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느낀 감정은 불안이었다. 매장이 바쁘지는 않았지만 나 혼자 더 조급해졌고,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퇴근을 하고, 몸은 쉬고 있지만 머리는 아직 언더아머 매장이었다.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같은 시간에 눈이 떠졌고, 휴무날에는 상사의 연락이 올까 봐. 전전긍긍하며 핸드폰을 올려놓고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이때부터 불안장애가 시작되었다. 불안장애의 회복은 쉽게 극복하지 못한다. 내가 가만히 쉬면 안 된다고 다짐을 했던 때가 있었다.
최근 ABC마트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2025년 12월 9일 새벽, 20대 직원이 점장의 폭언으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봤다. ABC마트 직원 사망 사건을 접하고, 그 기사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뉴스 속 이야기가 그렇게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ABC마트 측은 괴롭힘과 초과근무 지시 없었다.라고 부인하다가 논란이 커지고 사과와 조사, 조직 문화 개선 약속을 발표하면서 언론의 집중도가 높아졌다.
이런 뒤늦은 대응이 오히려 관심을 키웠을지도 모른다. 보도 내용이 구체화되면서 논란이 커진 것이 마음이 아팠다.
나는 언더아머를 그만두었다. 그 결정은 충동도. 단 한 번의 기억들도 아니다. 하루하루 쌓인 말들과 당연하다는 듯이 넘겨지는 업무와 감정의 노동이 그토록 나를 마르게 했다. 퇴근 후에도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는 매장의 장면들 때문에 몸은 집에 있어도 마음은 매장에 늘 남아 있었다.
버티는 사람이 장땡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때 조금만 더 견디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고, 무식하게 버텨 냈다. 아마 다들 산다며 나 스스로를 설득하고 세뇌했었다.
혹여 나라도 불편함을 문제 삼는 내가 예민해진 건 아닐까. 이 정도로 힘들다고 말하는 건 나약해진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나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버티는 게 미덕이라고 믿었고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사건이 이제야 회자가 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런 일들은 늘 조용히 지나간다. 문제가 되는 순간보다 참고 있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누군가 쓰러지고 나서야 그제야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라는 말이 따라간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알고도 퇴사 혹은 버티기로 하루하루 피눈물을 쏟아 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한계치까지 버텨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걸. 일로 살아남는 것은 굉장히 미련하다는 걸.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나 역시 피해자도. 관찰자도 아니다. 다만 비슷한 공간에서 최악의 경우를 고려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자리에서 당연하게도 같은 고민을 할 수 있다. 겨우 일 하나로 최악을 말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말하고 싶었다."
이 이야기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으니까. 나도 죽지 않기 위해 떠났다. 그 선택이 나약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언더아머를 그만두고 나서야 나를 조였던 불안은 편안해졌다. 이제야 내가 얼마나 긴 시간을 스스로를 밀어붙이고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끝까지 버텨서 무언가를 증명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같은 월급을 받는 점장이 사회초년생 직원이라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으로 비극을 남겼을지도. 그녀도 패션 브랜드를 좋아해서 이를 악물고 버티고 버텼을 거라고.
최근에 읽었던 <다크심리학> 내용 중, 조직의 암투와 배신이 반복되자 자신을 냉혹한 세계에 적응시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람다움을 내던져야 한다.라는 결론을 내렸고, 사랑하던 가족마저 제거할 만큼 잔신한 보스로 변모한다. 조금은 공감 가는 영화 <대부>의 마이클 콜라오네를 떠올린다. 원래 그는 가족을 사랑하는 순진한 막내아들이다.
버티기 위해서는 독해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우울증의 민족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불안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꼭 해야 하는 것 3가지
1. 자기 발전의 끈 놓지 않는다.
2. 운동 끊지 않는다.
3. 내가 선택한걸 꾸준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