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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철현 Sep 11. 2023

야야야~ 내 이름이 어때서?

개명하지 않고도 최초의 이름을 사랑하는 법

궁금하지 않겠지만 나의 이름은 유(류)철현이다. '유'씨와 '류'씨는 엄연히 다른 성이다. 나는 버들 '류(柳)'씨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유(류)관순 열사가 있다. 나는  이름, 특히 성씨를 무척 애정하는 부'류'에 속한다. 곧고 안정된 (유)에 화려한 곡선의 ㄹ(리을)을 쌓아올린 빼어난 조형미와 선비의 진중함, 낭인의 발랄함이 모두 녹아든 독특한 매력이 마음에 들어서. 김이박처럼 흔하지 않고 김치 라구 라자냐처럼 꽤나 한국적이면서 이국적인 뉘앙스까지 조화롭게 가미된 느낌이 섹시하다(는 게 나의 자뻑).


그런데 군대를 다녀오니 주민등록제도상 두음 법칙이 적용돼 난데없이 성이 '유'로 바뀌어 있었다. 20년 넘게 써온 이름인데  의사는 일절 물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강제하는 상황에 '성'희롱의 불쾌감을 느꼈다. 류가 좋은데... 끙. 이에 반기를 들고 나는 한동안 사적 영역에서 류철현이란 이름을 계속 고수해왔다.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푸념을 늘어놓았더니 당시 잡학에 관심이 많은 친구 중 하나가 성명학적으로 내 이름엔 류보다 유가 더 좋다고 했다. 무슨 근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유'로 쓰면 이성에게 인기도 많고 사주팔자도 더 잘 풀릴 거라고 덧붙였다. 아, 그래~? 귀가 습자지 만큼 얇은 나는 그 다음날부터 군말없이 류철현 대신 유철현을 썼다.


왠지 돌잡이를 다시 한 기분, 수명도 최소 3년은 더 늘어난 것 같았다. 둥근 성으로 둥글게 둥글게 살면 좋지 뭐. 이후 이성에게 인기가 많을 거라는 친구의 예견은 완벽한 거짓으로 판명났지만 이름 때문에 덕을 본 건 없어도 그렇다고 딱히 탈이 나지도 않았으니 그것만으로 감사해 하고 있다. 중요한 건 이름의 표기만 바뀌었을 뿐 내가 류철현인 건 변함 없으니까.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은 지금도-텍스트로-나를 지칭할 때 류철현으로 부른다. 심지어 대학교 후배였던 아내의 휴대전화에 나는 '류'로 저장이 되어 있다. 내가 전화하면 하마(hippo) 사진과 함께 '류'라고 뜬다. 나는 그 부분이-하마 사진은 빼고-참 좋다. 원조 할매 국밥 뺨치게 나란 사람의 오리지널리티와 아이덴티티를 단 한 글자로 깔끔명료하게 표현하는 데다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느낌이 들어서다. 아내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지만 아무튼.


이 또한 전혀 궁금하지 않겠지만 철현이란 이름의 한자는 물 맑은 철(澈), 솥 귀 현(鉉)이다. 직역하면 물 맑은 솥뚜껑 손잡이. 의역하자면 맑은 물, 그러니까 귀한 것이 담긴 솥뚜껑의 손잡이처럼 없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사람 정도 되시겠다. 크고 무겁고 뜨거운 솥뚜껑을 손잡이 없이는 열 수가 없으니 그만큼 큰 일을 하는 인물이란 뜻(이라는 게 나의 두 번째 자뻑). 한 마디로 조커, 해결사,  투 가이(go to guy, 농구에서 중요한 순간에 득점해 줄 수 있는 선수)랄까. 나의 이름을 지은 아버지에게 직접 뜻을 물었을 때, '현'은 돌림자고 '철'은 철학관에서 그냥 그 한자를 쓰라 거라고 하 여하튼. 이 또한 그리 흔한 이름은 아니라는 것에 나는 만족한다. 다만, 발음이 조금 뻑뻑하다. 한 번 불러 보시라. 유철현. 류철현은 더하다.


홍보 업무를 하다보니 기자 미팅 때문에 식당 예약을 자주하는데 예약자명을 말할 때마다 멀미가 날 것 같다. 내 이름을 상대방이 잘 알아먹지 못해 몇 번이고 다시 말해야  때문이다.

"오늘 12시에 두 명 예약 되나요?"

"네. 됩니다. 성함이요?"

"유철현입니다."

"유철선님?"

"아뇨. 유철현이요."

"아~ 유철성님."

"아뇨. 유. 철. 현!!! 현대할 때 현요."

"유철... ?"

"아뇨 아뇨. 혓바닥할 때 혀에 니은요."

"아.. 네~ 예약 되셨습니다."


그렇게 혼신을 다해 설명했건만 정작 식당에 가보면 예약 리스트에는 '유철삼'으로 적혀있다(진짜로). 맙소사. 나는 누구랑 통화한 것인가? 철현이란 이름은 '현철'로도 자주 오인돼 불린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종종 "유현철 책임님 맞으신가요?"라고 물을 때가 있다. "아. 철현입니다. 현철은 이름표를 붙여~ 내 가슴에~ 확실한 사~랑의 도장을 찍어~를 부른 트로트 가수구요. 지금은 은퇴하신 것 같은데.." 서로 민망한 상황을 웃음으로 무마하려는 노하우도 자체 개발했다. 근데 요즘 어린 친구들은 현철을 몰라서 실패+더 민망. 나는 왜 노래를 부른 것인가?


얼마 전, 길을 가다 'OO설농탕'이라는 간판을 본 적이 있다. 설렁탕이 아닌 설농탕이라고 하니 왠지 좀 더 깊고 진하게 국물을 우려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표준어인 설렁탕은 대충 설렁설렁 만들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농과 렁의 차이는 맛 이상의 고차원으 다가왔. 가게 이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도 이러한데 하물며 사람의 이름은 얼마나 더 예민한 감수성으로 받아들여질까.


학창시절, 이름을 베이스로 지어진 별명이 많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개명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인 중에는 개명을 두 번이나 한 사람도 있다. 개명이란 예전엔 빚쟁이들에게 쫓길 때나 하는 신분 세탁의 개념이 강했다면 요즘은 자아의 리프레시, 인생의 터닝포인트의 목적이 강하다. 좀 더 나은 사람, 보다 윤택한 삶을 위해서.. 


과거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개명이 어려웠다. 그러다 2005년 대법원에서 이름에 대한 행복추구권,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면서 비로소 개명이 개화를 맞이하게 된다. 가정 법원의 개명 허가를 받으려면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다. 이름 때문에 놀림은 받는다거나, 한자 이름을 한글로 바꾸고 싶다거나, 부모의 성을 모두 이름에 넣고 싶다거나. 재밌는 건, 사주나 성명학적인 이유로도 가능한데 이럴 땐 사주감정서나 성명학 풀이서를 첨부하면 더 수월하게 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름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최초로 정하는 것은 아니다. 뱃속에서부터 나를 이렇게 불러주소~ 하고 나오는 게 아니니 정해진 이름을 숙명처럼 써야한다. 나처럼 이름이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을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인터넷에 도는 '개명 신청 레전드 이름'에는 방귀남, 백김치, 석을년, 구빠이, 피바다, 왕변태, 신난다, 조까치 등이 있다. 어느 누가 평생 방귀나 뀌고 조까치 사는 사람으로 살고 싶겠나. 그런 맥락에서 이름을 본인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평생 1회 정도는 무료 간편 개명 서비스를 제공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가끔 개명한 사람들은 앞으로 자신의 운명이 어린애 앞에 두루마리 휴지처럼 술술 잘 풀릴 거라고 믿는다. 최근 연애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름으로 개명한 내 친구는 새로운 이름이-'빈'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는데-앞으로 많은 돈을 불러 올거라고-한 100억 수준으로-믿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가 만수르 같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옛 이름 대신 새 이름을 의식적으로 꼬박꼬박 불러주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이렇다 할 수확은 없다. 우짜든둥 마음만은 부자로 사는 것으로..


이름에 대한 이런 긍정적인 믿음이 플라시보 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되는 일 하나 없이 만사 꼬이기만 했는데 이름을 바꿨더니 요즘 인생이 좀 펴는 것 같다'는 얘기를 나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드라마 같은 일은 드라마에서나 일어난다. 이름 하나 바꾼다고 인생도 무조건 성공 모드로 전환된다면 나의 지인은 왜 두 번씩이나.. 헉.. 진짜 그런 생각으로?(이보게~ 자네, 프로 명러가 될 텐가?) 우리가 바라는 진짜 행복한 삶의 변화는 그럴싸한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실체적인 노력이 이끄는 것이다. 김천재도 공부를 안하면 대학을 갈 수 없다. 반대로 지금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애꿎은 이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비관적인 생각 같은 다른 이유가 분명 있을 테니 한 번쯤 자아성찰을 해보길 권한다. 이름이 인생의 돛이라면 그 돛을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는 바로 당신에게 달렸다. 이름이 좋아서 갓생하는 것이 아니라 갓생하는 사람의 이름이 빛난다는 걸 잊지 말자!


나는 오늘 회사 다이어리 노트에 내 이름을 정자로 한 글자씩 또박또박 써봤다. 유 철 현. 익숙한 글자인데 이상하리만치 생경하게 느껴졌다. 내 이름을 이렇게 진지하게 쳐다본 게 언제였더라? 그래, 나는야 물맑은 솥뚜껑의 손잡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정신이 또렷해지고 어깨에 날개가 돋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났다. 유철현이란 글자 뒤에 쓰지도 않은 '힘내라!'가 보이는 듯했다. 좋았어! 내가 나답게 살아야 나의 이름에게 미안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다음은 쿠키)

얼마 전부터 이제 막 말문을 떼기 시작한 에게 엄마, 아빠의 이름을 반복해서 알려주고 있다.

"엄마 이름 뭐야?"

"김 O O"

"오~ 맞았어~(짝짝짝)"

"그럼 아빠 이름은 뭐야?"

"유 추 허~엉"

이런.

아내는 요즘 나를 유추헝 씨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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