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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철현 Jan 12. 2024

배고픈 청춘들의 랩소디

중학교 때부터 수학을 싫어했다. 싫다고 포기하는 건 더 싫었다. 재능은 없어도 노력은 해야겠기에 친구들과 멀리 버스를 타고 유명 학원의 수학 단과반을 다녔다. 학원으로 들어가는 모퉁이에는 편의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은 늘 배고픈 학생들로 북적였다. 청춘들의 허기가 몰리는 시간, 창가의 스탠딩 시식대 위엔 예외 없이 '삼김컵라(삼각김밥+컵라면)'가 올려져 있었다. 마치 쇼윈도에 고정된 디스플레이, 대한민국 청소년 식문화의 《모던 타임즈》를 보는 것 같았다. 어떻게 사람들의 입맛이 저렇게 다 똑같을 수 있지? 신기했다. 볼 때마다 작당 모의라도 한 듯 한결같은 통일성과 일관성을 보여주니 무슨 신앙적 단체 행동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삼김컵라는 그때나 지금이나 10대들의 국룰이다. 그 공통된 기호가 세대를 넘어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 밥과 라면의 안정적인 밸런스, 적당한 양과 저렴한 가격, 빠른 취식과 간편한 뒷처리 등의 장점은 10대들의 외식 취향을 정확히 저격했다. 무엇보다 맛있는 걸 어떡하느냔 말이다. 특히, 내가 꼽은 삼김컵라의 최고 매력은 메뉴 구성의 유연성과 확장성이었다.

- 삼각김밥: 참치마요, 전주비빔, 불고기, 닭갈비, 돈가스, 소시지, 볶음김치 등등 그 외 다수

- 컵라면: 육개장, 신라면, 진라면, 너구리, 새우탕, 튀김우동, 참깨라면, 짜파게티 등등 그 외 더 다수

모듈화 할 수 있는 메뉴들이 경우의 수, 곱의 법칙으로 족히 100가지는 넘었다.


물론, 이 조합을 다 먹을 때까지 학원을 다닌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지만 나는 매일 매일 최선을 다했다. 수학 보다는 메뉴 선정에. 나와 친구들은 그날의 입맛을 충족시켜 줄 최고의 콜라보를 찾기 위해 진열대 앞에서 항상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제품을 몇 번이고 만졌다 놨다 만졌다 놨다 하다가 ‘안 살 거면 나가라’는 주인아저씨의 거친 타박을 듣기도 했다. 그랬다. 공부를 그리 했어야 했다. 삼김컵라를 자주 먹다 보니 선택의 가이드라인도 생겼다. 나에게 우선순위는 라면보다는 삼각김밥이었다. 이는 ‘한국인은 밥심, 라면은 거들 뿐’이라는 확고한 지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공부를 그리 했어야 했다(2). 얼마나 진지했냐면 나중엔 학원을 다니는 건지 편의점을 다니는 건지 헷갈리기까지 했다.


삼각김밥을 처음 먹었을 때가 생각난다. 포장을 뜯는 방법을 몰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손 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뜯다 보면 밥 따로, 김 따로 대참사가 일어났다. 허탈한 마음도 잠시, 사춘기였던 그때는 누가 볼까 부끄러워 서둘러 입 속으로 욱여넣기 바빴다. 삼각김밥 하나 못 뜯는 촌뜨기로 보이기 싫어서.(행색이 촌뜨기인 건 생각지 못하고) 친구 한 놈은 분리된 밥과 김을 아무렇게 쌈을 싸 마치 제대로 벗겨 낸 듯 능청스레 실수를 만회하려 했다. 너무 정성들여 싸 먹길래 그게 더 없어 보인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다음에 먹을 때는 삼각김밥에 정통한 친구의 과외를 받았다. 가운데 비닐 손잡이를 아래로 쭉 당겨 뒤쪽까지 뜯어내고 양쪽 비닐을 하나씩 싹, 싹 벗겨 내면... 되는데... 결과는 또 밥 따로 김 따로. 젠장. 그 이후 성공적으로 포장을 벗기기까지는 수많은 실패를 더 경험해야 했다.


고백컨대 잘못 뜯은 삼각김밥을 분노 반, 쪽팔림 반으로 그냥 버린 적도 있다. 못난 짓이었다. 제품 뒷면에 그림으로 친절하게 1번, 2번, 3번 순서대로 뜯는 방법이 설명되어 있는데도 그땐 그게 왜 그리 어려웠는지.. 이것도 분명 내가 수학에 소질이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등변삼각형의 밑변의 길이를 구하는 데 비지땀을 흘린 것처럼 삼각김밥의 포장 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푸는 것도 내겐 엄청난 고난이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았던지 30년 장기 운영 점주님의 얘기에 따르면, 삼각김밥이 이렇게 보편화되기 전까지 손님들에게 삼각김밥 해체(?) 방법을 알려주는 게 90년대 편의점의 주된 일상이었다고 한다. 그땐 삼각김밥을 똑바로 뜯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신세대와 구세대를 구분하는 척도였다며.


1989년 우리나라에 편의점이 최초로 문을 열었고 그로부터 약 3년이 지난 1992년,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란 제품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마저도 아는 사람만 아는 비주류 상품이었다. 제품을 알리기 위해 당시엔 삼각김밥 TV 광고도 왕왕 했다. 그렇게 삼각김밥은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들이나 바쁜 직장인들의 주린 배를 채워 주는 서민 음식으로 인기를 끌었고 1998년 IMF를 겪으며 싸고 간편한 국민 한 끼로 자리매김했다. 갑작스런 실직에 갈 곳 없는 가장들이 공원 벤치에 앉아 홀로 삼각김밥을 먹는 장면은 시대적 애환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했다. 이후 삼각김밥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길거리 응원에 나선 사람들의 폭발적인 수요가 모멘텀이 되어 2000년대에 최고의 호황을 누린다. 비록 지금은 도시락에 밀려 과거의 영광이 조금은 희미해졌지만 그래도 지난 수십 년 동안 배고픈 청춘들을 토닥토닥 위로해 준 작지만 특별한 상품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개인적으로 삼각김밥에 대해 추앙하는 점은 가격이다. 나의 학창 시절 그러니까 1990년대 삼각김밥의 가격은 700~900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가격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단돈 천 원으로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품질이 좋아진 삼각김밥을 먹을 수 있다. 아무리 최소한의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예전 기사를 찾아보면 '삼각김밥은 2000년 여름부터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개당 900원 하던 가격이 700원으로 내렸다<식품음료신문 03.09.01>'고도 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제품 가격을 올리는 일은 많지만 이렇게 자발적으로 가격을 내리는 일은 흔치 않다. 요즘은 '빅(BIG)', '토핑 2배', '더블', '2X, 3X'란 타이틀을 달고 크기를 키우거나 원재료를 더해 천 원을 살짝 넘어가는 제품들도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마주할 때면 '예전 모습 그대로 거기 있어 줘서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삼각김밥을 보노라면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란 시가 떠오른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이하 생략)      


편의점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이 작은 삼각김밥도 그냥 아무렇게나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MD(상품기획자)가 손품, 발품 팔며 아이디어를 찾고 상품을 기획하면 상품연구소에서 그에 맞는 레시피를 개발하고 내외부 평가단의 냉정한 품평을 거친 뒤 출시 여부가 결정된다.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면 제조 공장의 밥 소믈리에들이 쌀과 식재료들을 엄선하고 생산 직원들이 깨끗하고 정성스럽게 제품을 만든다. 이렇게 포장과 출하 준비를 마친 삼각김밥은 곧장 저온 물류센터로 옮겨져 발주 리스트에 맞춰 하나씩 분류되고 배송 기사들이 트럭에 싣고 전국 각 점포로 배송하면 근무자들이 하나씩 검수해 진열을 마친다. 이렇게 천 원짜리 삼각김밥 하나가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데까지는 어림잡아 최소 100여 명의 손길을 거치게 되니 감히 고귀하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저게 저절로 우리에게 왔을 리는 없다

저 안에 열정 몇 개

저 안에 정성 몇 개

저 안에 인생 몇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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