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에 놓여있는 책들의 공통점이 있다. 돈과 성공에 대한 이야기 다음으로 많은 것이 심리학, 마음치유에 대한 책이다.
이런 책들이 돈에 대한 이야기 다음으로 인기가 많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돈을 원하는 만큼 마음에 고통이 쌓여가기 때문이다.
빈곤은 사라졌지만 상대적 빈곤으로 우울감을 호소하는 현대인들은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의 마음의 병을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두근거림, 과호흡, 공황발작의 병리적 증상이 나타나야 병원에 간다.
베스트셀러 중 도파민네이션은 쾌락과 고통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쾌락에 중독된 현대인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아주 많이 던져주는 책이다.
오늘도 역시 나는 평범이의 일상을 통해 바라본 중독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주에서는 子라는 글자와 未라는 글자가 원국에 있으면 중독적 편향이 있다고 본다.
子는 자의속성 중 "중독, 몰입"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사주에 子라는 글자가 있으면 알코올중독, 도박중독, 섹스중독등 중독적 성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고 본다. 未라는 글자도 중독적 성향이 강하다.
대체로 미각이 발달되어 음식에 대한 중독, 담배나, 마약 같은 약물중독의 편향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반드시 저런 증상으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드러나는 중독의 증상은 다르며 대체로 子와未의 글자가 가진 속성이다.
그런데 "중독과 몰입" 사실상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작용한다.
중독은 어떤 물질이나 대상이 나 또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지속적, 강박적으로 남용하는 것이다. 즉 신체적인 자극이나 행위를 통해 정신의 쾌락을 추구한다.
몰입은 어떤 물질이나 대상에 깊이 파고들거나, 빠져있는 상태다. 즉 오로지 정신적인 에너지를 사용해서 정신적인 쾌락을 얻는다.
두 가지 모두 부작용은 아주 명확하다.
중독이나, 과몰입상태가 되면 정신이상이나, 병리적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몰입은 쾌락에 비해 자극을 얻는 속도가 매우 느리며 쾌락으로 얻는 자극보다 강도는 매우 크다.
그만큼 빠져드는 것도 쉽지 않고 빠져나오는 것도 상당히 어렵다는 말이다. 극단적인 몰입의 부작용은 위대한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 발명가, 종교인등의 삶의 사례 등이 좋은 예시가 아닐까 싶다.
그중에서도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쾌락중독"은 적정 수준과 범위를 초과한 상태다.
도파민은 인체에서 기분 좋음을 느끼게 하는 신경 전달 물질로 도파민이 분비되면 일시적인 기분 좋음을 느낀다. 즉 우울감을 일시적으로 제거하거나, 고통에서 일시적으로 해방되게 해 준다.
이전에 글들에서도 늘 이야기해 왔듯 세상의 모든 것은 음양이며, 음양은 늘 조화와 균형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것이 우주의 법칙이자 자연의 법칙이다.
이는 보이는 물질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에서도 일어나며 감정이라는 에너지 역시 음과 양이 공존하며 균형을 맞추려고 하고 있다.
쾌락과 고통 역시 항상 균형을 유지하려고 한다. 쾌락으로 추가 기울면 다른 한쪽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동일한 만큼의 고통의 추를 올린다. 모든 과학적 법칙이 그렇듯 작용 반작용, 비례 반비례는 모두 우주의 법칙이다.
즉 적절한 쾌락과 고통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결핍의 사회에서 물질적 풍요의 사회로 삶의 질이 나아질수록 인간은 쾌락추구에 더 많은 무게를 올리고 있다. 그러면 결국 수평은 무너지고, 기울어진 추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 고통은 내가 가져간 쾌락만큼 많은 무게를 올리기 시작한다.
그 고통은 다음과 같은 감정으로 나에게 작용한다.
타인과 나의 물질적 소유의 양을 비교하게 만들고, 내가 적거나 부족하면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자신을 더 열심히 채찍질한다. 신체 곳곳에서는 통증이 나타나고, 늘 스트레스상태에 노출되어 있다.
SNS의 발달로 우리는 집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뭘 하고 사는지, 뭘 입고 먹는지, 뭘 즐기는지를 다 볼 수 있다. 고급차와 명품가방 명품시계나 옷은 나의 경제력이며, 압구정 강남 등 장소의 공유기능은 자신의 활동영역을 드러낸다. 늘 배경은 고층빌딩 가장 높은 층에서 모든 건물들이 내려다 보여야 하며, 골프나 고급자전거, 캠핑은 자신의 고급진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기 위해 가져야 하는 하는 필수 요소다.
그런 사람들이 실제 경제적 자유를 얻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내 현실과 사진 속 현실에서 괴리감만 느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달 카드값을 내기 위해 계속 일을 해야 하고, 몸이 아파도 당겨다 쓴 미래소득을 갚기 위해 약을 털어 넣으며 참고 일한다. 더 벌고 더 풍요롭게 보이기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쾌락을 얻기 위해 더 큰 고통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일부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목적 없는 소비를 한다. 평생 동안 가계부를 100일도 안 써본 사람이 수두룩하며, 만 원짜리 티셔츠는 몇 장씩 사고, 브런치 값으로 몇 만 원을 우습게 써도, 정작 만 원짜리 책 한 권을 살 돈은 아깝다. 몇 달의 미래소득을 저당 잡고 명품가방을 할부로 구매해도, 자신을 위해서 배우는데 투자하는 돈은 아깝다. 집밖으로 나서는 순간 주변은 온통 내 지갑을 열게 만들 소비와 쾌락의 유혹이다.
현대판 돈의 노예로 사는 삶은 당연한데, 자기 인생의 주인, 지배자로 사는 삶은 꿈이라고 한다.
어떻게 내가 주인인 내 삶이 꿈이 된 걸까? 더 심각한 건 이런 불편한 질문을 받거나 진지하게 자신과 대화를 하라고 하면 회피하거나, 외면한다. 자신이 낮은 수준의 의식을 가졌다는 것을 방어하는 자의식의 발동이다.
고민이 생기거나 머리가 복잡하거나 생각이 많아지면 게임을 하거나, 술을 찾는다.
원인에 접근하거나 문제 해결에 집중하기보다 다른 곳에 신경을 분산시키거나 알코올의 힘으로 고통을 회피해 버린다. 빠르고 즉각적인 쾌락으로 자신의 고통을 마취시키는 심리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SNS, 유튜브, 숏폼, 게임, 도박, 쇼핑, 음식 등이 있다.
이런 행위들은 가장 쉽고 빠르게 미각적, 시각적, 청각적 자극으로 도파민을 분출시킨다. 그러나 여기서 오는 쾌락은 지속시간이 매우 짧다. 그래서 또 추가적인 자극을 찾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상 속에서 도파민 중독이 되어간다.
그 행위에 미쳐있으면 자신이 중독상태인지 스스로 인지조차 하지 못한다.
가장 최적의 상태는 쾌락과 고통이 균형을 유지하는 상태여야 하는데, 한국인들은 집단 무의식의 영향으로 결핍 즉 고통의 무게가 더 크다. 그래서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욕심내고,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며, 스스로를 계속 부족한 상태로 몰고 간다.
적당한 수준에서 오르내리는 쾌락과 고통의 작용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하지만, 과잉으로 넘어가면 불균형상태로 축이 무너진다. 적정 수준을 벗어나서 축이 무너진 사람들은 고통회피를 위해 더욱 강한 쾌락을 필요로 한다.
약물중독의 경우 경제적으로 풍요롭거나, 경제적으로 결핍이 매우 심한 사람들이 더 중독되기 쉽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부유층 자제들은 물질적 결핍은 매우 낮은편이나 과도한 중압감이나 책임감으로 인한 불안이나 정신적 고통(기대에 못 미치는 자신, 부족한 나, 주변의 시선 등등)의 강도는 상당히 높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약물에 중독되는 경우들이 매우 많다.
또 너무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거나, 부모의 정서적 지원이 결핍된 사람들 역시 물질적, 정신적, 정서적인 공허함이 크다. 그에따른 고통은 매우 강하지만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쾌락적 보상은 낮은 수준이다. 이들도 균형을 잡기 위해 더욱 강도 높은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그래서 비행, 폭력, 탈선, 약물등의 강한 자극과 쾌락을 찾으며 그런 행위에 중독되기 쉽다.
그러면 쾌락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의 인간은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을 때 가장 극도의 불안, 고통을 느낀다. 죽음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나도 모를 불굴의 의지가 튀어올라 술이나 담배 마약등의 중독을 끊어내는 경우가 있다.
암이나, 불치병, 치명적인 사고등의 경험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절제라는 의지의 작용도 있다. 술 끊어야지, 담배 끊어야지, 커피 줄여야지, 핸드폰 좀 그만 봐야지, 이렇게 방탕하게 살지 말아야지, 책 좀 읽어야지, 등 우리는 자신의 행동 중 어떤 부분에서 저마다의 중독기질이 있다는 건 다들 인식한다. 그것들은 일시적 쾌락을 주지만 그 행동으로 인해 양심의 불편함이 생긴다면 스스로 덜어내는 조절을 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을 객관적인 3자의 시선에서 보는 연습을 자주 해야 한다. 내가 나인건 맞지만, 내 안에는 육체를 조종하는 정신의 내가 있고 또 그 둘의 행위를 지켜보는 제삼자의 내가 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제삼자를 등장시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나 스스로가 자신을 위해 정의를 구현하기위한 절제의 힘을 키워야 한다.
언제나 모든 에너지는 균형을 유지하려고 한다.
명리학에서 말하는 형,충,파,해,합 이런 것들이 전부 에너지의 전환작용으로 발생하는 변화나 변동이다.
과학적으로는 모든 에너지의 전환은 입자 간 충돌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하나로 모아지거나, 분리되거나, 변형되는 모든 과정에서 충돌작용이 발생한다. 그것이 인간의 삶에서는 온갖 사건과 사고로 일어나는 것이다.
인간도 에너지의 일부이고 자연의 일부이니 내가 하는 행동의 이면에는 늘 균형을 잡기 위한 반작용 상태(상대적 체험)가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뭐든 애를 쓰고 용을 쓰면 쓸수록 반작용이 그만큼 동시에 애를 쓰고 있다.
돈에 욕심을 낼수록 돈이 부족한 상태가 유지되고, 이성에 집착할수록 상대는 내 곁을 떠나고, 인간관계에 집착할수록 인간관계는 힘들어진다. 집착과 욕망으로 양팔 저울의 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면, 기울어진 쪽의 중요성을 덜어 버려야 한다. 그러면 반대쪽에 있던 고통의 추도 균형을 잡기 위해 고통을 덜어낸다.
작심 3일이면 어떤가. 실패하면 다시 시도하면 된다. 쾌락만을 추구하는 무절제한 행위의 빈도를 줄이고 자신을 인식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자신을 개선하려는 절제의 의지만 있으면 쾌락지향을 덜어 낼 수 있다.
그렇게 작심 4일, 작심 5일, 작심 6일 가다 보면 결국 전보다 줄어들고 있으며,
이런 작은 성공의 반복으로 스스로가 동기를 부여받으며 부정적인 쾌락이나 불쾌함을 좀 더 긍정적인 유쾌함으로 대체할 수 있다.
끊어내기 힘들다면 적절한 수준으로 의존하며 공생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중독을 유발하는 물질이나 환경을 내 주변에서 아예 제거해 버리는 것이 정답이지만.
스마트폰은 완전한 제거가 사실상 힘드니 절제 의지를 통한 조절이 필요하다.
오늘부터 강박적으로 과용하고 있는 습관들이 있다면, 조금씩 덜어내 보는 건 어떨까?
커피 3잔 마실 꺼 1잔으로 하루종일 나눠 마시기, 스마트폰 5 시간 할 거 책 읽기에 1시간만 나눠 써보기, 힘들다고 술 마실 시간에 뭐가 힘든지 나 자신과 맨 정신으로 대화해 보기, 앉아서 책만 보지 말고 밖으로 나가 걸으면서 생각하기 등...
가장 좋은 건 누구나 쉽게 빠지는 도파민의 유혹을 중독이 아닌 긍정적인 몰입으로 바꿔 쓰는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분야가 다르고 생각하는 능력의 정도는 다르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몰입니다. 몰입을 통한 쾌락은 상당히 지속시간이 길며 생산적이다. 강력한 문제해결능력을 동반하기에 성취감을 느끼며 자존감을 높여준다. 이왕 얻어야 하는 도파민이라면 긍정적인 행위로 분비시키자.
내 마음하나 바꿔먹었을 뿐인데 세상에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
정말 세상이 변하는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었기 때문에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마음 바꿔먹는 것도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부류들은 사실 구제가 어렵다.
상담할 때도 가장 답답한 사람들이다. 안되는 이유부터 찾고, 상담사가 잘 맞추나 못 맞추나에 집중한다.
당신은 늘 책을 가까이 두고, 자격증, 면허증, 학위를 활용하거나, 돈 버는 방식이 임대료, 면허료, 수수료 등의 형식인 직업을 가지는 게 유리하다고 하면 "아닌데요? 저 이런 일 하는데요. 공부는 죽어도 제 길이 아니에요." 안타깝게도 공부할 운을 타고난 사람이 공부하지 않으면 빈천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 당장은 먹고살아도 카르마를 해소하지 못하면 진급누락이다. 다시 또 윤회하면 운명의 수레바퀴 같은 삶을 반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비밀을 알려줄까?
내 사주의 안 좋았던 과거의 흐름이나 사건이 잘 맞아떨어졌다면 당신은 좋은 삶을 산 게 아니다. 그저 운명의 순리대로 살아온 것일 뿐. 진짜 좋은 삶을 산 사람들은 흉한 운도 길하게 바꾼 사람이다.
운이 바뀐 게 아니라 자신이 바뀌었기 때문에 운도 그 사람의 편을 들어준 것이다. 그런 사람은 다가오는 자신의 운도 유리하게 바꿔 쓸 수 있다. 왜냐고? 이미 자유의지로 운명의 수레바퀴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타로카드에서도 메이저 카드는 0~ 21번까지 이어지는 스토리가 있다.
그중 10번 카드는 운명의 수레바퀴다.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 반복한다는 의미로 재회의 암시, 회복, 재시도 등을 의미한다. 사주에서는 화개살과 비슷하게 해석된다. 그런데 운명의 수레바퀴 이후에 다시 1번 카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11번 카드부터 20번 카드를 만난다. 중세시대에 권력을 가지게 된 인간들은 정치와 경제, 종교가 결탁해 신의 율법을 어기고 죄악을 일삼았다. 급기야 인간들은 신의 권위에 까지 도전하였고, 이에 분노한 신은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죄를 심판하여 끝없이 고통의 삶을 반복하게 했다. 인간들은 온갖 탐욕으로 물들어 본질을 깨우치지 못하고 세상을 살아가기에 대부분은 다시 태어나 윤회의 수레바퀴를 돈다.
20번 카드는 심판카드다. 대천사 가브리엘에게 심판을 받는다. 이때 심판을 통과한 자는 21번 월드카드를 만난다. 즉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자 차원을 벗어나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이다. 다시 카르마를 해소하기 위한 윤회를 반복하지 않는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봐라 겉모습만 나이들 뿐 아직도 하는 짓은 20대에 머물러있는 사람들이 있다. 안타깝지만 발전하지 않은 거다. 계속 그렇게 변화하지 않으면 이들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계속 돌릴 수밖에 없다. 사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존재한다면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게 좋겠다.
역학의 역(易)은 바뀐다는 의미다. 하루도 낮과 밤으로 변화를 일으키듯 세상 만물 중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지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계속 변화하고 있고, 진화하고 있으며, 모든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 왔기 때문이다. 인격이 성장하지 않으면 겉모습만 인간일 뿐 사람으로 진화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불필요한 에너지덩어리를 내 주변에 둘 필요는 없다.
매사를 성공과 실패로 나누어 보지 말고, 노력의 빈도로 채워가보자.
강력한 동기 없이 너무 과도한 의무감을 부여하면 며칠 못 가 스스로 타협하는 나를 발견하고 실망하게 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이유는 다 에너지의 균형작용 때문이다. 과도한 열의는 과도한 낙담을 부르니
결과에 대한 기대를 하기보단, 자신만의 속도로 즐겁게 몰입하라.
결정을 할 때 최악의 상황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먼저 생각해 보고 결정을 하면 오히려 실패해도 실망감이 적고, 다시 시도했을 때 두려움도 없다.
나의 도파민을 양질의 도파민으로 개선하고 싶은 의지가 생겼다면 지금부터 바로 시작하면 된다. 시작은 누구나 책 한 권이다. 작은 하루가 모이다 보면 습관을 만들어 줄 것이다. 어떤 책을 읽었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듯. 책은 사람이 만든 최고의 문명이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매일 불안한 시대를 삶아가는 사람들에게 묻고싶다.
당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어떤 이유가 필요한거냐고...
좋은 직장?, 좋은 차? 좋은 집? 돈? 이런 명예롭고 물질적인 것들이 다 갖추어져 있어야만 행복한걸까?
행복은 지금 순간에 만족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충분하다 여기는 마음에서 온다. 행복은 쾌락처럼 잠깐 스쳐지나가는 도파민분비의 작용이 아니다. 아주 지속적이며 평안함을 가져다주는 요동치지 않는 잔잔한 마음의 균형상태이다.
불평안하며 불만족하는 마음상태에서는 균형이 깨져있기에 수백억 수천억이 있어도 행복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현재에 만족하며 삶에 감사함을 깨닫기 시작할때 비로소 평안함을 느낄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이유없이 행복하고 충분하며 삶에 감사한 마음을 느꼈으면
좋겠다. 이유없이 행복해도 됩니다. 그냥 좀 행복합시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