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의 진리
퇴근 후 서둘러 대전역으로 향한다.
오늘은 서울에서 동기 모임이 있는 날이기 때문.
매일 대전 서울 출퇴근을 할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서울을 가려 하니 조금 멀게 느껴진다.
그래도 마음만큼은 가볍다. 설레기까지 하다.
서울은 나에게 참 특별한 도시인듯하다.
금새 서울역에 도착한다.
특유의 탁한 공기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멀리서 보면 희극인 자동차 불빛들,
그리고 멋진 야경들까지.
솔직히 그리웠다.
대전으로 내려오게 되며 와이프, 그리고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행복하지만 호수같이 고여있는 지방 특유의 분위기는 나를 자꾸 현실에 안주하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이곳 서울에서 처음 만난 동기들은 지방 각지에서 올라온 촌놈들이었다. 대전, 김천, 논산, 여수, 함안, 김해 등등. 그러나 이제는 주민등록증에 서울특별시와 수도권의 주소지가 적혀있는 어엿한 서울 수도권 사람이 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굳이 재테크 모임에 나가지 않아도 돈 얘기, 재테크 얘기, 부동산 얘기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들 모두의 관심사이기도 하고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오늘은 그 동기들 중 가장 이상적으로 부를 축적하고 있는 형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굉장히 단순하지만 확실했던 그의 루트를.
"부욱꿈아~ 내도 대전에서 대학 다녀서 대전하고 친하데이. 네가 대전 사람이라 하니 반갑데이. 앞으로 친하게 지내 보쟈~"
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동기 형. 샤프한 외모와는 다르게 항상 어딘가 허술한 형이다.
길 가다 새똥을 맞기도 하고, 근무하다 개똥을 밟고 쭉 미끄러지기도 하고.. 업무 중 자잘한 실수도 늘 있었던 그런 챙겨주고 싶은 형.
이 형의 서울 생활의 시작은 의정부였다. 의정부역 인근에 위치한 저렴한 신축 전셋집. 이 형을 따라 나도 의정부역 인근에 전셋집을 얻어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동네에 살다 보니 종종 함께 저녁을 먹으며 반주를 곁들이기도 했다. 한 번은 흑돼지를 먹다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
"부욱꿈아~ 내는 목표가 하나 있데이. 여기 주민등록증 뒤에 보면 주소 보이제? 내는 여기에 서울특별시 주소를 하나 찍어 보는 게 목표레이."
처음에는 별 이상한 페티시가 다 있네 하고 넘겼지만 이 형은 의정부집 전세 만기 시점에 이사를 가게 된다. 회기역 인근의 원룸으로. 정말 단순하게 서울특별시 주소 하나 남겨보겠다는 그 목표 하나로.
그리고서 같은 부서 내에 누나랑 연애를 시작한다. 남들은 사내연애가 부담스러워 숨기고 꺼리지만 이 형은 단순하게 '서로 좋으면 된 거 아닌가'라는 마인드로 결혼까지 성공하게 된다.
신혼집 역시 단순한 이유를 고집한다.
회사랑 멀지 않고 전세가격이 싼 집.
그렇게 동기 형은 노원구의 대표적인 재건축 단지인 '미미삼' 아파트 전세로 신혼을 시작한다.
부동산, 주식 등 재테크에 별 관심이 없던 동기 형은 집이 좁다는 이유와 집값이 오르고 있다는 뉴스 하나로 또 한 번의 이사를 결심한다.
동대문구에 위치한 구축 아파트로.
이제는 매매를 결심한다.
그때가 바로 2020년 전국이 부동산 불장이던 그 시기다. 당시 보금자리론은 6억 이하 주택에 대해 대출을 해줬는데 동기 형이 딱 6억 언저리의 주택을 매수한 것이다.
그때 당시 계약금만 내고 잔금은 치르기 전이었는데 1억이 올랐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동기 형은 집값이 올라서 기뻐하기보다는 서울에 내 집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였다.
"내는 투자 그런 거 모른데이. 그냥 내가 살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것을 사는기다. 다른 데가 더 입지가 좋을 수 있어도 내는 딱 여기까지만 살 수 있데이."
그 서울 집에서 애가 둘이나 생겼다. 금술도 좋지. 그 상황에서 2023년 마침 집값이 폭락하기 시작하고, 대출 규제도 풀린다. 마침 성동구에 9억 이하 구축 아파트가 매물로 나왔다.
이 형은 작년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하여 또 한 번 성동구로 갈아타기에 성공한다. 또한 올해 저금리 정책금융상품인 신생아 특례 대출로 대출 갈아타기에도 성공한다.
현재는 아이의 교육 환경을 생각하며 추후 지금 살고있는 집을 전세 주고 대치동에 전세로 들어가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 형을 믿는다. 대치동에 전세로라도 들어가게 되면 훗날 이 형은 반드시 강남에 등기를 치려 할 것이다.
김밥천국의 도시 김천에서 올라온 촌놈이 단순히 주민등록증 뒷면에 서울특별시를 기록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서울에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 적절한 시기에 나오는 대출상품을 활용하여 갈아타기에도 성공했다.
그리고 그 집은 현재 가격이 억대로 상승했다.
때로는 복잡한 셈을 하는 사람보다 단순한 사람이 부를 축적하기도 한다.
복잡한 세금을 어떻게 활용할까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다주택자가 된 나보다, 단순하게 1주택자를 유지했던 동기 형이 더 부를 축적한 것처럼.
주식도 차트를 보며 기술적 분석을 하는 남편보다 냉장고가 좋아서 삼성전자를 매수한 아내의 수익률이 더 좋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어보지 않았나.
동기들 모두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밖에서도 열심히 산다. 많은 것을 느끼고 온 모임이었다. 이렇게 서울은 늘 나에게 자극이 되는 도시다.
사람들은 투자를 할때도, 삶을 살아가면서도 어려운 것을 해야만 꼭 잘하고 성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때로는 단순한 것이 정답일 수도 있다.
이 형처럼.
⬇️ 동기 형의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