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왔을 때 첫 느낌은 마치 딸아이를 출산했을 때와 비슷했다. '저 책이 진짜 내 책이 맞나?' 뭐라 형언할 수 없이 기쁘고 또 기쁜데 한편으론 실감이 나지 않아 어리둥절했다. 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 때는 너무 귀엽고 기특해서, 300g이 조금 넘는 가소로운 무게마저도 감격스러워 나도 모르게 히죽히죽 웃음이 나왔다.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손가락, 발가락 세듯이 책이 제대로 잘 나왔는지-행여 종이 귀퉁이라도 구겨질까 -조심조심 페이지를 넘겨 보았다. 아구구얘가 진짜 내 새끼야? 진짜로? 간혹 내 책이 나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예뻤다. 이리도어여쁘게 세상에 나와 준 책이 고마워서 손으로 한번 스윽 쓰다듬어 보았더니 그제야 표지에 인쇄된 '유철현 지음'이라는 호적이 눈에 들어왔다.
집필 2년에 편집 1년을 더해 총 3년이 걸렸다. 2월 말 길고 험난했던 여정의 끝, 드디어 바라던 목적지에 당도를앞두고 있었다. 일, 가사, 육아 만으로도 빠듯한 하루에 부족한 필력과 게으른 성격을 헤치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직전의 기분은-아직 1km 남긴- 42.194km를 달린 마라토너의 심정이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려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었지만 눈앞에 서서히 결승점이 보이자 그 배경으로 모든 세상이 황홀하게 보였다.그래서가능하다면이 시간이 끝나지 않고좀 더 길어지길 바랐다.이대로 조금만.. 조금만더 달려도좋아.나는 이번이책을 처음 내는 것이지만 감히 단언컨대 출간 과정에서 가장 기분이 좋을 때는 모든 교정과 편집을완료한 후 출간 직전의이 기다림이 아닐는지. 2월 26일. 편집자님이 연락이 와서 책이 예상보다 일찍 나왔다고 했다. 앗! 짧아도 너무 짧은 1km의 시간이었다. 2월 28일부터 서점 배본이 시작되고 정식 출간일은 주말을 지나 3월 4일 월요일이라고.
2월 27일. 저녁을 먹다가 아내가 소리쳤다.
"오빠, 떴다!"
내 얼굴이 누렇게 떴다는 말인 줄 알았다.
"응. 힘들었어. 누굴 닮았는지 말을 지독시리 안 들어."
2월 마지막주는 통째 어린이집 방학이라 아내와 번갈아 징검다리 연차를 내면서 딸의 가정보육을 하고 있었고 그날은 내가 전담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yes24에 검색해 봤는데 오빠 책 나와."
"아, 진짜?"
2월 28일. 아침에 편집자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혹시 출간 소식을 지인한테 알렸냐고 물어보셨다. 일단 부모님과 형제들에게만 말했다고 했더니 아직 책 DB가 미완이어서 인터넷 서점에 등록만 해두었는데 그 사이 판매가 제법 올라왔단다. 가족들에겐 출판사로부터 받는 작가분에서 책을 보내주기로 해서사전 구매를 하지 않았기에 꽤 유의미한 반응이었다. 나의 책도 편의점처럼 누구나 쉽고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그런 책이 되길 바랐는데 다행이었다. 나는 많이 팔렸는지 적게 팔렸는지 감이 없어 갸우뚱했더니 편집자님이 아직 책 포장도 하기 전인데 이 정도면 초반분위기로는나쁘지 않다고 했다.그날 저녁, 작가분 책 20권이 집에 도착했다. 감동의 왕도가니!
(<어쩌다 편의점>의 첫 독자(우리 딸)가 열심히 책을 읽고.. 아니, 책 냄새를 맡고 있다.)
호들갑 한국인 둘째가라면 서운한 우리 부부는 주말이 되자 바로 광화문 교보문고로 갔다. 두리번두리번. 문득 신생아실에 아내와 함께 딸아이를 처음 보러 간 날이 떠올랐다.
"오빠, 여기 있다." 아내가 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용히 해! 부끄러어어."
'에세이 신간' 매대 가장자리에 내 책이 놓여 있었다. 대단히 신기하고, 상당히 신기해서 신기하다는 것 외에 여타 감정들이 더 비집고 들어올 수 없었다.
"여기 책 들고 서 봐. 내가 사진 찍어 줄게."
나는 마지못해 감귤 초콜릿을 들고 선 돌하르방처럼 엉거주춤 섰다. 얼굴이 화끈. 제발 빨리 찍어줘. 빨리! 빠알~리!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머. 저 사람 책 냈다고 기념촬영 하나 봐. 풋~ 웃긴다.'라고 수군대는 것 같았다. 후다닥 사진을 찍고 주변을 둘러보니 '한국소설 베스트' 매대 아래에도 내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대체 여기엔 왜? 이 책은 에세이고요. 이제 막 나왔어요. 황송하게 벌써 베스트라니. 그렇지만 여러 곳에 놔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맨 위쪽의한 권이 누군가 뒤적여 보다 다시 내려놓은 듯 살짝 삐딱하게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사람들 옷깃에 부딪혀 흐트러졌거나 옆에 책을 짚다가 그냥 툭 건든 걸 수도 있는데 나는 이미 지나친 과몰입을 하고 있었다. 누구였을까? 내 책에 관심을 보인 사람은? 우리는 패키지 여행객처럼 후다닥 사진만 찍고 기념으로 책 한 권을 사서 쿨하게 '볼일 끝!'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필할 때까지만 해도 책 한 권 낼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생각했는데 막상 책이 출간된 이후에는 판매에 대한 책임과 욕심이 생겨 났다. 청풍명월의 마음으로 책을 냈으니 이제 할 일 다 했다고 뒷짐 지는 소리는 보잘것없는 나의 원고를 기꺼이 책으로 만들어 준 출판사에게 굉장히 무례하고 송구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이렇게 고생해서 낳은 책이니 되도록이면 많은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다. 편집자님도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라고 힘줘 말했다.뭔가 모든 게 리셋되는 느낌이었지만 그 떨림만큼은 좋았다. 출판사의보도자료가 배포됐고 인터넷 서점에 이벤트도 걸렸다. 홍보맨인 나도 주변 지인들은물론, 평소 친분이 있는 기자들에게 출간 소식을 전하며적극 애독심 잡기에 나섰다.
편의점 업계에서 1차 고객은 점주, 2차 고객이 소비자이듯 출판계에서도 신간의 1차 고객은 서점 MD, 2차 고객이 소비자로 타겟팅된다. 책이 고객들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선 서점 MD들의 관심을 받아야 했다. 현재 국내 도서 시장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매 비중이 약 65:35 정도. 예스24와 알라딘은 판매 지수를 카운팅을 하고 있는데 신간의 경우엔 판매 지수에 따라 애서가들의 군중 심리에 영향을 주고 서점 MD들의 눈에도 확 띌 수 있다. MD들의 픽을 받아 노출면이 조금만 늘어나도 판매량의 차이는 크단다. 타이밍도 매우 중요한데 광고 문자나 앱 푸쉬가 나가는 시점에 판매량이 같이 움직이면 MD들의 관심을 받을 확률이 높다고. 어? 이 책 빵구 좀 끼네?결국 모든 결론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아 초반 바람을 타야 한다는 것인데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신의 영역.나는 완전 신삥 작가로 네임 밸류가 없으니 어떻게든-서점에서 외발자전거를 타고 저글링이라도 해야 하나?-MD들의 레이다에 포착돼 책이 조금이라도 더 소개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했다.참고로 에세이 분야는 하루 평균 10권 이상의 신간들이 쏟아져 나오는 치열한 전쟁터. 과연 내 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일단 본격적으로 마케팅에 나서기 전,감사인사부터!가장먼저 나를 믿고 참고 응원해 준 나의헤르미온느, 나의 아내에게-3살 된 딸을 중간에 샌드위치로 끼워-압도적 사랑의 포옹을 해줬다. 그리고 지난 1년간 혼신을 다해 나의 책을 만들어주신 H편집자님에게도 무한 감사를, 추천사를 써주신 김혼비 작가님과 유선희 기자님께도 출간 소식과 함께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최신 신상품들을 모아 종합선물세트를 꾸리고 책을 동봉해 집으로 보내드렸다. 두 분 다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해 주셨다. 그 메시지들은 평생 간직할 만큼 나에겐 큰 은혜이자 축복이었다. 작가님과 기자님의 명성에 부끄럽지 않은 책이 되어야 할 텐데..주변에 응원해 준 가족들, 친구, 동료, 지인 분께도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드렸다. 나의 진심이 잘 전해지길.. 그러는 사이 출간 후 얼마 안돼 출판사로부터 인세가 입금 됐다. 아직 다 안 팔렸는데 벌써 이렇게 돈을 주시다니 혹시 사이버 머니는 아니죠? 1쇄는 선인세(계약금)을 빼고 발행 부수만큼 작가에게 다 주고 2쇄부터는 판매 부수만큼 반기 정산을 한다고 한다. 나는 아내와 합의한 대로 1쇄 인세 전액을 난치병 아동들의 소원 성취를 돕는 '메이크어위시 코리아'라는 국제 NGO에 기부했다.그리고이제독자들을 만나러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