던 못하던, 고백을 받아주건 말던, 좋아하는 걸 즐기는 저 모습이 정말 멋져. 나도 언젠가 저렇게 자유롭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장미는 아이에게 단순한 매력이 아니라, 그녀가 닮고 싶고 배워야 할 무언가를 보여주는 거울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