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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사랑 Mar 25. 2024

(육아회고 17)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잘하는 방법 

저는 한국에서 대학, 대학원을 다닐 때, 과외를 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습니다. 그래서 꽤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미에서 학교를 다니고 교수를 하면서도 많은 학생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녀의 공부를 걱정하시는 한국인 학부모님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희 애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요." 참 이상하지요? 분명히 다 다른 분들이고, 다양한 장소와 시간에서 만난 분들인데 모두 다 한결같이 이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에는 커다란 맹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머리가 좋으면 공부를 안 하는 것이 맞지 않나요? 머리가 좋다면 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요? 머리가 좋아서 한 번에 다 이해하고 이미 기억하는데,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 아닐까요? 


다시 한번 원점으로 돌아가서 여쭈어 보겠습니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암기력이 좋다는 뜻인가요? 이해를 빨리한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선행 학습을 잘 따라간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남의 말의 숨어있는 뜻은 빨리 눈치챈다는 의미인가요? 아니면 IQ가 높은 아이를 똑똑하다고 하는 것인가요? 또한 높다거나, 좋다거나 빠르다는 것은 동년배의 학생의 중간(중위수)을 넘어간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상위 1%에 든다는 말인가요?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똑똑하거나 빠르다는 것을 어떤 근거로 결정하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IQ란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의 평균 지능을 100으로 놓은 상태에서 그 아이와 동년배들 간의 지능을 비교하는 방법입니다. 일반적으로 아이의 지능이 150을 넘는다면 영재 혹은 천재라고 부르지만 때로는 이들 아이들이 천재가 아니라 단순히 남보다 발달이 빠른 경우도 흔하게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어떤 아이가 5세에 IQ가 200이더라도, 10세에 150, 15세에 120, 20세에 100이 되는 경우도 있고, 이런 경우는 천재라기보다는 그냥 남보다 두뇌의 발달이 빨랐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IQ 역시도 나이에 따라서 변하는 것으로 그 증감이 생각보다 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저만해도 세가 본 3번의 아이큐 테스트 결과는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큰 차이가 납니다. 또한 아이큐가 공부와 얼마나 관련이 있을지도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대학을 다닐 때, 같은 과의 동기들 중에서 제 IQ가 제일 낮았습니다. 하지만, 제 동기들 중에서 저만 박사를 받고 교수가 되었습니다. 박사를 받는다고 공부를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꼴등이었던 제가 공부를 웬만히 한 것으로 봐서, IQ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공부를 잘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가르친 학생 중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 학생은 제가 칠판에 쓰는 것도, 제가 하는 말도 전혀 필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수업을 듣는 동안 그 학생의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노트북도 공책도, 종이도, 하다못해 연필 한 자루로 책상 위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수업은 열심히 듣는데 그냥 필기를 하지 않는 학생이었습니다. 하루는 궁금해서 그 학생에게 물어봤습니다. 필기를 하지 않아도 괜찮냐고요. 그 학생의 대답이 참 기억에 남습니다. 자신은 수업을 들으면 모든 것이 기억에 남아서 노트 필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요. (지금의 세대는 믿지 못하겠지만, 제가 한국에서 학생 때, 이렇게 말하면 선생님께 버릇이 없다고 따귀를 맞았었습니다. 참 이상한 공교육을 받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강의 자체를 받아 쓰는 것이 비효율적인 교육 방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모든 강의 파워포인트를 학생들에게 제공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 학생은 그 학기 내내 필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학생이 제 수업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중상위권의 성적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위 글에서 예시한 학생의 기억력이 남다르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정확히 이 학생의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지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한 학기 동안 필기를 안 해도 될 정도면 기억력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이 학생은 제 반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을까요? 기억력의 좋고 나쁨이 반드시 성적의 좋고 나쁨으로 귀결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제 둘째 딸이 어려서 영어 발음이 서툴렀습니다. 아이의 유치원 선생님이 이를 지적하면서 저희에게 언어 치료(language therapy)를 받으라고 강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마 부모 마음에 아이가 부족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어려서 그런 것이니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발음이 좋아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박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그럴 수는 있지만, 어려서 쉽게 고칠 있는 것을 뒤로 미루려고 하느냐고 반문을 하시더군요. 말문이 막혀서 언어 치료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 언어치료 과정에서 전 매우 중요한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치료 선생님이 저에게 그러더군요. 일주일에 치료는 단지 몇 시간에 불과할 뿐이고 진정한 교육은 집에서 하는 것이라고요. 저는 거기서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교육을 학교에만 맡기려고 했던 제 마음가짐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집에서 부모가 가르치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잘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부모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아이에게 "너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라는 말은 이미 아이에게 너는 머리가 좋다고 세뇌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씀드린 대로 아이가 머리가 충분히 좋다면 아이는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요. 다시 말해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이에게 "너는 머리가 좋아서 공부할 필요가 없어"라고 말해주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기본적인 배움의 자세와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가장 중요한 곳인 집에서 "너는 머리가 좋아서 공부할 필요가 없어"라는 것을 아이에게 말해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아이가 똑똑하다는 것에 대한 자존감을 높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똑똑한 것보다 더 좋은 품성들이 더 많지 않나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또한 이 말은 때로는 "나는 부모로서 좋은 머리를 주었기 때문에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했다. 하지만 네 스스로 공부를 하지 않았기에 공부를 못하는 것은 온전히 네 탓이다"라는 뉘앙스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아이가 저학년일 때, 아이의 학교 성적이 온전히 아이의 책임일까요?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가라테 클럽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배움의 자세는 도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매우 큰 차이를 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이 집에서 받은 가정교육이 바로 나타납니다. 어떤 아이는 제 말을 잘 듣고 집중을 해서 빨리 늘지만, 어떤 아이는 딴생각만 하고 제가 가르쳐 주는 것에 집중을 하지 않아서 매일 제자리걸음입니다. 그래서 분명 똑같은 시간을 배우는데도 곧 아이들의 실력이 차이를 보입니다. 이는 보통 아이들의 운동 능력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의 경우만 빼면요). 단지 배움의 자세가 이 모든 차이를 만들 뿐입니다. 




제가 캐나다에 와서 아이들 성적표에 가장 만족했던 부분이 아이의 성적을 나타내는데 2개의 칸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칸은 아이의 시험 성적을 나타내는 객관적인 칸이었고, 두 번째 칸은 아이의 노력에 대한 선생님의 주관적인 평가를 나타내는 칸이었습니다. 전 아이들에게 첫 번째 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재능이 다른 것이니 시험 성적은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단 한 번도 아이들이 좋지 못한 성적을 받았다고 혼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노력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혼을 냈습니다. 왜냐하면 공부는 못할 수 있는 것이지만, 노력은 언제든지 스스로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이가 노력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다면, 설령 공부를 못한다고 해도 나중에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잘할 가능성이 크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잘 못하는 것에도 노력을 할 수 있다면, 나중에 삶에서 어려운 일이 생겨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연구자가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두고, 첫 번째 시험을 보게 했습니다. 두 반 다 평균 90점이 넘는 좋은 성적이 나왔다고 합니다. A반에 가서는 아이들에게 "너희는 정말 머리가 좋구나, 머리가 좋아서 좋은 성적이 나왔어!"라고 말하고, B반에 가서는 아이들에게 "너희는 정말 열심히 노력했구나, 너희의 노력 덕분에 좋은 성적이 나왔어!"라고 말했습니다. 1년 후에 어떤 반의 성적이 더 좋아졌을까요? 생각하시는 바가 맞습니다. B반의 성적이 월등히 좋게 나왔습니다. A반의 아이들은 머리가 좋아서 성적이 잘 나온 것이기 때문에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쯤 독자님들은 제가 어떤 말씀을 드리고 싶은지 눈치를 채셨을 것 같습니다. 네, 아이가 공부를 잘하게 하고 싶으시면 집에서 올바르게 공부하는 습관을 가르치셔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특히 어려서 그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아이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가정에서 그 힘을 길러 주셔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올바르게 공부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단 1분이라도 온전히 집중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놀이에 집중하고, 공부에 집중하는 연습을 시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는 부모가 올바로 집중하고 배우는 본을 보여 주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바담 풍" 하면서 아이가 "바람 풍"이라고 말하기를 바라는 것은 올바른 기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늘 가슴에 담아두는 옛날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한 시골 학교에 함박눈이 내려서 운동장이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으로 꽉 차 있었답니다. 교장 선생님은 그 학교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알려진 학생 세명을 운동장 귀퉁이로 불러 세웠다더군요.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부터 저기 운동장 반대편에 있는 미루나무까지 발자국이 직선을 만들도록 걸어보겠니? 첫 번째 학생은 한 발 한 발 집중을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한발 바로 앞에 똑바로 다른 발을 놓아서 발자국들이 일직선으로 만들려고 했답니다. 하지만 한참을 걷고 나니 자신의 발자국이 큰 곡선을 그리며 미루나무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 학생은 첫 번째 학생을 보고 눈으로 보는 것이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용감하게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하지만 한참을 걷고 뒤를 보니 자신의 발자국이 술 취한 사람의 발자국처럼 좌우로 흔들리면 걸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 학생은 아무 말도 없이 그 미루나무만 보고 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학생은 직선으로 발자국을 낼 수 있었죠. 


이 이야기는 저희의 인생 이야기 같습니다. 저희는 가끔은 눈앞만 보고 짧은 목표만 세워서 그 목표를 달성하는데 최선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또는 무작적 열심히 노력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일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굳건한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만을 보면서 매진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바로 이것 아닐까요? 아이가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은 이것이 아닐까요? 아이에게 보고 나아갈 그 아이만의 미루나무를 찾아 주는 것! 아이들 모두가 돈과 명예와 같은 단순한 하나의 꿈을 갖는 것이 아닌, 각자의 소중한 꿈을 갖게 하는 것, 그리고 그 꿈을 이루었을 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는 것!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학교와 교육이 이루어야 할 올바른 목표가 아닐까요? 저는 올바른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은 (특히 초등교육)은 아이의 꿈을 찾아주고 아이가 그 꿈으로 나아가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가정과 학교에서의 교육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정말로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학교 교육만을 비난하고, 교육 정책을 비난만 하거나 과도하게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저는 한국의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이 바로 '아이에게 꿈을 주는 교육'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한국에서 아이를 키워야 했다면, 제가 격은 지옥과 같은 학창 시절을 보내게 해주고 싶지 않아서라도 아이를 낳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이 듣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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