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고객을 대하는 편의점의 자세
아주 작은 너희들에게 쓰는 편지
안녕? 얘들아. 나는 편의점 삼촌이야. 요즘 탕후루가 엄청 인기더라? 삼촌은 아직 먹어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다지 먹을 생각이 없어. 내가 혈당이 좀 높거든. 혹시 너희 엄마들도 탕후루 금지령을 내리지 않았니? 최근 뉴스에서 소아 비만과 젊은 당뇨가 부쩍 늘었다며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되더라고. 오해는 하지 마. 삼촌이 잘 알지도 못하는 대상을 고지식하게 디스하고 그러는 프로불편러는 아냐. 그냥 그렇다고. 엄마로도 족한데 여기서 나까지 잔소리를 늘어놓는 건 니들이 극혐 할 테니 그에 대한 말은 이하 생략한다. 실은 삼촌도 먹고 싶은 건 먹어야 된다는 주의야.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참 별소릴 다하네) 아무튼 건강이 제일 중요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하루 권장 영양 기준을 지키고 살면 아마 인류는 일찌감치 멸망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나도 너희만 할 때 아폴로, 쫀드기, 밭뚜렁 같은 걸 많이 먹고 자랐어. 지금 생각해 보면 음식이라기보다 화학 물질에 더 가까운 것들이었지. 모두들 불량식품이라고 부르면서도 슈퍼와 문방구는 물론이고 학교 매점에서도 대놓고 팔았어. 이 정도면 불량하기는커녕, 국민식품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전국의 초등학생들이 입에 달고 살았단다. 그런 걸 먹고도 삼촌은 이렇게 잘 살아있어. 비록 밭뚜렁을 먹다가 오른쪽 어금니가 아작 났지만.. 쩝. 다행히 오늘날 치의학은 많이 발전했더라. 그때 이후 크라운으로 몇 번 덧씌운 걸 몇 해 전 신소재 재질로 바꿔 끼웠어. 돈이 꽤 들었다. 그렇지만 삼촌은 밭뚜렁을 결코 원망하진 않아. 오히려 추억한다면 모를까. 그건 너희도 좀 더 크면 알게 될 거야. 나중을 위해 엄마 몰래 비공개로 틱톡이나 인스타에 탕후루 먹는 콘텐츠 하나씩 올려둬.
삼촌 회사에서도 얼마 전 탕후루를 출시했어. 다만 설탕 범벅된 진짜 탕후루는 아냐. 떡에 초코를 코팅한 찰떡 꼬치인데 모양은 비슷하니 탕후루라는 이름을 붙인 거야. 그래. 짭이야.(날카로운 녀석들) 트렌드는 따라가야겠고 논란은 피하고 싶은 잔망스러운 전략이지. 혈당이 올라가는 것 같으니 탕후루 얘기는 그만하자. 오히려 요즘 편의점은 건강식 출시에 관심이 많아. 식약처의 개발 지원을 받은 나트륨 저감 도시락과 식물성 원료로 만든 채식주의 간편식이 그런 것들이야. 예전에 편의점 간편식은 묵은쌀을 쓴다거나 식품첨가물을 쓴다거나 하는 근거 없는 악성 루머에 많이 시달렸지. 억울했다. 삼촌이 자신 있게 말하지만 편의점 간편식은 대량으로 제조할 뿐 가정에서 만드는 집밥이랑 똑같은 재료와 방식으로 엄청 청결하게 만들어. 맛있게 만들려다 보니 간이 좀 센 편이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집밥이나 식당 메뉴랑 비교했을 때 칼로리와 나트륨은 더 낮거나 비슷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도 먹는 거니 조금 더 가볍게 만들 수 없냐는 지적이 종종 있는데 사실 이게 좀 딜레마야. 맛있게 만들면 고탄고지, 고칼로리, 고나트륨이 되고 건강하게 만들면 너무 맛대가리가 없어지걸랑. 건강기능식이 아닌 이상 맛없는 걸 누가 사 먹겠어?! 인생은 밸런스 게임이야. 하지만 최근엔 푸드테크로 만든 식물성 고기, 식물성 계란, 식물성 참치 같은 대체 식재료를 쓰고 김밥에 단무지 대신 사과 필링을 넣는다거나 하는 식의 레시피로 장족의 발전을 하고 있어. 어때? 제법 신박하지? 그건 모르겠고 그냥 탕후루나 내놓으라 한다면 할 말은 없다만 한 번쯤은 맛보길 권하는 바야. 기왕이면 한 톨이라도 건강한 걸 먹으면 좋잖니?
삼촌이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언젠가부터 너희들이 편의점의 큰 손으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야. 편의점에서 10대 이하 고객의 매출 비중은 5~6% 혹은 그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어. 수치적으로는 미미하지만 그 신장률이 매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는 건 업계에서 큰 의미야. 경제활동도 안 하는 너희들의 구매력이 날로 증가한다는 건 아주 재밌는 현상이지. 삼촌 어릴 때 맨날 드나들던 동네 슈퍼와 문방구가 너희들에겐 편의점이 된 것 같아. 삼촌의 지인들도 자기 아기들이 편의점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고 편의점의 위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자식들의 과도한 쇼핑 의욕에 한편으론 저 놈의 망하지도 않는 편의점을 미워하더라고. 엄빠들은 '하나만~ 하나만~' 고르라고 하는데 너희들의 장바구니는 적분의 인테그랄 기호가 붙은 것 마냥 무한대로 쌓이고 쌓이고 또 쌓이고.. 삼촌도 세 살 된 딸이 있어서 그 마음을 알아. 가랑비에 옷이 젖듯 푼돈 지출로도 개털이 될 수 있더라고. 그래도 너희들이 편의점을 좋아해 줘서 삼촌도 참 좋아. 그렇다고 너희들의 코 묻은 돈을 간사하게 탐한다거나 너희를 볼모로 부모의 지갑을 억지로 열게 할 마음은 추호도 없어. 솔직히 편의점이 그런 능력도 없거니와 그렇게 노골적으로 장사하는 곳은 아니잖니. 단지 늘 가까이서 너희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품에 안고 이따금의 방문과 선택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너희도 엄연히 우리의 손님인데 실망하고 돌아서는 걸 보고 싶지 않거든. 이 말인즉슨, 편의점은 너희들을 어른들과 똑같은 하나의 주체, 귀한 손님으로서 존중한다는 뜻이야. 어리다고 취향과 필요가 없는 건 아니니까. 편의점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공간이니까.
편의점은 언제나 너희들에게 열려 있단 걸 잊지 말아 줬음 해. 어느 겨울, 이런 일도 있었어. 영하 20도의 엄동설한에 내복 차림의 꼬마 친구가 오들오들 떨면서 편의점으로 들어왔어. 손님이 뜸한 이른 새벽이었는데 매서운 추위에 홑겹 차림의 어린아이를 보고 근무자도 놀랄 수밖에. 당황한 근무자는 일단 따뜻한 난로가 있는 카운터에 아이를 앉히고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덮어 줬어. 아이는 자다가 일어나 보니 부모가 집에 없는 걸 알고 엄마를 찾아 밖으로 나왔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렸던 거야.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까.. 아이는 길을 헤매다 평소 익숙한 편의점으로 들어온 거였어. 나중에 들어보니 아이의 부모는 잠깐 주차장에 다녀온 것인데 그 사이 아이가 없어진 걸 발견하곤 동네를 쫓아다니며 애타게 아이를 찾고 있었대. 정말 끔찍한 시간이었을 거야. 근무자는 아이를 충분히 안심시킨 뒤 경찰에 신고했고 다행히 소식을 들은 부모가 바로 달려와 다시 가족을 찾아줄 수 있었어. 다음날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편의점을 찾아와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갔대. 다시 웃을 수 있어 정말 다행이야. 너희들도 혹시나 길을 잃으면 언제든 가까운 편의점으로 오면 돼.
삼촌이 어릴 땐 친구들과 PC방을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했다. 참새는 방앗간에서 먹이라도 얻었지 삼촌은 우리나라 IT 업계의 발전을 위해서 많은 돈을 PC방에 꼴아박.. 아니, 투자를 했어. 얼마 전,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종목에서 우리나라가 금메달 딴 거 봤니? 믿기 어렵겠지만 거기엔 삼촌이 기여한 바가 크단다. 너희들이 지금 편의점에 보여주는 관심과 소비 역시 서민 경제와 국가 발전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 그걸 꼭 말해주고 싶었어. 그만큼 편의점도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구나. 편의점은 항상 너희들과 함께 자라고 있어. 아기띠에 안겨 꼬물거리며 처음 편의점에 왔을 때부터 아자아장 걸음마로 매장 이곳저곳 호기심 가득한 발도장을 찍을 때, 유치원 마치고 엄마 손 꼭 붙잡고 신나는 표정으로 출입문을 열고 들어올 때, 초등학교에 입학해 친구들과 몰려와 '포켓몬빵 있어요?'라고 물을 때도 편의점은 너희들의 천진난만한 일상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어. 계절이 바뀌고 또 해가 바뀔수록 너희들은 지금 보다 더 크고 멋진 모습으로 성장해 있겠지? 그런 너희들이 만들어 갈 새로운 세상과 그 옆에서 발맞추고 있을 편의점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 궁금하다. 응원할게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너희 삶의 목격자이자 좋은 친구가 되어 줄게.
아무쪼록 이 편지를 통해 아주 작은 너희들을 생각하는 편의점의 진심이 전해지면 좋겠다. 너희의 빛나는 유년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또 하나의 놀이터가 될 수 있길.
추신. 그건 그거고 시식대에서 라면 먹었으면 잘 치우고 가라(from. 이놈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