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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철현 Jan 05. 2024

이거 만들면 대박이라구!

편의점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제품들

아이스드링크, 한 컵 반 흰 우유, 빅(Big) 요구르트, 1리터 생수. 이들의 공통점을 알고 있는가? 맞다. 마시는 거다. 그럼 여기에 컵얼음, 1개짜리 날계란, 딸기 샌드위치, 식물성 참치김밥, 하이볼, 8인분 컵라면을 더하면? 그렇다. 먹는 거다. 맞다. 맞긴 맞는데.. 휴우.. 그러니까.. 내가 가진 정답은 ‘(유통업계 제도권 기준으로)편의점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것.


파우치 음료를 컵얼음에 따라 마시는 ‘아이스드링크’는 2000년대 후반 처음 등장해 편의점의 대표적인 여름 상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아아에 기겁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겐 몰라도 얼죽아의 한국 사람들에겐 최고의 더위 사냥꾼(이자 때론 화병 치료제)이다. 더구나 아이스드링크의 보조 제품으로 출시된 컵얼음은-앞서 <가장 차가우면서도 가장 뜨겁게>에서도 언급했듯이-편의점에서 일 년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으로 퀀텀 자수성가했다. 그는 늘 무뚝뚝하게 깡깡 얼어 있지만 발군의 사교성으로 아이스드링크 외에도 술, 생수, 주스, 탄산음료 등과도 잘 어울려 사시사철 찾는 사람들이 많다.


흰 우유와 요구르트는 원래 있던 제품인 왜 최초라고 하는지 의아할 텐데 그 답은 바로 용량에 숨어있다. 일반적으로 흰 우유는 200ml(소), 500ml(중), 900ml 이상(대) 사이즈로 나뉘는데 편의점이 처음으로 200ml~500ml 틈새를 파고들어 300ml, 그러니까 '한 컵 반짜리 우유'를 만들었다. 200ml는 뭔가 양이 아쉽고 그 이상은 휴대와 보관이 불편하다는 점을 간파해 최적의 용량을 만들어  것이다. 이렇게 흰 우유가 몸집을 키워 매출도 키우자 기존 200ml 쪼꼬미 사이즈 밖에 없었던 초코, 딸기, 커피, 바나나 가공유들도 모두 들고일어나-흰 우유 보다 더 크게-500ml로 벌크업 한다. 결과는 대성공!


빅 요구르트도 이와 비슷한 탄생 비화를 갖고 있다. 요구르트는 어린이 음료의 대명사여서 그런지 성인이 마시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편의점은 성인을 위한 요구르트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성인을 위한'이라는 수식어에 왠지 소량의 알코올이라도 첨가된 것 같지만 단지 크기가 60ml에서 270ml로 4.5배 커졌을 뿐이다. 한 개로는 간에 기별도 안가 한 줄 묶음 요구르트에 빨대를 콕콕콕 찍어가며 마시던 사람들에게 빅 요구르트는 그간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빅빅' 긁어 준 아주 기특한 녀석이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야!'라며 자신도 미처 몰랐던 숨은 니즈를 발견한 소비자들은 빅 요구르크를 열렬히 환영하며 지갑을 활짝 열어젖혔다. 


빅 요구르트가 공전의 히트를 치자 이후 편의점 상품들은 성장촉진제라도 맞은 듯 너나 할 거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핫바도, 커피도, 과자도, 햄버거도, 삼각김밥도.. 해마다 점보, 그랜드, 트렌타, 자이언트란 수식어를 붙이고 태어나는 빅 사이즈 키즈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유통가에서는 '불황일수록 대용량이 잘 팔린다'라는 속설이 있는데 단군 이래로 불경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어서 빅 사이즈 상품들은 나오는 족족 꽤나 높은 타율로 인기몰이를 고 있다. 어릴  먹는 걸로 장난치면 안 된다고 배웠는데 편의점에서는 이런 꾸러기 짓이야말로 손님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필승 전략이었다.


그런가 하면 '1리터 생수'는 MD가 직접 느낀 생활의 불편에서 시작됐다. 자취생이었던 O는 물을 마셔도 풀리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500ml 생수는 너무 작아 금방 바닥을 드러내고 2L 생수는 너무 많아 개봉 후 보관 기간이 길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당시 시중에는 500ml와 2L 생수 밖에 없었기에 약수터에서 그때그때 먹고 싶은 만큼 물을 떠 와 마시지 않을 거라면 잠자코 국내 생수 시장경제 체제에 따라야만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 맞다, 내가 생수 MD지!' O는 1인 가구를 위한 1리터 생수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500ml, 2L 두 생수의 독고다이에 반기를 들고 ‘독거’인들의 고충을 반드시 ‘다이’ 시키겠다는 강려크한 의지로!


이렇게 촉발된 O의 방구석 기획은 국내 생수 시장에 한 획을 긋게 된다.(O가 처음 제조사들에게 1리터 생수의 생산을 제안했을 때 시장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1리터 생수는 왜 이제야 나왔냐는 듯 소비자들의 뜨거운 버선발 호응을 얻었고 매년 늘어나는 1인 가구의 그래프처럼 매출도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오피스가에서는 회사 정수기의 청결을 불신하던 직장인들에겐 한줄기 구원템이 됐다. 이처럼 고작 1리터가 1톤 같은 인기를 불러일으키자 대형 제조사들과 다른 유통채널에서도 카피캣들을 잇따라 출시했고 아무리 아파도 매년 트렌드 책은 쓸 것 같은 김난도 교수도 한 방송에서 콜럼버스의 계란 같은 발명품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거꾸로 수박바’는 재밌는 역발상으로 대박을 친 제품이다. 1986년에 처음 출시된 수박바는 수박 모양을 본 따 빨간색 과육(멜론맛) 부분이 90%, 녹색 껍질(딸기맛) 부분이 10%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사람의 간사한 입맛이라는 게 어느 날 겨우 10% 밖에 안 되는-한우의 제비추리 같은-그 껍질 부분이 더 맛있게 느껴지더라는 거다. 실제, 온라인상에서는 '껍질 부분이 더 맛있다. 껍질을 먹으려고 수박바를 사 먹는다'라는 의견이 폭발적인 공감을 얻었다.


그래서 편의점이 제조사에 과감한 제안을 하게 된다. '이참에 확 뒤집어보시죠!' 이를 계기로 수박바는 30여 년 만에 빨간색과 녹색의 위치를 바꾸는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한다. 그렇게 나온 거꾸로 수박바는 SNS에서 마니아들의 소원이 이루어진 제품으로 큰 화제가 됐고 출시 5개월 만에 무려 1,000만 개나 팔리며 아이스크림 부동의 1위 메로나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거꾸로 수박바가 이렇게 히트를 치자 그 뒤로 반반 수박바, 색다른 수박바, 줄무늬 수박바 등 편의점 업체들마다 별의별 수박바가 다 나와 아주 () 터지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편의점의 이런 면면을 지켜보고 있으면 나도 가끔 MD(상품기획자)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나의 아이디어로 세상에 없던 기발한 아이템을 개발하고 그걸 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준다면 얼마나 기쁠까.


한 번은 전날 과한 술자리로 내일의 나를 가불해 죽을 둥 살 둥 출근한 날이었다.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 위에 돛단배를 탄 것처럼 머리가 돌고 속이 울렁거렸다. 어떻게 숙취까지 사랑하겠어 술을 사랑하는 거지. 생명 연장을 위해 해장이 간절했다. 지금 당장 죽는다면 묘비명에 '뜨끈한 콩나물국 딱 한 그릇만 먹었으면..'이라고 쓰고 싶을 만큼. 그렇다고 근무 시간에 식당으로 무단이탈을 할 수도 없고 레토르트 콩나물 국밥을 사 와 사무실에서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떠오른 아이디어가 바로 '캔 콩나물국'이었다.


겨울철 편의점 온장고에서 파는 커피, 꿀물, 두유처럼 주취자를 위해 캔에 담은 따뜻한 콩나물국이 있다면 지금 당장 10캔이라도 거뜬히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냄새 없이 쉽고 빠르고 깔끔한 속풀이! 쌕쌕이나 봉봉처럼 콩나물 건더기도 살짝 씹힌다면 톡톡 터지는 아스파라긴산이 온몸에 쫙 퍼지며 이 고약한 아세트알데히드를 말끔히 씻어 줄 텐데! 마침 동기가 음료 MD로 있어서 잘만 하면 노벨해장상도 받을 수 있는 이 엄청난 아이디어를 냉큼 전달했다. 사실 종용에 더 가까웠다. 이거 대박이라고! 지금 당장 만들라고! 나 죽겠다고!


그런데 돌아온 답은 "이 형, 술 많이 취했네. 점심때 나와. 콩나물국 사줄게"였다. 나는 그날 콩나물국을 얻어먹고 MD의 꿈을 깨끗이 접었다. 이후 편의점에서는 사무실에서 몰래 먹는 콘셉트로 테이크아웃 커피 컵에 담긴 떡볶이가 출시됐다. 일명 떡메리카노. 외관상 분명 커피인데 정작 내용물은 국물 떡볶이가 담겨 있는 신박한 반전 상품이었다. 한 개그우먼이 방송 중에 종이컵에 담긴 떡국을 커피인 양 몰래 먹는 모습이 이슈가 되면서 유행한 몰래 먹기 챌린지에서 착안한 상품이라고. 하하하. 그 기만적이고 당돌한 발상이 어찌나 귀엽던지.. 나름 화제가 되어 그다음엔 몰래 먹는 국수도 나왔다. 데 왜 나의 캔 콩나물국은 안 되는 것인가? 흑흑.


편의점에서는 일주일에 평균 50~60여 개, 한 해 동안 약 3,000여 개에 이르는 신상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중에 1년 이상 판매되는 롱런 상품은 3% 내외로 100여 개 남짓. 그마저도 빠르게 변하는 소비 트렌드에 따라 굴러온 신상품들이 박힌 신상품(이때부턴 구상품)들을 밀어내고 있다. 세상에 없던 상품들이 수없이 태어나고 다시 세상에 없는 상품으로 사라지는 곳, 그리고 변덕스러운 고객의 부름 앞에 또 다른 신상품으로 환생을 거듭하는 곳이 바로 편의점이다. 그들의 탄생은 잠재적 두근거림이고 그들의 소멸은 보편 기다림이 된다. 기대하시라! 이렇게 세상을 놀라할 최초의 무언가를 만들어 우리의 소확행을 채워주는 보석 같은 아이디어들이 365일 편의점 유니버스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언젠가 나의 캔 콩나물국도 나올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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