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팔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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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따르르르릉.
부동산 아줌마다. 며칠 전 분명 매도 보류 의사를 밝혔는데 이번엔 또 무슨 일인 건지. 살짝 죄송스러운 마음에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본다.
"아 소장님 안녕하세요~~~!!"
나보다 더 밝은 부동산 아줌마의 목소리.
"사장님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저번에 가격 조율 때문에 조금 서운하셨죠~? 죄송해요..^^ 아직 매도 의사가 있으시면 저번에 사장님이 말씀하신 금액으로 제가 매수자 설득해 볼게요.."
매수자를 설득하는 것보다 내 와이프를 설득하는 게 더 어려워 보이는데.
일단 나도 와이프에게 이야기해 보고 다시 연락을 준다고 한다.
사실 매도 보류는 와이프가 결정한 것이다. 와이프도 처음에는 실거주 집을 매도하고 더 우량한 자산을 취득하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우리가 가격 협상을 하던 그날, 이미 우리는 흔쾌히 700만 원을 양보했는데 매수인 쪽에서 가격을 더욱 깎으려 하는 것을 와이프는 조금 불쾌해했다.
전문용어로 와이프의 '삔또'가 상한 것이다. 삔또 한 번 상하면 정말이지 야레야레 못 말리는 아가씨가 되어버리는 사람이라.
"더 이상 이야기할 것 없어. 그냥 집 안 판다고 전해드려. 100, 200 부동산에서는 별거 아니어 보여도 큰돈이야."
와이프가 했던 이야기다. 와이프의 폭풍 카리스마에 압도된 나는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와이프를 설득해야 한다니.
아니 설득이랄 것도 없긴 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보자.
"여보, 매수자 연락 옴. 우리가 최종 제시했던 금액에서 네고 없이, 대신 잔금일은 우리 쪽에 맞춰서."
곧바로 와이프에게 연락이 온다.
"금액 조건 맞으면 나머진 북꿈이가 알아서 진행시켜. 그런 거는 북꿈이가 잘하잖아."
결국 우리는 실거주 집을 매도하기로 결정한다.
사실 나도 알고, 와이프도 알고, 부동산 아주머니도 다 안다. 현재 매도하는 가격이 나쁘지 않은 가격이라는 것을.
심지어 내년에는 대전 입주장이라 매도하기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구축이라면 더더욱.
부동산 아주머니에게 우리의 조건을 이야기한다.
여기서부터는 나의 영역이다.
"저희도 사정이 있어서요, 조건이 맞으면 이 가격에 매도할게요. 일단 저희가 내년 3월까지는 이 집에서 살다 나가고 싶어요. 잔금을 3월까지 하되, 대신 그전에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게 되면 잔금을 앞당길 수는 있습니다."
부동산 아주머니는 조금 난처해한다.
매수자 쪽도 사정이 있기 때문에.
기존 전세 만기 날짜와 대출 문제 등등.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해결 방안이 보일 것 같아 부동산 아주머니에게 해결 방안을 제시해 본다. 매수자 쪽에도 전달해 보겠다고 한다.
한 시간 뒤,
부동산 아주머니에게 전화가 온다.
"문자로 계좌번호 하나 남겨 주세요, 지금 가계약금 넣고 오늘 시간 괜찮으시면 계약서도 쓰시죠!"
크. 내가 제시한 해결 방안이 먹혔나 보다.
그날 저녁,
부동산에서 모두가 만난다.
95년생의 신혼부부. 올해 딱 서른.
몇 년 전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첫 내 집 마련의 설렘과 걱정이 공존하던 그 시기.
우리가 이 집을 매수할 때 100만 원 흥정을 시도했다 거절당했을 때 얼마나 상심이 컸는지 생각이 난다. 그땐 '100만 원이 뭐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반대로 내가 매도자의 입장이 되어 있다.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직업군인 느낌의 매수자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사장님, 제가 왜 이 집을 매수하려고 마음먹었는지 아세요~?"
그러고 보니 궁금하다. 급매도 아니었고 심지어 근 2년간 최고가로 거래되는 건데. 혹시 인테리어?
"인테리어 때문이셨어요~?"
곧바로 매수자가 대답한다.
"인테리어도 훌륭하죠. 그치만 그것보다 일단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 즉 사장님의 기운이 너무 좋아 보였어요. 작은방에 수십 권의 책들과 부동산 지도가 펼쳐져 있던 것이 아직 눈에 선해요. 그리고 부부의 사진이 집 안 곳곳에 예쁘게 걸려 있다는 것도 너무 좋았어요. 그만큼 금술이 좋다는 거니까요. 그래서 여기 살고 싶었어요"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다.
집 안의 분위기.
사람의 기운.
나 역시 집을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 집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우리 부부가 좋은 느낌을 줬다는 것에 뿌듯해진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계약일이다.
순간 이 집을 공짜로 줄 뻔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계약서 작성이 이루어진다. 예전에는 계약서에 침 묻혀가며 도장 턱턱 찍어가는 맛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전자계약으로 진행이 되나 보다.
부동산 전자계약. 편한듯하면서도 참 불편하다.
아니, 그냥 불편하기만 하다.
전자계약이 서툰 부동산 소장님이 인증서에 문제가 생겨 난처해한다.
보고만 있을 순 없지. 내가 나서보자.
"혹시 제가 좀 도와드려 볼까요?"
부동산 소장님이 활짝 웃는다. 그리고 머지않아 인증서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한다.
정말이지 나란 남자, 문제해결능력에 강한 남자..
소장님이 감동의 눈망울로 나에게 묻는다.
"혹시 무슨 일하세요..? 아까 매수자 쪽 대출 문제 같은 거 해결책 제시한 것도 그렇고.. 부동산 하세요?"
"^^.. 그냥 부동산에 관심 많은 회사원이에요"
찡긋.
계약을 마치고 캔맥 하나를 사서 집에 도착한다.
도착하자마자 집 안을 삥 둘러본다.
기분이 이상하다.
행복한 추억이 가득한 우리의 첫 집이 팔렸다.
매일 아침 쓸고 닦고 애지중지했던 우리 집.
우리 부부를 한 단계 더 성장하게 해준 우리 집.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하니 섭섭한 마음이 먼저 든다. 욕심만 버리면 오래오래 살아도 될 법한 집이었는데.
매도 소식을 들은 부모님도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그냥 그 집에서 잘 살지 뭐 하러 이사를 가려 그래. 애 낳아도 하나까지는 키우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움과 섭섭한 마음이 들지만 정 때문에 매도를 보류할 순 없다. 1년, 2년 더 살다 매도한다 해도 그땐 지금보다 더 많은 추억이 이 집에 쌓이게 될 것이다.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나이에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면,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와이프도 나도 잘 알고 있다.
상승장 최고가 매도는 아니지만 수익을 보고 매도하게 되었다. 또한 양도세 비과세 기간에 딱 맞춰 매도하게 되었고, 내년부터는 5년 혼합형 주담대 고정금리도 변동금리로 변경될 예정이었다. 2%대의 금리에서 4%의 금리로.
아쉬운 마음을 좋은 타이밍에 매도한 것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와이프는 계약서 쓴 날부터 옷 방에 옷 정리를 안 하고 있다. 이 집과의 정 떼기라나 뭐라나. 조만간 와이프 옷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저 방의 방바닥이 꺼지지는 않을까 두렵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애정이 가득한 첫 내 집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 우리의 선택이 훗날 돌이켜보면 잘 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다음 플랜을 위해 와이프와 또다시 의기투합을 해본다.
아자아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