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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by 단어

크리스마스가 지나갔어. 그토록 기다리던 크리스마스인데 엄청 특별한 걸 하지는 않았어. 아끼는 친구들을 만났고, 맛있는 걸 먹었고, 깔깔거리며 사진을 찍었고, 요상한 영화를 봤어. 교회를 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외치기도 했어. 메리 크리스마스! 는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말이지만 1년에 한 번밖에 못 하는특별한 말이기도 하잖아. 25일이 지나가고 나면 또 1년 기다려야 하니까 아끼지 않고 여기저기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쳐댔어. 다들 어땠어? 크리스마스 잘 보냈어?

나는 여전한 친구들을 또 여전히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았어.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세상에서 우리가 한 번 더 만날 수 있다는 건 엄청 특별한 일이잖아. 여느 날처럼 우리는 웃었고, 떠들었고, 서로를 놀렸어. 그렇게 나는 크리스마스를 떠나보냈어.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니까 이제야 올해가 끝나간다는 게 실감이 나는 거 있지. 올해는 내가 떠나보내야 할 게 참 많더라구. 나의 1학기를 꽉 채웠던 학생회도 끝나고,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글쓰기 수업도 내일이면 끝나고, 언제 이렇게 정들었는지 모르겠는 알바 친구들도 올해가 지나면 그만두고. 이렇게나 떠나보내야 할게 많은 1년을 보냈어. 오늘은 하루 종일 이들의 얼굴을 떠올렸어. 하나같이 반가운 얼굴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알 것 같은 표정들. 유독 슬퍼 보이는 얼굴이 있었는데 그런 너는 지금 웃고 있는지도 궁금했어.


있지, 세상에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더라. 너희가 없었다면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그대로 주저앉아서 아직도 엉엉 울고 있거나 허둥지둥 식은땀 흘리며 벙쪄있겠지? 너희에게 정말 고마워. 나를 만나주어 고맙고, 그 시간에 나와 함께해줘서 고마워. 혼자서는 나빴을 시간이 덕분에 행복한 시간이 됐어. 그때는 분명 힘들었는데 왜 지금 생각하면 다 좋기만 한지.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슬프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대부분 날을 좋게 기억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돌아갈 수 없기에 자꾸 아쉬운 거야. 자꾸만 돌아보고 추억하고. 그러다 보면 그 시간이 더 좋게만 느껴지고.


매일 볼 것 같은 얼굴들이 이제 안녕을 말하고, 영원할 것 같았던 시간이 끝을 보여. 이제 안녕을 말해야 할 시간인 거야. 안녕을 직감하는 때가 오면 나는 더 아쉬워지지. 하지만 끝이 있다는 건 마냥 나쁜 일은 아니야. 끝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더 다정할 수 있어. 왜 밉고 힘들었던 시간도 끝난다고 생각하면 조금 아쉬워지잖아? 공간도, 얼굴도 괜히 한 번 더 바라보게 되고, 한 번 더 찾아가게 되고. 이제 마지막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미운 말은 속으로 삼키고 그냥 웃으며 넘어가는 거야. 마지막이니까. 이 시간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까.

이렇게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와중에도 언제나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너희 말이야. 나는 돌아갈 수 있는 너희가 있어서 또 새로운 안녕을 말해. 안녕하고 만나서 안녕하고 헤어지더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너희가 있으니 괜찮아. 조금 울고 금방 일어나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거야. 너희도 그랬으면 좋겠어. 모든 헤어짐에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만 울고, 아니 많이 울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계속 살았으면 좋겠어. 나는 슬퍼도 여기서 글을 쓰고 기뻐도 여기서 글을 쓸 테니 혹시 돌아올 곳이 필요하다면 여기로 와도 좋아. 나는 그냥 계속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너희가 만나고 헤어지는 동안 나도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할 테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서로를 보며 그렇게 같이 사는 거야.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어. 한 개의 문이 닫히면, 반드시 새로운 한 개의 문이 열린다는 말. 끝은 곧 시작을 말하기도 해. 오늘이 끝나야만 내일이 오고, 올해가 끝나야만 내년이 오겠지. 안녕을 말하고 나면 또 새로운 안녕이 찾아올 거야. 그때까지 우리 잘 지내자. 다시 만나는 날 그간 쌓였던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그때는 잠자코 듣기만 할게. 우리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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