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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Feb 12. 2024

바르셀로나 미술관을 나와서 비명을 꽥지른 사연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하면 피카소가 떠오른다.

나는 피카소가 스페인 사람인 걸 이번 여행 덕분에 알게 됐을 정도로 미술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유명 화가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해서 바르셀로나 첫 일정으로 피카소미술관에 갔었다.


그런데 피카소 미술관보다 더 좋았던 곳이 바로 호안미로 미술관이었다.

아티켓 들고 호안미로 미술관 밖에서 찰칵, 미술관 안의 호안미로 사진과 찰칵

유럽에 간다니까 갑자기 예술병이 생겨서 바르셀로나의 미술관을 다양하게 가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바르셀로나의 많은 미술관을 저렴하게 관람할 수 있는 아티켓을 미리 구매하여 호안미로 미술관에 방문했다.


호안미로는 스페인 3대 화가이며, (나만 몰랐을 뿐) 꽤 유명한 분이었다.

스페인에서 많이 보이는 Caixa은행의 마크도 호안미로의 작품이다.

사람이 저금통에 저금을 하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2018년에 진라면 30주년 기념 진라면 x 호안미로 아트콜라보 스페셜에디션이 출시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당시엔 라면만 끓여 먹고 '호안미로?' 하며 그냥 지나쳤다.


미술에 대해 별로(사실은 거의) 아는 게 없는 나는, 스페인에 오기 전까지는 호안미로라는 화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 호안미로 미술관을 기대하며 왔던 가장 큰 이유는 사진스폿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였다.(허허)


미술관 오픈시간에 맞춰 도착해서 사람 많아지기 전에 미리 알아봤던 사진 명소부터 찾았다.

미술관 한 곳에 유니크한 조형물과 도시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다.

와, 그림처럼 펼쳐진 풍경에 눈이 확 떠졌다.

이미 시각으로 압도당한 상태에서 상쾌한 공기가 함께 들어오니 가슴이 뻥 뚫리고 정화되는 느낌이다.


한 외국인 여자분이 이 풍경을 보더니 "와우, 원더풀~"하고 진심 어린 감탄을 한다.

정말 원더풀이었다.

아무도 없을 때 재빨리 셀카 찍고, 삼각대 세워놓고 또 찍고, 열심히 다양하게 사진을 찍어댔다.

일찍 왔더니 사람이 별로 없어서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찍을 수 있었다. (오예! 카톡 프사 건졌다, 후후후)


사람 많아지면 사진 찍는 게 민망하고 힘드니까 나름 전략적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선] 열나게 사진 찍고 [후] 미술품 감상'을 시작했다.

그림에 대해 1도 모르는 머글이지만, 그래도 예술가가 혼을 다해 그린 미술작품을 보는 걸 좋아한다.

호안미로의 그림은 환한 색감과 간결하고 상징적인 표현력 덕분에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한국어해설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웠다.

미술관 자체도 깔끔하고 분위기 있어서 찬찬히 관람하기에 참 좋은 곳이었다.

옥상으로 올라가니 멋진 풍경이 또 하나의 작품처럼 펼쳐져있고, 독특한 옥상모양도 눈에 들어온다.

바르셀로나의 야경을 못 본 게 좀 아쉬웠는데, 그래서인지 이때 봤던 바르셀로나의 환한 전경이 더 기억에 남는다.

누가 바르셀로나 여행을 간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곳이다.








혼자 바르셀로나에 와서 여유롭게 미술품을 보고 있자니 엄청 고고한 지성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맘에 쏙 드는 인생사진을 건진 뿌듯함에, 발걸음은 축지법을 쓴 것마냥 경쾌하고 가볍다.

미술관이 내가 머무는 호텔하고 멀지 않아서 산책 겸 걸어서 내려가기로 한다.

미술관 뒤쪽엔 이렇게 예쁜 공원과 카페가 있어서 보기만 해도 여유로웠다.

내려가는 길도 화보처럼 멋졌다.

맑고 시원한 공기가 시린 코끝으로 막힘없이 들어오고, 새소리가 배경음악으로 들려온다.

여기에 날씨까지 정말 좋았다. 여행에서 날씨의 중요성은 말해 뭐 해, 너무 절대적이다.

선물 같이 펼쳐진 길을 구름 흘러가듯 걸어가 본다.


아 모든 게 너무 좋다 싶어서 또 마음이 들뜬다.

그렇게 우아한 예술인에 빙의하여 그림 속을 걷는 기분으로 유유히 내려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벤치 쪽으로 걸어가는 갑자기 거기 있던 개가 왈왈 짖으면서 내쪽으로 달려들었다(!)




"... 으... 으아악..!!!"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본능적으로 소리를 꽥하고 내질렀다.

비명소리에 공원에 흐르던 평화와 고요가 와장창 깨졌고, 사람들이 전부 나를 쳐다봤다.



바르셀로나에는 애견을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런데 목줄을 안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꼭 있어서 항상 좀 무서웠다.


이때도 견주로 보이는 아저씨가 개를 풀어 놓은 상태로 벤치에 앉아있었고, 그 개가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어 컹컹 짖어댄 것이었다.

다행히 물진 않았지만, 다리 앞에서 맹렬하게 짖어대는 개가 너무 무서워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얼음상태로 서있었다.




견주 아저씨가 개를 부르니 마구 짖어대던 녀석이 조금 주춤한다.

견주 아저씨는 내게 스페인어로 뭐라고 뭐라고 말을 다.

아마도 "우리 개는 순해서 안 물어요. 괜찮아요!" 뭐 이런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얼음땡에서 풀린 사람처럼 재빠르게 뒤쪽으로 멀찌감치 물러나서 그 아저씨를 노려봤다.



아니, 그건 아저씨 개니까 그런 소릴 하는 거죠! 목줄을 왜 안 하고 있어요? 물렸으면 어쩔뻔했어요? 네? 이 사람이 진짜 큰일 날 사람이네! 여봐여!!

라고 따지고 싶었다. (하하하.)


놀란 마음이 좀 가라앉자 열이 훅 올라오며 견주를 향한 원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따져서 뭐 하나 싶고, 사실 말이 안 통해서 따질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개가 또 짖을까 봐 재빨리 갈길을 재촉했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게 더 시급하게 느껴졌다.










놀란 마음은 아직 진정이 다 안 됐지만, 무사한 게 어디냐 싶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호텔에서 잠시 쉬었다가 콜럼버스 동상이 있는 벨항구로 인생샷을 찍으러 나갔다.

개한테 물릴뻔 했는데도 또 사진을 찍으러 가는 게 좀 웃기도 하지만 할 일은 해야지 어쩌겠나. (하하.)

호텔에만 있기엔 너무 아까운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구더기가 무서워도 장은 담가야 하는 의지의 한국인 찍사, 출동!


혼자 다니다 보면 사진 찍는 게 영 쉽지 않은데, 그것도 적응되니까 스킬이 생긴다.

이리저리 수 없이 많이 찍다 보면 한두 장은 얻어걸린다는 거.

사진이 너무 만족스럽게 나와서 뿌듯한 마음으로 룰루랄라 호텔로 향했다.




아니 그런데 또...!


호텔 가는 길에 엄청 큰 셰퍼드(로 추정되는 멍멍이)가 길 한복판에 떡하니 있는 거다. (!!)

흐앙, 오늘 나한테 왜이래. 살려줘.(ㅠ_ㅠ)


오전에 개한테 물릴뻔한걸 잠시 잊고 있다가,

거북이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또 흠칫하며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넜다.

저 아이는 식당에 들어간 주인 보느라고 내겐 관심도 없는 것 같았지만, 대형견이 저러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꿈처럼 멋진 풍경을 보며 인생샷을 남긴 것과 개 때문에 놀랐던 일로, 너무 대비되는 감정을 느낀 탓인지 참 기억에 남는 날이었다. 하루의 기억이 뭐 이렇게 극과 극인가 싶다.


후, 다음에 해외여행을 갈 때는 호신기구라도 하나 갖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이 통하지 않은 외국인 신분일 때는 조심할 게 배가 되는 것 같다.

사진도 좋고 관람도 좋고 다 좋지만, 역시 해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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