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혹시 냥냥펀치를 하고 온건가?
*이 소설은 사실과는 전혀 무관한 픽션입니다.
몇 개월 전이었다. 장미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가 속한 댄스팀의 크루에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직접 문의를 넣어보았다. 아이의 옆에서 함께 춤을 출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행복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모집중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
“문의는 정말 감사하지만, 현재는 크루원 모집 중이 아니라서요.. 나중에 모집하게 되면 공지를 꼭 올려 드리겠습니다!”
아쉬움에 한동안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옆자리에 설 수 있는 날은 언젠가 올 거라고 믿으며,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노력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날 이후, 장미의 하루는 완전히 달라졌다. 춤에 필요한 기본기부터 다지기 시작했다. 코어 근육을 강화하는 트레이닝은 그녀의 일상이 되었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 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마라톤 연습도 시작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녀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매일 밤마다 연습실에서 마지막까지 불을 끄는 것도 장미였다. 그녀의 열정은 주변 사람들까지 자극하며 점점 더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줄 날이 찾아왔다. 장미는 거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에는 땀이 배어 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단단히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내가 아이의 옆에 설 수 있는 날은 반드시 올 거야..'
무대 뒤에서 흐르는 음악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장미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지금 이 순간은 그녀가 그토록 꿈꿔왔던 날을 향해 다가가는 첫걸음이었다. 음악이 시작되자, 강렬한 비트가 장미의 온몸에 전해졌다.
"썬더 썬더썬더~ 썬더 썬더!!!"
반복되는 가사와 함께, 그녀는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열정과 함께 첫 동작을 펼쳤다.
짙은 눈화장 아래에서 번뜩이는 눈빛, 모자로 살짝 가려진 얼굴은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손목에 찬 손목아대는 번개의 에너지를 닮은 날렵한 움직임을 완성하기 위해 준비된 무기 같았다. 장미는 음악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몸으로 표현하며, 평소 연습했던 모든 것을 쏟아냈다. 그 수업에 온 누구보다도 이 안무를 잘 해내보여서, 꼭 '솔로영상'을 남겨 보이고 싶었다. 솔로로 하는 안무영상을 찍어 남기는 것은, 나 이제 준비됐어!!! 라는 자신감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기회와도 같은 것이었다. 스스로 얼마나 성장했는지, 아이와 아이의 크루원들에게 증명 해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춤을 추던 중,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 이.....이게 아닌데...'
그녀는 자신이 꿈꾸던 강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 아니라, 어딘가 부드럽고 가녀려 보이는 자신의 실루엣을 발견했다. 흐트러지는 헐렁한 상의와 매끄럽게 이어지는 동작 때문인지, 자신이 의도했던
'강렬한 번개'보다는 어딘가 '냥냥펀치' 같은 느낌이 강했다.
'나 왜 귀엽지...?'
생각할수록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분명 춤을 통해 강렬하고 인상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도 지금의 자신은 귀여움과 어설픈 사랑스러움이 더 강조되는 듯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강렬할 거라고 예상했던 헐렁한 상의가 계속해서 몸선의 강인함을 드러내는 것을 방해했고, 파워풀한 안무를 반복해서 추는 탓에 점점 더 힘이 빠져서 동작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장미가 의도했던 '강렬한 댄서' 이미지는 점점 '귀여운 고양이' 같은 느낌으로 바뀌고 있었다. 점점 멘탈에 혼란이 오는것을 느끼며, 장미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며 머리를 쥐어뜯고 또 쥐어뜯었다. 그러나 마음먹은것과는 달리 점점 앞에 배운 안무마저 까먹게 되며 나중에는 앞사람을 보고 겨우 동작을 따라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장미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거의 독립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었고, 손목에 찬 손목아대는 이상하게 그녀의 손 동작보다 더 존재감을 뽐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볼 때마다, 장미는 속으로 외쳤다.
'저게 누구야? 저게 나라고? 아니, 저건 춤추는 번개가 아니라 냥냥펀치를 하고있는 행사인형이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 미래를 함께하고 싶었던 아이와 크루원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무자비하게 그녀의 모든 동작들을 포착하고 있었다. 행사인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해내보여야 했다.
그녀는 속으로 다짐했다.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끝까지 추자. 어차피 개망신도 한 번이지 두 번인가. 훗'
'촬영도 하자! 내가 얼마나 개망신에 강한 사람인지 보여줘야지. 보여줄게 없으니 그거라도..!!!!'
하지만 개망신과 수치심을 이겨내면서도 '끝까지 해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장미는 자기 자신에게 살짝 감탄했다.
장미는 얼굴에 묻은 땀을 닦으며 거울 속의 자신에게 속삭였다.
'그래, 나 정말 대단하다. 이 정도로 스스로와의 내적갈등에 미칠지경 이었으면서도, 끝까지 춤춘 사람은 나밖에 없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